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뢰즈는 예술 자체 안에 숨겨진 혁명적 힘을 일깨워
클리셰의 무정란 속에서 잠든 기존의 법칙들과 가치들을 파괴한다.”
철학적 ‘비판’에서 예술 ‘비평’으로
재현이 아닌 생성으로서의 예술을 사유하는 창조적 비평
“언젠가, 아마도, 이 세기는 들뢰즈의 세기가 될 것이다.”—미셸 푸코
“들뢰즈의 비평은 예술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예술적 생산과 맞닿아 있다.”—프레드릭 제임슨
“들뢰즈의 철학적 글쓰기는 개념을 창조하는 시적 행위와도 같다.”
—장프랑수아 리오타르
2025년은 20세기 프랑스를 대표하는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의 탄생 100주년이 되는 해이다. 들뢰즈는 서양 철학의 전통적 사유 모델을 뒤집고 ‘차이’, ‘반복’, ‘생성’ 등의 독창적 개념을 창안함으로써 사유의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했다. 그런 그의 철학을 이해하는 데 있어 간과해서는 안 될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바로 예술 비평이다. 들뢰즈의 저작 활동 전반에 걸쳐 문학, 회화, 음악, 영화 등 다양한 예술 장르에 대한 비평이 지속적으로 전개되었고, 이는 단순한 철학 개념의 예시나 부차적 활동에 머물지 않았다. 오히려 예술 비평은 그의 철학적 개념이 형성되고 구체화되는 실질적 토대이자 실험장이었다. 또한 그의 예술 비평은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젖혔다.
들뢰즈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그간 그의 철학을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비평의 영역에서 고찰해 온 연구자들이 모여 들뢰즈의 여러 면모 가운데 ‘예술 비평가’로서의 면모를 집중 조명하는 저작을 출간하며 동시에 강연을 통해(2025.10.25. 온라인) 독자들에게 그 내용을 알리고자 한다.
한국에서도 들뢰즈의 철학에 대한 관심은 날로 커지고 있고, 철학의 전공 영역 밖에서는 특히 들뢰즈 철학의 예술적 면모에 대한 관심이 주를 이루고 있다. 그러나 정작 쏟아지는 들뢰즈 관련 도서 가운데 그의 사유가 가진 독창성이 예술을 어떻게 변혁적으로 읽어냈는지를 제대로 부각한 책은 없었다. 그러한 문제의식 아래에서 이 책이 기획되었다. ‘비판’, ‘비평’을 뜻하는 ‘critique’은 니체론과 스피노자론을 관통하는 들뢰즈의 근본 개념이며, 이에 대한 그의 이해는 ‘파괴와 창조’라는 것이다. 그래서 파괴하고 창조하는 자로서의 들뢰즈를 부각할 때, 우리는 비평가 들뢰즈, 그리고 예술로서의 비평을 마주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대면은 사유가 촉발되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이 책에는 4인의 필자가 참여했다. 이 공동 집필은, 학계에서 통상 이루어지는 것처럼 다수의 필자에게 원고를 의뢰하고 이를 취합하는 방식이 아니라, 각 글에 관하여 필자들이 함께 모여 논의하여 작업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청탁과 취합만을 통해서는 한 권의 책이 가져야 하는 ‘통일성’ 측면에서 한계가 있으며, 개개의 원고가 일방적으로 각 필자들의 관심사만을 표현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공동 저작’이라 보기 어렵다. 이 같은 한계를 반성하며, 문체와 내용 양 측면 모두에서 일관된 통일적인 형태를 갖출 것을 이상으로 삼고 공동 저작을 쓰고자 했다. 집필 과정 내내 서로의 원고를 함께 읽어가면서 자유롭게 수정 사항을 제안하고 다듬는 방식으로 ‘협업’의 형태에 걸맞은 작업을 실천한 ‘공동 연구’의 결과물이다.
또한 이 책은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에게 마지막 한 장(章)을 할애함으로써 내년에 찾아올 푸코 탄생 100주년 역시 기념하고자 한다. 들뢰즈와 푸코의 사상은 한 살 터울의 이 두 친구가 한평생 그려온 우정의 궤적처럼 때로 만나고 때로 어긋나지만, 분명 함께 중첩해야 비로소 보이는 그림들을 가지고 있다.
이 책은 들뢰즈의 예술 비평을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면서도 분야별로 정확하고 간결하게 핵심을 짚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를 위해 먼저 들뢰즈가 ‘예술’과 ‘비평’에 대해 어떻게 생각했는지를 보여주고, 이후 프루스트, 카프카 등을 다룬 문학 비평, 세잔, 베이컨, 바로크 미술론 등에서 드러난 미술 비평, 리토르넬로 개념을 바탕으로 음악사를 구분한 음악 비평, 『시네마』에서 드러난 영화 비평까지 조명하면서 그의 예술론에 대한 총체적인 그림을 그려보이고자 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푸코가 그의 평생의 작업에서 전개하며 변천시켜 온 예술론을 함께 살펴보았다.
