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려보았다.
물에 젖은 늙은 몸이 환하게 빛나는 순간을.
숲의 햇살과 함께 조각조각 부서지는 웃음소리를.
반의반의 반만큼의 상상을 더하여, 더 환한 풍경으로
여성의 목소리로 기록되는 다성多聲과 다감多感의 계보
여성의 원초적 생명력을 바탕으로 도발적인 서사와 관능적인 미학을 선보여온 소설가 천운영이 십 년 만의 다섯번째 소설집 『반에 반의 반』으로 독자 곁을 찾았다. 신동엽창작상, 올해의 예술가상을 수상하며 일찌감치 이야기꾼으로서의 저력을 보여준 작가는 그동안 취재에 기반한 생생한 장면 구성과 허위를 부수는 담대한 묘사, 터부에 홀연히 손을 뻗어 이야기 속으로 데려오는 과감함으로 한국문학에 전에 없던 궤적을 그려왔다.
『반에 반의 반』의 아홉 단편에서 들려오는 것은 세대도, 삶을 바라보는 시각도 다른 여성들의 목소리다. 다종다양한 그들에게는 공통점이 하나 있다. 연이 닿은 이들에게 무람없이 먹을 것과 잘 곳을 내어주는 다정함이 바로 그것이다. 본처 자식들에 의해 집에서 쫓겨난 둘째 시어머니를 다시 거둬들여 평생을 함께하는 며느리(「우니」 「내 다정한 젖꼭지」), 꽃놀이 가는 길에 만난 어린 오누이를 집에 들이고 아껴둔 이부자리를 건네는 할머니(「봄밤」). 가족을 넘어 더 많은 존재들의 생존 그 자체를 긍정하는 이 다감多感의 계보는 계속해서 아래로 아래로 이어져갈 듯하다.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도 우리가 모르는 이면이 있을까. 천운영은 ‘반에 반에 반’의 상상을 더하여 그 맹렬하게 아름다운 모습을 그려보인다. 체신을 중요시하는 집안의 가장에게는 부끄러움을 잠시 내려놓고 어머니와 물장구치는 순간을 선사하고, 희생만 하는 것 같던 어머니에게는 꿈결 같았던 봄날의 한가운데, 사랑하는 이와의 한때를 회상하게 한다. 소설가 윤성희의 추천의 말처럼 이 환한 풍경은 문장을 넘어 목소리가 되고, 혀끝으로 느껴지며, 마침내 읽는 이의 온몸을 통과한다. 천운영의 천연덕스러운 솜씨로 버무려진 이 시대 여성들의 생생한 삶이 여기, 『반에 반의 반』에 펼쳐져 있다.
천운영의 소설은 눈으로 읽으면서 동시에 귀로 듣는 소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의 말맛을 느끼려면 읽는 것도 듣는 것도 잠시 내려놓아야 한다. 그저 마음을 열어놓고, 불어오는 바람과 흘러가는 구름을 느끼며 풍경 속에 자신을 가만히 두어야 한다. 그러다보면 이야기는 굽이굽이 흘러갈 것이다. 이야기는 휘어지고 휘어질 것이다. 이야기는 내 안에서 “할랑할랑 흔들면서, 어깨를 들썩들썩, 뻗었다가 흘렀다가 올랐다가 내렸다가” 춤을 추게 될 것이다. 심장이 얼쑤 하고 추임새를 넣는다. 추임새가 메아리처럼 울려퍼지면, 이야기는 다른 이야기로 연결되고 삶은 다른 이의 삶으로 연결된다. 그 순간, 천운영 소설은 징해진다. 오메, 이토록 징한 삶이라니. 그 삶이 문장을 넘어서는 순간 천운영 소설은 읽으면서 동시에 듣게 된다. 눈으로 읽고, 귀로 듣고, 입으로 맛보다…… 그러다 마침내 온몸으로 통과하는 소설이다. _윤성희(소설가)
세상이라는 격랑을 헤치는 주름진 손
표제작 「반에 반의 반」은 어느 여름날 계곡에서 물놀이하던 ‘나’의 할머니를 추억하며 시작된 이야기다. 십이 년 전 세상을 떠난 기길현 할머니의 제삿날, 둘러앉은 친척들은 물에 젖어 속이 훤히 비치는 속치마 하나만 입고 춤을 추던 그녀를 각자의 기억에서 꺼내온다. 그러나 기길현의 장남인 ‘나’의 큰아버지만큼은 그런 기억이 없다고 잘라 말한다. 대신 그가 기억하는 것은 다른 장면이다.
사람들이 아버지를 잡겠다고 집에 들이닥쳤는데, 문 앞을 딱 막아선 사람이 바로 네 할머니였어. 양팔을 쫙 벌리고 버티고 서서는, 눈을 부릅뜨고 사람들을 쏘아보는 거야. 울고불고 애원하고 빌고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버티고 서 있는 거야. 그러곤 나지막이 사람들 이름을 불러. 아이 누구 아짐, 아이 누구 자식, 누구 동생, 누구 아버지. 하나하나 눈을 맞추면서, 무언가를 골라내고 있는 사람처럼. 아이, 아이,아이.
