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의 말
1부 그때 못 봤던 거 보러 가자
그녀는 거의 자기 집에 있는 것 같았다/ 소매가 긴 푸른 셔츠에 검정 바지/ 만두/ 그의 태도와 눈빛/ 한 사람이 두 사람을 끌어들여 이틀에 걸쳐/ 해낸 작업에 대한 보고서/ 여주/ 감자 양식/ 나오는 사람들/ 직접적인 경험/ 중요한 역할/ 들어올린 발꿈치의 우아함/ 충북대학교/ 제라늄의 도움을 받아
2부 이제 그만 와서 카레를 먹어
날씨/ 카레/ 단추를 목까지 채우고서/ 점심시간/ 이야기/ 밀어서 넘어트리기/ 작은 수건/ 음복/ 두 사람이/ 그 여자 얼굴/ 부끄러움/ 화양동
3부 모든 이가 이야기 밖으로 빠져나간 후에
모두 도망이라도 간 듯 조용하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 정오/ 의자 위에 올라서서/ 세 사람/ 레몬/ 비 오는 날 물 끓이기/ 소설 읽고 나서 하는 청소/ 애니시다의 죽음/ 어둠을 밝히는 불빛/ 늙은 오이 속 파내기/ 설거지/ 상진 녹색 진실 바지
4부 다 같이 일어나 추는 춤처럼
내 마음속에 언제나/ 양육/ 다세대주택/ 두 개의 마음으로/ 주전자에서 물이 끓는 동안/ 여성 시 읽기 세미나 뒤풀이 자리에 찾아온/ 늙은 여자/ 야외 테이블을 마주하고 앉아 나눈 대화/ 스웨터/ 종묘/ 크고 작은 애들/ 감자 껍질 까기
해설| 식물의 시선, 낯섦의 형식_선우은실(문학평론가)

평범한 일상의 인물과 사건을 정제된 언어로 다루면서 그 사이를 틈입하는 찰나의 긴장감을 낯선 감각으로 선사해온 임승유 시인, 그의 네번째 시집 『생명력 전개』가 문학동네시인선 213번으로 출간되었다. 2011년 작품활동을 시작해 세 권의 시집을 펴내고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며 오롯한 시세계를 구축해온 그가 4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친척 집에 다녀와라”라는 가족의 말에 집을 나선 ‘여자아이’의 이야기로 시작한 첫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에서 시인은, 금지되었기에 더욱 매혹적인 세계 속 흔들리는 화자를 그렸다. 이어 “미묘한 차이를 지닌 수많은 오늘을 발생시키는 행위”와 “여기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데도 여기에 없는 상태”(「뼈만 남았다」)에 대한 탐구가 인상적인 두번째 시집 『그 밖의 어떤 것』과 세계의 정형성에서 부러 벗어나 자발적으로 길을 잃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까지, 임승유의 화자는 시작/출발은 있으되 완성/도착은 없이, 외려 목적지 그 자체보다 그 사이의 온갖 샛길과 갈림길들을 탐구하는 데, 거기서 시작되는 관계들에 골몰하는 존재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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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무엇이 무엇을 지나 무엇이 되는.
아름다움이 아름다움을 지나 아름다움을 넘어가고.”
‘나’라는 장소를 ‘나’로만 채우지 않기 위하여,
‘한 사람’ 이상일 때 발생하는 생명력 쪽으로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 작가 임승유 신작 시집
평범한 일상의 인물과 사건을 정제된 언어로 다루면서 그 사이를 틈입하는 찰나의 긴장감을 낯선 감각으로 선사해온 임승유 시인, 그의 네번째 시집 『생명력 전개』가 문학동네시인선 213번으로 출간되었다. 2011년 작품활동을 시작해 세 권의 시집을 펴내고 김준성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하며 오롯한 시세계를 구축해온 그가 4년 만에 펴내는 신작 시집이다. “친척 집에 다녀와라”라는 가족의 말에 집을 나선 ‘여자아이’의 이야기로 시작한 첫 시집 『아이를 낳았지 나 갖고는 부족할까 봐』에서 시인은, 금지되었기에 더욱 매혹적인 세계 속 흔들리는 화자를 그렸다. 이어 “미묘한 차이를 지닌 수많은 오늘을 발생시키는 행위”와 “여기의 삶을 살아내고 있는데도 여기에 없는 상태”(「뼈만 남았다」)에 대한 탐구가 인상적인 두번째 시집 『그 밖의 어떤 것』과 세계의 정형성에서 부러 벗어나 자발적으로 길을 잃고자 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담은 『나는 겨울로 왔고 너는 여름에 있었다』까지, 임승유의 화자는 시작/출발은 있으되 완성/도착은 없이, 외려 목적지 그 자체보다 그 사이의 온갖 샛길과 갈림길들을 탐구하는 데, 거기서 시작되는 관계들에 골몰하는 존재들이었다.
