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야기는 삶 속에서 계속된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 10주년 기념 특별판
섬세한 해석과 정교한 글쓰기로 신뢰받고 있는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 출간 10주년을 맞이했다. ‘사랑의 논리’ ‘욕망의 병리’ ‘윤리와 사회’ ‘성장과 의미’라는, 비평가로서의 주요 관심사 아래 총 27편의 영화에 관해 쓴 글 22편을 엮은 책은 10년간 꾸준히 읽히며 사랑받아왔다. 문학평론가의 영화평론이라는 감연한 시도는 금세 독자들을 매료했으나, 신형철은 자신이 “영화평론을 쓸 수는 없다”면서 겨우 “좋은 이야기란 무엇인가” 물어보려 한다는 겸허한 의지로 서두를 연다. 책을 읽은 독자에게 ‘좋은 이야기’의 행간을 통해 삶의 의미를 반추하고, 인간의 비밀을 곧게 들여다볼 마음이 생긴다면 저자의 ‘실험’은 성공한 셈이다.
“비전문가의 한계이자 특권이겠지만, 내 관심사는 영화 그 자체가 아니라(심지어 문학도 아니라) 삶이라는 서사다. 내가 위대한 영화 작가와 비평가들에게서 발견하는 미덕 역시 ‘영화적인 것’의 순수성에 대한 배타적 옹호가 아니라, 삶에는 예술이 밝혀내야 할 비밀이 많다는 사실에 대한 인정과 헌신이다.” _10주년 기념 특별판 ‘작가의 말’에서
10주년 기념 특별판 표지는 김마리(퍼머넌트 잉크) 디자이너가 함께했다. 약동하는 자연의 생명력은 ‘사랑’의 다른 이름이라는 관점에서 탄생한 표지는 『정확한 사랑의 실험』과 새뜻하게 조응한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을 포함하는 문장들과 어우러지는 표지 위 제목의 배치에는 “이 아름다운 책의 텍스트에 집중했으면 좋겠다는” 디자이너의 세심한 의도가 담겨 있다. 양장으로 단단하게 감싸면서도 본문 종이를 보다 가볍게 하여 만듦새와 편의성을 모두 고려한 특별판이 이번에는 독자에게 정확한 기쁨으로 가닿을 것이다.
정확한 논리가 주는 쾌감
정확한 인식을 담은 문장
이 책의 1부는 ‘사랑의 논리’라는 주제로, ‘정확한’이라는 형용사를 ‘사랑’ 앞에 세워두게 되면 어떠한 깊이에 도달하게 되는지 <러스트 앤 본> <케빈에 대하여> <아무르>를 통해 이야기한다.
2부는 ‘욕망의 병리’라는 주제로, 김기덕과 홍상수 영화에서 드러나는 욕망의 문제, 불안과 우울의 정서로 드러나는 종말의 서사를 <피에타> <다른나라에서> <뫼비우스> <우리 선희> <멜랑콜리아> <테이크 셸터>를 통해 이야기한다.
3부는 ‘윤리와 사회’라는 주제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물음을 둘러싼 논의들을 이야기하는데 대상 영화는 순서대로 <더 헌트> <시> <늑대소년> <설국열차>다.
4부는 ‘성장과 의미’라는 주제로, 살인과도 같은 성장의 의미와 희망 없이도 살아나가야 하는 삶의 의미를 <스토커> <머드> <라이프 오브 파이> <그래비티> <노예12년>을 통해 그리고 있다. 그리고 5부 ‘부록’에서는 <해리 포터와 죽음의 성물 2부>에서야 밝혀진 ‘스네이프’의 이야기를 성경 속 배신자 유다의 서사와 겹쳐 읽고, 영화를 보며 “순수한 쾌감으로 행복해한” 관객으로서의 이야기를 영화 <사랑니>를 통해 풀어놓는다.
둔한 내가 택할 수 있는 방법은 책을 읽을 때처럼 영화를 보고 또 보는 것뿐이었다. 한 편의 영화를 영화관에서 대여섯 번 보고 나서 열 줄로 이루어진 단락 열네 개를 쓰고 나면 한 달이 갔다. 누군가에게는 이 책이 부정확한 사랑의 폐허로 보이겠지만, 더 잘할 수 있었는데 상황이 여의치 않았다고 변명할 수는 없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나는 최선을 다했다.
―‘책머리에’에서
저자 신형철은 정확하게 쓰는 비평가가 되기를 원한다. 정확한 논리가 주는 쾌감이 그의 글을 읽게 만드는 힘이다. 정확한 인식을 담은 정확한 문장은 결국 아름다움을 획득하고야 만다. 정확한 글이 곧 미문인 것이다.
해석자의 꿈,
더 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한 노력
신형철은 지난해 한 매체에 발표한 글에서, 어떤 비평가가 되길 원하느냐는 질문에 “정확하게 칭찬하는 비평가”라는 답을 내놓기도 했다.(‘정확하게 사랑하기 위하여’, <한겨레21>, 948호) “칭찬할 수밖에 없는 텍스트에 대해서만 쓰겠다는 뜻”을 밝히며 어째서 “정확한 칭찬”인지에 대해서도 짧게 썼는데 어쩌면 이 책 한 권이 그 질문에 대한 긴 대답이 될 수도 있겠다. 『정확한 사랑의 실험』의 맨 앞자리에는 이런 문장이 있다. “해석자의 꿈이란 ‘정확한 사랑’에 도달하는 일일 것이다.”
영화감독 박찬욱은 이 책의 추천사에 이렇게 적었다. “이렇게 엄격한 사색의 결과를 이렇게 정확하고 유려하게 표현한 글을 얻는다면 그 영화는 복되다.” ‘정확하다’라는 말의 미덕은 <씨네21> 김혜리 편집위원의 추천사에서 또한 잘 드러나 있다. “어떤 부류의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에겐, 정확하고자 하는 노력이 사랑이다.” 저자에게 정확하게 사랑하기/받기 위한 노력으로 정확한 단어를 고르고 정확한 문장을 쓰는 일은 “인간이 과연 어디까지 섬세해질 수 있는지” 실험해보는 일이기도 하다. 그 노력의 결과로 ‘정확한 사랑의 실험’이라는 제목이 태어났다.
신형철의 영화 서사론은 곧 그만의 섬세한 눈으로 포착한 인간에 대한 탐사다. 그 두렵고도 매혹적인 심해를 밀도 있는 글을 통해 누구라도 잘 들을 수 있게끔 펼쳐놓는다. 그 글은 끝내 독자에게 하나의 질문을 던진다. ‘어떻게 살아야 하나?’ ‘좀 더 잘 살 수는 없을까?’ 하는 삶의 의미에 대한, 누구도 쉽게 답할 수 없는 물음을.
나쁜 질문을 던지면 답을 찾아낸다 해도 그다지 멀리 가지 못하게 되지만, 좋은 질문을 던지면 끝내 답을 못 찾더라도 답을 찾는 와중에 이미 꽤 멀리까지 가 있게 된다.
―214쪽에서
그 질문/실험의 결과를 담은 『정확한 사랑의 실험』은 끝내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게 만드는 무언가를 독자에게 남겨놓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