비평의 개념: 비판과 비평
들뢰즈를 예술과 연결해 주는 핵심적인 고리는 무엇보다도 ‘비평’이다. 단지 들뢰즈가 추상적인 차원에서 예술을 다루기보다 구체적인 예술 작품에 밀착해서 사유를 진전시키기 때문만은 아니다. 바로 그가 비평 개념의 근본에 자리 잡은 비판 개념을 일깨우며 비평의 힘을 시험해 보기 때문이다. 들뢰즈의 비평 개념을 그 기원에서부터 따져 들여다보는 1장은 칸트로부터 시작해 니체를 거쳐 들뢰즈 자신과 푸코까지에 이르는 비판 개념의 역사를 살펴본다.
“‘비판’과 ‘비평’은 동일한 뿌리에서 자라 나온 같은 본성의 열매들로서, 둘 다 Kritik 또는 critique이라는 같은 단어로 일컬어진다. ‘예술 비평’은 철학이 오래도록 숙고해 온 ‘비판’의 동전 뒷면에 새겨진 근사한 초상화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래도록 두터운 의미의 층들을 자신 안에 만들어온 저 비평 개념에서 들뢰즈가 길어 올리는 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방어되지 못할 것임에도 자신을 유지하려 해온 기존의 법칙들과 가치들을 문제에 부치고 폐기하는 행위로서의 비판이다. 비판이 곧 들뢰즈 예술 비평 자체의 얼굴이다. 들뢰즈의 비평은 문학, 미술, 음악, 영화 등의 예술 자체 안에 숨겨진 혁명적 힘을 일깨워 클리셰의 무정란 안으로 들어가 잠든 기존의 법칙들과 가치들을 파괴한다. 이러한 파괴와 더불어, 저 혁명적 힘을 포착하기 위한 말들, 바로 비평의 언어가 창조된다. 클리셰를 피해 사유를 인도해 줄 언어를 찾아 나서는 일은 그야말로 ‘창조’이다. 이런 개념의 창조 자체를 들뢰즈는 철학과 동일시했다.”— 「서문」에서
들뢰즈의 비판은 칸트의 비판과는 다르다. 칸트의 비판이 유한한 이성의 자율적 복종으로 귀결된다면, 그것은 이성이 통용되는 가치들을 정당화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 것, 즉 들뢰즈의 주요 개념인 ‘재인식’에 해당할 뿐이다. 들뢰즈의 비판은 이 기존의 가치들 그 자체에 칼날을 들이대는 것이다. 사유를 제한하지 않는 비판, 이 비판이 예술의 세계 속에 들어왔을 때 가지게 되는 이름인 ‘비평’은 기존의 법칙과 클리셰(Cliché), 즉 재인식의 대상을 뛰어넘어 해독해야 할 미지의 기호들을 식별하는 데서 시작된다. 기호들의 해독은 이미 주어져 있는 진리가 아니라, 여태껏 없었던 진리로 우리를 이끈다는 점에서 사유의 창조성을 드러낸다. ‘예술적 비평의 핏줄에는 그 기원에서부터 길어 올린 철학적 비판이 있는 것이다.’ 들뢰즈는 삶 전체를 통해 이런 비평 개념을 간직했다.
문학 비평: 프루스트, 카프카 그리고 들뢰즈
“들뢰즈의 ‘문학 비평(critique)’은 프루스트와 카프카라는 현대의 가장 중요한 작가들을 중심에 두고 짜였다. 현대 문학의 핵심에 놓인 이 작가들에 대해 비평적으로 개입함으로써, 들뢰즈는 현대 문학에서 비평이 가져야만 하는 위상에 대해 주장한다. 이 비평의 출발점은 이미 통용되는 법칙과 가치, 즉 클리셰를 다시 알아보는 일, 즉 재인식에 대한 ‘비판’(critique)이다.
예컨대 이런 의혹들과 더불어서 말이다. 세상이 우리에게 소통을 가치 있는 행위로 권장한다고 해서, 객관화할 수 있는 소통의 말에는 우리를 진실로 이끄는 의미가 자리 잡고 있다고 믿어야 하는가?(객관주의 비판) 세상에 가족이 있다고 해서, 우리의 욕망도 아버지·어머니라는 주형(鑄型)에 부어져 불가피한 정체(부성적 법에 의해 죄의식을 수반하는 욕망)를 얻었다고 믿어야 하는가?(오이디푸스 비판) ‘나’라고 말하는 습관이 우리에게 있다고 해서, 발화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