(…)
어머니는 그때 골라내고 있었던 거야. 그 양반이 떡을 해 먹였던 사람들을. 자식들 굶겨가며 만들어 돌렸던 그 떡. 그 떡이 아버지를 살렸다. 사람들 말마따나 그동안 쌓아둔 인심이. _ 「반에 반의 반」, 82~84쪽.
그가 들려주는 것은 6·25 전쟁의 한가운데, 작은 몸으로 거대한 힘에 맞서는 기길현의 모습이다. 없는 형편에도 동네 대소사를 챙기며 떡을 나누던 그녀는 그렇게 얻은 인심으로 남편을 위기에서 구해낸다. 큰아버지에게 기길현은 집안을 건사하고 재생산을 가능케 한 강인한 어머니이지 “함부로 옷 벗어던지고 흐트러지고 그럴 분”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소설가인 ‘나’는 상상 속 여름날의 계곡에 할머니와 큰아버지를 함께 소환해낸다. 기길현의 아들로서, 순수한 마음으로 어머니와 물장구를 치는 그를 그려본다. 반의반의 반만큼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 순간은 더없이 환하고 애틋하다. 관습과 관성에서 벗어나 어머니와 아들이 순수히 어우러지는 기꺼운 장면. 천운영은 가부장의 전형성을 깨뜨리는 시도를 통해 더 환한 풍경으로 우리를 이끄는 듯하다.
「우니」 「명자씨를 닮아서」 「내 다정한 젖꼭지」 「봄밤」으로 이어지는 연작소설은 살아가고자 하는 존재들에게 무람없이 먹을 것과 잘 곳을 내어주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자 그녀에게 길러진 존재들의 뒷이야기다. 재취 자리로 들어갔다가 남편의 죽음 이후 본처 자식들의 반발로 집에서 쫓겨난 순임. 그런 순임을 다시 거둬들인 것이 순임의 며느리 기길현이다. 수십 년을 함께하는 동안, 그들은 핏줄보다 서로를 더 잘 아는 사이가 되었다. 어느 날, 꽃놀이를 떠난 두 할머니는 갈 곳 없는 어린 오누이를 집으로 데려오고 만다. 갑자기 눌러붙은 군식구가 달갑지 않을 법한데도 길현은 오누이에게 이부자리를 내어준다.
입을 삐죽거리던 길현씨가 더이상은 못 봐주겠다는 듯 자리를 박차고 일어섰다. 계집애는 길현씨가 쿵쿵 발소리를 내며 안방으로 들어가고도 한참 뜸을 들인 후에야 엉덩이를 조금 더 안쪽으로 들이고 앉았다. 신발은 벗지 않은 채였다. 한동안 애 젖 빠는 소리만 가만가만했다. 순임씨의 몸이 박자를 맞추듯 좌우로 살짝살짝 흔들렸다. 계집애의 몸이 닿을 듯 말 듯 했다. 별안간 안방 문이 요란스레 열리더니 길현씨가 우렁차게 외쳤다. 뭐하고들 앉았어! 어서 자지 않고서는. 고함과 함께 베개가 툭 튀어나오더니 이어 이불 한 채가 문지방을 타고 넘어왔다. 길현씨가 막내며느리에게 혼수로 받아 장롱 속에 모셔둔 새 명주 이불이었다. _ 「봄밤」, 196~197쪽.
이 장면에 어울리는 단어는 ‘연민’보다는 ‘탄생’이다. 가족을 넘어선 새로운 공동체의 탄생이라 설명해도 좋을 것이다. 동네 사람들에게 인심을 쏟고, 연이 닿은 사람들을 먹이고 재우는 것. 그것은 천운영 소설의 여성들이 할 수 있는 당연스러운 베풂이다. 생존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무람없이 자리를 내어주는 그 다정함은 여성의 원초적 생명력과 닮아 계속해서 뿌리를 뻗는다.
맹렬히 사랑스럽게, 피할 수 없이 선명하게
소설집의 포문을 여는 「우리는 우리의 편이 되어」는 중년의 여성 소설가 ‘나’가 주인공이다. 한 잡지사에서 인터뷰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형식의 소설을 제안했을 때, ‘나’는 친구의 딸을 떠올린다. 친구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알아온 그녀는 이 년 전 가족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독실한 기독교 신자인 친구는 이를 받아들이기 힘들어한다. 비록 각자의 신념 때문에 평행선을 달리는 듯 보이지만, 이들이 인터뷰의 마지막에 떠올리는 건 서로다. 가족이기에 겪고 마는 갈등의 뒷면에는 서로를 향한 맹렬한 사랑이 있음을 소설은 말하는 듯하다.
「아버지가 되어주오」에서 ‘나’의 부모님은 지금 막 위장이혼을 마쳤다. 절세를 위한 방편이었다지만 아버지는 어머니가 정말로 자신을 떠날까 부산을 떨고, 큰딸인 ‘나’는 이참에 정말로 갈라서라며 아버지의 과오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