그 근간에는 ‘나’라는 1인칭 시적 화자가 시의 주도권을 잡는 것을 경계하는 태도가 있으리라. ‘나’라는 장소를 ‘나’로만 채워버리는 일에 대한 염려는 임승유 시가 안으로 파고드는 심상을 다루기보다 서사성을 띠게 했고, 신작 시집에서도 이런 인상적인 특장은 유감없이 발휘된다. ‘생명력 전개’라는 시집 제목에서 ‘생명력’은 “이야기에는 한 사람 이상이 등장한다. 나는 이야기에 등장하는 한 사람이 되었다가 이야기에서 빠져나오는 한 사람이 되기를 반복했다”라는 ‘시인의 말’에서 유추할 수 있듯, 원래 있는 것, 생물학적으로 타고나는 것이라기보다는 관계를 통해 부여되고 만들어지는 긴장감과 가능성에 가깝다.
임승유의 시에서 중요한 것은 ‘나’가 보는 것뿐 아니라 ‘나’를 둘러싼 것도 포함된다. ‘나’가 어떤 위기에 봉착해 있는 순간 ‘나’의 눈에 불현듯 들어오는 소철나무가 있는 풍경이나 내게 말을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는 인지는, ‘나’의 세계를 이루는 것이 ‘나’의 서정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준다. (…) 음식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재료가 당연히 필요하듯, ‘나’에 대해 말하기 위해 ‘나’의 시선뿐만 아니라 ‘나’를 둘러싼 시선 또한 존재한다는 것 역시 당연하다. 임승유가 전면화하는 일상의 낯선 감각이 이런 차원의 ‘당연한 것’을 앞세우고 있다고 상정할 때, 우리는 임승유의 시가 한 감정에 대해 말하기 위해 수많은 일상적-서사적 장치를 설정한 까닭을 헤아릴 수 있다. _선우은실, 해설에서
시편들에서 “한 사람 이상이 등장”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울먹이는 심정이” 된 ‘나’의 곁에 “갑자기 나타난 두 사람”이 “여기서 뭐하세요?”라고 선뜻 건넨 말 한마디 덕에 ‘나’는 “해가 비치는 지평선을 향해 천천히 움직”일 수 있었다(「소매가 긴 푸른 셔츠에 검정 바지」). 한편에선 “미나리 캐 올게”라는 한마디를 남기고 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나’가 있고(「그의 태도와 눈빛」), 남천 나무를 보며 어린 시절 기억 속 ‘금천’이라는 아이를 떠올리기도 한다. 시들한 남천과 “엄마 뒤로 숨던” 금천, “키우던 애가 커서/ 키우는 마음이 뭔지 아는 순간이 온다는 사실”이 남천-금천 이름의 유사성과 함께 새로이 다가온다(「중요한 역할」). 외출하기, 나갔다 들어오기, 기다리기, 우연히 마주치기, 알아보기, 기억을 떠올리기 등의 행위를 통해 발생한 관계와 장면들 쪽으로 나아가는 화자를 따라가는 즐거움이 이 시집을 읽는 기쁨일 것이다.
생활 속에서 전개되는 생명력이 있는가 하면 글쓰기 속에서 이루어지는 그것 또한 주목할 만하다.
