하드보일드 탐정 소설과 SF 스릴러를 결합하여 큰 화제를 모은 책이 황금가지에서 출간되었다. <얼터드 카본>은 작중 인간의 영혼을 담는 저장 장치를 뜻한다. 인간의 정신과 기억을 저장 장치인 칩에 담고 육체를 마음대로 옮겨 다니며 영생을 누리는 미래의 지구를 무대로 어느 대부호의 자살 사건을 수사하게 된 특파부대 요원의 숨막히는 추적극을 담았다. 출간 직후, 그해 최고의 SF 소설에 수여되는 필립 K. 딕 상을 수상하였으며, 「브이 포 벤데타」의 감독 제임스 맥테이그에 의해 현재 영화화 중이다.
상상을 뛰어넘는 하이퍼 테크놀러지의 극한.
<얼터드 카본>은 그야말로 미래 세계 보따리라고 할 만큼 상상 그 이상의 세계를 보여준다. 인간의 정신과 기억을 작은 칩에 담고, 인간의 육체를 옷처럼 돈을 주고 사서 갈아 입는 세상. 혹여 사고가 나서 죽더라도 저장 장치만 그대로 다른 몸에 집어 넣으면 부활한다. 또한 저장 장치마저 파괴되면 완전한 죽음을 의미함기 때문에, 이를 우려한 부자들은 자신의 정신과 기억을 주기별로 따로 저장함으로써 끊임없는 생명을 누린다. 그래서 작품 속에서는 무려 3세기를 넘게 산 부자가 등장하기도 한다. 부자들은 서민들의 육체를 돈으로 사서 옷을 맞추듯 자기만의 몸으로 만들기도 하고, 해커들은 이런 부자들, 특히 연예인들의 백업 정보를 해킹하여 가십들을 흘리기도 한다. 죽음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에 이를 대신할 고문 사업도 번창한다. 고문을 위한 가상 세계 프로그램도 만연한다. 가상 세계에서는 수천 수백 번을 고문해도 고통만 있을 뿐 죽지는 않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자신의 정신을 복제하여 도플갱어를 만들기도 하고, 가상 세계에서 불법적 도박이 펼쳐지기도 한다. 수백 광년의 먼 외계 행성으로 이동하기 위해 육체를 동면시켜 쏘아보내는 일은 구시대적이며, 정신만을 프로그램으로 단번에 보내는 게 당연시되는 세상이다. 감옥은 인간의 정신을 저장하는 네트워크 데이터망이 대신하고, 육체를 성행위나 폭력에 쓸 수 있도록 유전적 개조도 만연한 세계이다.
21세기의 시작을 알린 신감각 사이버 펑크
'사이버 펑크'를 논할 때, 필립 K. 딕([블레이드 러너]의 원작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을 꿈꾸는가?>)과 윌리엄 깁슨(<뉴로맨서>)이 대표적인 작가로 거론된다.이들의 작품은 발달된 과학 기술로 빚어지는 계급간의 갈등, 갖가지 디지털 시대의 부조리 등을 소재로 하고 있다. 이러한 사이버 펑크의 특성은 인류에게 편의를 제공한다는 미명하에 막강한 힘을 휘두르는 거대 세력과 이에 맞서는 인물의 대립 구조로 구성되곤 한다. 그러다 보니 디스토피아적 세계관이 작품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 하드보일드 성격의 음울한 탐정 소설의 성격을 띠었는데, 작가 리처드 모건은 이런 점에서 착안하여 하드보일드 탐정 소설과 초기 사이버 펑크 소설들의 특성을 절묘하게 결합했다. 이러한 시도는 앞서 언급한 필립 K. 딕과 윌리엄 깁슨 이후 제자리에 머물던 사이버 펑크 장르의 새로운 도약의 기회를 열었고, 이를 증명하듯 &;t가디언>은 서평을 통해 <얼터드 카본>에 대해 초기 사이버펑크 소설에 대한 경의가 담겨 있으면서도 마치 초현대적 뱀파이어 소설을 보는 듯한 경이를 느낀다고 극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