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

허수경 · 시
16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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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과 지성 시인선 490권.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 허수경의 여섯번째 시집. 2011년에 나온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 물론 보다 아득한 세월이 시인과 함께한다. 1987년에 등단했으니 어느덧 시력 30년을 바라보게 되었고, 1992년에 독일로 건너가 여전히 그곳에 거주하고 있으니 햇수로 25년째 이국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셈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보게도 되는, 산문도 소설도 아닌 다시 시집으로 만나는, 마디마디 가뭇없이 사라지기 전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먹먹하기만 한 시 62편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대부분 돌아오지 않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무참한 예감 속에, 대체 "얼마나 오래 이 안을 걸어 다녀야 나는 없어지고 시인은 탄생하는가" 스스로 묻고 다녔던 이국의 거리와 광장과 역에서 씌어진 시들이다. "내일이라도 이 삶을 집어치우며 먼바다로 가서 검은 그늘로 살 수도 있었다 언제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몸은커녕 삶도 추상화가 아니어서" 쓰리고 아린 고독의 시간들. 시집을 열면, 차마 "그냥, 세월이라" 하고 지나치기엔, 묻고 싶은 말들이 넘쳐 연신 쌓여가는 그 시간의 내력 속에 한 발 한 발 들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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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부 농담 한 송이 그 그림 속에서 이 가을의 무늬 이국의 호텔 베낀 포도나무를 태우며 네 잠의 눈썹 병풍 2부 딸기 레몬 포도 수박 자두 오렌지 호두 오이 포도메기 목련 라일락 3부 동백 여관 연필 한 자루 우연한 감염 문득, 너무 일찍 온 저녁 죽음의 관광객 내 손을 잡아줄래요? 나비그늘 라디오 온몸 도장 아침식사 됩니다 돌이킬 수 없었다 아사(餓死) 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게 우산을 만지작거리며 4부 수육 한 점 사진 속의 달 발이 부은 가을 저녁 방향 우리 브레멘으로 가는 거야 루마니아어로 욕 얻어먹는 날에 매캐함 자욱함 운수 좋은 여름 섬이 되어 보내는 편지 유령들 빙하기의 역 가을 저녁과 밤 사이 너, 없이 희망과 함께 지구는 고아원 푸른 들판에서 살고 있는 푸른 작은 벌레 겨울 병원 5부 눈 엄마와 나의 간격 네 말 속 지하철 입구에서 가짓빛 추억, 고아 설탕길 카프카 날씨 1 언제나 그러했듯 잠 속에서 카프카 날씨 2 카프카 날씨 3 밥빛 나는 춤추는 중 해설 |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 이광호(문학평론가)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저 오래된 시간을 무엇이라 부를까” 그 모든 시간의 ‘사이’를 둘러싼 상상력과 질문들 우리말의 유장한 리듬에 대한 탁월한 감각, 시간의 지층을 탐사하는 고고학적 상상력, 물기 어린 마음이 빚은 비옥한 여성성의 언어로 우리 내면 깊숙한 곳의 허기와 슬픔을 노래해온 시인 허수경이 여섯번째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문학과지성사, 2016)를 출간했다. 2011년에 나온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 이후 5년 만의 시집이다. 