이런 식으로는 안 되겠어. 되게 하려면 뭘 먹어야 하는데. 도통 뭘 먹는 법이 없는 여자가 등장하는 소설은 언제 끝날지 모르고 그녀는 자꾸만 음식 생각을 한다. 문장과 문장 사이에 음식 생각이 끼어들면 이야기가 진행되지 않는다. 생각을 몰아내고 문장에 몰입하기 위해 얼른 음식을 만들어 먹고 시작하자. 가장 손쉬운 건 감자. 수돗물에 감자를 씻어서 냄비에 넣고 기다렸다가 익으면 젓가락으로 푹 찔러서 먹는 거야. 문제는 바구니의 감자가 오래됐다는 것. 오래돼서 싹이 나서 벌써 이파리까지 상상해버렸네. 그렇다면 껍질 벗긴 후에 채 썰어서 감자채전을 해먹는 것도 방법. 스며드는 기름 감각. 하지만 그녀는 벌써 여러 번 감자채 썰다가 손톱까지 썰었기 때문에 그녀에게 썰게 할 수는 없다. 감자 써는 사람을 바꿀까. 아직 감자를 썰다가 손톱을 썬 적 없는 사람으로. 그로 하여금 껍질 벗긴 감자를 채칼에 대고 문지르게 하다가 위험해진다 싶으면 쥐고 있던 부분을 쓰레기통에 던지고 그다음 감자, 그다음 감자, 그렇게 하다가 감자채가 쌓이면 쌓인 감자채에 물을 부어 전분이 빠지도록 해놓은 다음에
물 묻은 손을 티셔츠 자락에 문지르며 책상 앞에 그가 앉는다. 앉아서 문장을 적어나간다. 아까 뒤로 빠져 있던 그녀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이 모든 과정을 문장으로 적어야겠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더 뒤로 빠져 있던 나는 그녀로 하여금 읽던 소설을 마저 읽게 하고 싶지만
그녀는 허기진 상태라서 이 문장이 끝나기 전에 전분이 빠진 감자채에 소금과 튀김가루 약간을 섞어 기름에 부치기 위해 일어나 부엌으로 가야 한다.
_「감자 양식」 전문
소설 속 등장인물인 “도통 뭘 먹는 법이 없는 여자”와 “앉아서 문장을 적어나”가는 ‘그’, “그녀로 하여금 읽던 소설을 마저 읽게 하고 싶”은 ‘나’, 이들이 소설의 안팎을 드나들며 각자가 먹는 것, 쓰는 것, 읽는 것에 영향을 주고받는다. 이 과정이 「감자 양식」이라는 시로 쓰임으로써 또하나의 층위를 갖는 것 또한 자명하다. 겹겹의 관계 속 인물들은 감자를 손질하고 채를 썰고 전을 부쳐 먹고 또 먹도록 하는 양식(糧食)에 집중하면서 시라는 장르의 양식(樣式)이 갖는 ‘나’의 권위로부터 멀어진다.
한편 「감자 양식」의 감자채전을 비롯해 이 시집에는 음식을 만드는 장면이 곳곳에 등장하는데, “마감도 하면서 만두 만들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만두에 대한 시를 쓰기로 했다. 만두를 미리 끌어와 시를 쓰고 시에 언급된 만큼 만두를 만드는 것이다.// (…) 지금은 만두만 생각하자. 만두란 무엇인가. 나는 만두에 대해 무엇을 아는가. 만두는 만두 만드는 일요일에 도착할 수 있는가. 그럴 때의 만두란 언젠가 먹어본 적 있으며, 오래 사귀던 사람과 헤어진 날 모퉁이 만두 가게에서 혼자 먹던 만두인데/오오 여기서의 만두란 그런 서정적 만두여서는 안 됩니다”(「만두」)라는 구절이나, “카레는 혼자 먹게는 안 되지. 먹게 된다면 며칠은 먹겠지. 어떻게든 먹으려고 양파를 썰다가 양파가 자라는 양파 밭을 떠올려도 눈물은 안 난다. 다만 떠올려보고 안 가본 데가 많았으므로 양파 밭에 들어가보기로 하는데”(「카레」) 같은 구절은 관념의 흐름을 서사적 방식으로 보여주며 ‘생활하기-시쓰기’의 은유로 읽히기도 한다.
남편 잡아먹은 여자
옛날 사람들은 두려움도 없이 저런 말을 잘도 했다. 엄마 혼자서 얼마나 많이 들었는지
모른다.
아버지란 사람이 너한테 가장 잘한 일은 일찍 죽어버린 거라고 말하던 엄마는 가장 잘 이해했다.
_「제라늄의 도움을 받아」 부분
숟가락으로 오이 속을 파내던 엄마가 이쪽을 까맣게 잊고 오이 속을 파내고 있으면
슬픔이 몰려옵니다.
슬픔을 함부로 입에 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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