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상과 세계를 재구성하는 절묘한 점묘법 이 세상에 없던 시적 캐릭터 슈퍼초울트라 X의 탄생! 쇠라의 후예가 있는 액자 2011년, 등단 13년만의 첫 시집 『벌레 11호』로 문단과 독자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던 시인 여정의 두 번째 시집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가 출간되었다. 첫 시집에서 기호의 미끄러짐, 명사(실체)와 동사(운동)의 자리바꿈을 선언한 시인은 이제 보다 구체화된 텍스트상의 운동성으로 선언을 실천한다. 여정의 운동은 신인상주의의 선도적 화가 조르주 쇠라의 기법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시작된다. 쇠라가 선과 색채에 관한 과학적 이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것처럼 여정 또한 단어와 기호를 전면적으로 재배치하여 혼합한다. 본래의 뜻과 혼합되어 생성된 뜻이 혼재된 그의 시집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는 제목 그대로 세계를 수많은 점으로 찍어 놓은 ‘액자’이면서도 끝없이 변화하고 흩어지는 의미가 ‘몇’이나 담긴 ‘나’이기도 한 것이다. 이 액자 속의 나는 문장의 구성, 띄어쓰기, 기호의 쓰임 등에 대한 고정된 관념을 무화시킨다. 물질의 구성요소를 쪼개어 원소를 구분하고 다시 원소끼리의 조합으로 새로운 물질을 발견하는 초기 과학자의 호기심어린 연구처럼, 여정은 한국어를 쪼개고 구분하고 조합하는 실험을 거듭한다. 세상에 없던 전면적인 언어 실험인 것이다. 액자 속 여러 X의 탄생 치열하고 괴팍한 과학자의 실험이 낳은 결과들을 우리는 익히 들어 알고 있다. 애써 소설 『프랑켄슈타인』의 괴물의 탄생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몇 명의 내가 있는 액자 하나』를 읽는 독자들은, 알 수 없는 것, 미지의 것의 탄생할 것 같은 불안에 시달리게 될 것이다. 엉뚱하지만 당차고 괴팍하지만 열정적인 과학자로 보이는 시인 여정의 본모습을 특정하기란 어려운 일이다. 그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불면증 환자이자, 하루살이 백수, MMORPG 게임 유저, 홀어머니와 사는 아들, 퍼즐을 잃어버린 아이가 된다. 유사 과학자의 내면에 든 복수의 자아는 그의 실험, 즉 점묘법에 의해 부분적으로 합체되어 완전히 다른 존재로 재탄생하게 된다. 그리하여 X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X는 시인의 애인이기도 하고 시인 자신이기도 하다. 어쩌면 시를 읽는 우리 모두가 X가 될 가능성을 지녔을지도 모른다. 그것을 다시 애인이라고 통칭한다면,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기억이 그러하듯, X의 흔적은 우리의 삶을 지배하게 된다. 개인의 일상 곳곳에서 발견되어 의미망(사회질서)을 교란하고 운동성(개인성)을 회복한다. 기존의 세계, 질서정연한 시적 정서에서 X는 괴물에 불과하겠지만 점묘법의 세계에서 X는 실험 끝에 탄생한 ‘수퍼초울트라X’가 된다. 여정의 X는 이토록 강력하고 동시에 쓸모없는, 그래서 아름다운 에너지를 지닌 채 독자에게 다가선다. 낯설지만 강렬한 여러 X를 담아 둔 액자를 본다. 거기에 우리의 윤곽이 희미하게 비치고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