물론 보다 아득한 세월이 시인과 함께한다. 1987년에 등단했으니 어느덧 시력 30년을 바라보게 되었고, 1992년에 독일로 건너가 여전히 그곳에 거주하고 있으니 햇수로 25년째 이국의 삶 속에서 모국어로 시를 쓰고 있는 셈이다. 아주 오래전, “내가 무엇을 하든 결국은 시로 가기 위한 길일 거야. 그럴 거야.”(『내 영혼은 오래되었으나』, 2001)라고 했던 그의 말을 새삼스레 떠올려보게도 되는, 산문도 소설도 아닌 다시 시집으로 만나는, 마디마디 가뭇없이 사라지기 전 가슴 깊이 파고들어 먹먹하기만 한 시 62편이 이번 시집에 담겼다. 대부분 돌아오지 않거나 돌이킬 수 없다는 무참한 예감 속에, 대체 “얼마나 오래/이 안을 걸어 다녀야///나는 없어지고/시인은 탄생하는가”(「눈」) 스스로 묻고 다녔던 이국의 거리와 광장과 역에서 씌어진 시들이다. “내일이라도 이 삶을 집어치우며 먼바다로 가서 검은 그늘로 살 수도 있었다 언제나 차마 그럴 수 없었다 몸은커녕 삶도 추상화가 아니어서”(「오렌지」) 쓰리고 아린 고독의 시간들. 시집을 열면, 차마 “그냥, 세월이라”(「네 잠의 눈썹」) 하고 지나치기엔, 묻고 싶은 말들이 넘쳐 연신 쌓여가는 그 시간의 내력 속에 한 발 한 발 들이게 된다. 시간이 날 때마다 터미널로 나가 돌아오지 않는 가방을 기다렸다 술냄새가 나는 오래된 날씨를 누군가 매일매일 택배로 보내왔다 마침내 터미널에서 불가능과 비슷한 온도를 가진 우동 국물을 넘겼다 가방은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예감 때문이었다 그 예감은 참, 무참히 돌이킬 수 없었다 ―「돌이킬 수 없었다」 부분 “어떤 삶이라도 단 한 빛으로 모둘 수 없어서” 생과 죽음을 넘어서는 깊고 오랜 시간의 감각 “영원히 역에 서 있을 것 같은 나날”(시인의 말)은 어쩌면 내 삶에서조차 끝내 이방인일 수밖에 없는, 하여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으로 우리 모두의 채우지 못한 마음의 공동(空洞)을 가리키는지도 모른다. 한때 생생했던 그 모든 생과 기억도 시간의 힘 앞에서는 무력할 수밖에 없고, 남아 있는 우리가 그 의미를 알아내기란 영영 불가능할 터. 시인은 “토해놓은 사랑과 죽음으로도 돌이킬 수 없던”(「나의 가버린 헌 창문에」) 생에 대한 감각을 다시 시간의 감각으로 옮겨놓는다. 삶도, 사랑도, 기억도 “모든 죽음이 살아나는 척하던/지독한 봄날의 일/그리고 오래된 일”(「오래된 일」)이라고. 남은 우리는 그 ‘오래된 일’을 어떻게 기억하고 이름 불러야 하는지, 또 무엇으로 남아 현재의 시간을 비추고 있는지를 묻고 또 물어야 한다고. 눈앞에 타들어가는 포도나무를 바라보며 오래된 시간에 대한 상상과 뼈아픈 시간에 대한 쓸쓸한 질문을 보태는 일이 ‘장례’와 ‘애도’ 그리고 ‘어루만짐’의 시간이 될 수 있는 연유가 여기에 있다. 서는 것과 앉는 것 사이에는 아무것도 없습니까 삶과 죽음의 사이는 어떻습니까 어느 해 포도나무는 숨을 멈추었습니다 사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살았습니다 우리는 건강보험도 없이 늙었습니다 너덜너덜 목 없는 빨래처럼 말라갔습니다 알아볼 수 있어 너무나 사무치던 몇몇 얼굴이 우리의 시간이었습까 내가 당신을 죽였다면 나는 살아 있습니까 어느 날 창공을 올려다보면서 터뜨릴 울분이 아직도 있습니까 그림자를 뒤에 두고 상처뿐인 발이 혼자 가고 있는 걸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어봅니다 포도나무의 시간은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에도 있었습니까 그 시간을 우리는 포도나무가 생기기 전의 시간이라고 부릅니까 지금 타들어가는 포도나무의 시간은 무엇으로 불립니까 정거장에서 이별을 하던 두 별 사이에도 죽음과 삶만이 있습니까 지금 타오르는 저 불길은 무덤입니까 술 없는 음복입니까 그걸 알아볼 수 없어서 우리 삶은 초라합니까 가을달이 지고 있습니다 ―「포도나무를 태우며」 전문 “잘 가, 라고 말하는 순간” 깊숙한 고요와 오래된 시간을 품은 영혼의 이름들 차마 가늠할 수 없는 시간에 대한 시인의 상상력은 그의 실존적 몸과 영혼의 기억을 한껏 확장시켜 “무언가, 언젠가, 있었던 자리”를 한데 불러 모은다. 그렇게 ‘내 속의 할머니, 아주머니, 아가씨, 계집아이와 고아’, 다시 ‘내 안의 노인과 신생아와 태아’의 중얼거림이 “고요한 연”처럼 이어지고 “눈보라 속에서 믿을 수 없는 악수”를 나누며 “기별의 기척”을 건네고 헤어진다.(「빙하기의 역」) 시간의 지도를 그려볼 수 있는 여러 겹의 계절을 소환하는 일도 허수경의 시에서는 독특한 이름과 무늬를 낳는다. 밤과 새벽의 틈새에서 열매 맺은 모든 “당신이 나에게 왔을 때”(「딸기」), 시인은 ‘아주 영영 익어버린 환한 봄빛’을, ‘손바닥처럼 구겨지며 몰락해가는’ 지난여름의 꿈을(「레몬」), ‘익은 속살에 어린 단맛으로 눈치채는 말 이전에 시작된 여름’을(「자두」), 그리고 ‘그대 영혼 쪽으로 가는 기차를 타고 싶어 한 욕망과 가을의 살빛’(「호두」)을 동시에 꿈꾼다. 아마도 그 병 안에 우는 사람이 들어 있었는지 우는 얼굴을 안아주던 손이 붉은 저녁을 따른다 지난여름을 촘촘히 짜내던 빛은 이제 여름의 무늬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올해 가을의 무늬가 정해질 때까지 빛은 오래 고민스러웠다 그때면, 내가 너를 생각하는 순간 나는 너를 조금씩 잃어버렸다 이해한다고 말하는 순간 너를 절망스런 눈빛의 그림자에 사로잡히게 했다 내 잘못이라고 말하는 순간 세계는 뒤돌아섰다 만지면 만질수록 부풀어 오르는 검푸른 짐승의 울음 같았던 여름의 무늬들이 풀어져서 저 술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새로운 무늬의 시간이 올 때면, 너는 아주 돌아올 듯 망설이며 우는 자의 등을 방문한다 낡은 외투를 그의 등에 슬쩍 올려준다 그는 네가 다녀간 걸 눈치챘을까? 그랬을 거야, 그랬을 거야 저렇게 툭툭, 털고 다시 가네 오므린 손금처럼 어스름한 가냘픈 길, 그 길이 부셔서 마침내 사윌 때까지 보고 있어야겠다 이제 취한 물은 내 손금 앞에서 속으로 울음을 오그린 자줏빛으로 흐르겠다 그것이 이 가을의 무늬겠다 ―「이 가을의 무늬」 전문 “아무도 그 심장을 거두지 않던 오후여” 삶의 지반을 뒤흔드는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한편, 이방인의 운명을 타지에서의 실존의 삶으로 이어가는 시인에게 모국어만큼이나 절실하고 그래서 의지하게 되는 것이 모국의 존재였을 것이다. 때문에 세월호의 유가족들, 정권의 폭력에 희생된 시민들, 하루하루 알바를 전전하며 불안한 미생의 삶을 살아가는 젊은이들이 국가의 보호는커녕 하루아침에 ‘해충’으로, ‘불순 세력’으로 전락하고 고국 안에서 또 다른 ‘이방인’으로 내몰리는 모습들은 그야말로 삶의 기반을 뒤흔드는 충격이 되고 말았다. 이는 마치 이국의 거리에 선 그가 눈앞에서 목도하는 풍경, 전쟁과 종교 근본주의자들의 무자비한 폭력을 피해 중부 유럽으로 향하는 난민들의 행렬과 그들 앞에 국경의 빗장을 내건 유럽국가의 모습과 다를 바 없었던 것이다. 이 “이상하고도 불안한 날씨” 속을 걸어가는 시인이 계속해서 ‘무엇이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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