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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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20세기의 가장 무거운 악에 대한 ‘기억의 기록’ 가장 위대한 다큐멘터리 〈쇼아〉를 책으로 만나다 베를린 국제 영화제 칼리가리상, 국제비평가연맹상 로테르담 국제 영화제 최우수 다큐멘터리상 영국 아카데미 영화상 플라이어티 다큐멘터리상 프랑스 세자르 영화제 명예 세자르상 국제다큐멘터리협회 IDA상 “홀로코스트는 전적으로 부적절한 이름입니다.”〈/b〉 홀로코스트라는 단어 앞에서는 누구나 마음이 무거워질 수밖에 없다. 유대인 게토, 아우슈비츠 수용소, 가스실 등등을 떠올리며. 그러나 〈쇼아〉를 접하는 순간, 시몬 드 보부아르가 고백했듯 사실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우선 홀로코스트라는 표현에 대해 따져봐야겠다. 홀로코스트는 ? ‘불에 태워 신에게 바치는 희생 제물’이라는 뜻의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말이다?. 란츠만 감독은 홀로코스트라는 말을 사용하는 것은 나치 독일을 희생 제의를 집례하는 사제로 묘사하는 것이며, 학살당한 600만 명의 유대인을 신에게 닿기 위한 제물로 간주하는 것이라고 비판하면서 이 용어의 사용을 거부한다. 대신 재앙이라는 뜻을 가진 ‘쇼아’라는 히브리어를 사용한다. 쇼아의 대부분은 어두운 잿빛 하늘이 아니라 푸르고 화창한 날, 폴란드의 농부들이 평화롭게 농사를 짓는 일상 공간의 바로 옆 장소에서 벌어졌다. 오랜 굶주림으로 앙상하게 마른 열세 살 소년이 발목에 쇠사슬을 찬 채로 폴란드의 아름다운 강가에서 독일군 찬양 군가를 부르고, 아이는 풀어 주면 안 되느냐는 폴란드 농부의 부인에게 SS 병사가 아이도 곧 부모를 따라 하늘나라로 갈 것이라고 서슴없이 말한다. 목격자, 생존자, 그리고 풀려나서 인터뷰할 정도로 가벼운 처벌을 받은 나치 가해자들의 증언은 그 어떤 영화보다도 그 공포를 머리와 마음과 몸으로 느끼게 만든다. 〈b〉나치의 증거 인멸로 탄생한, 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b〉 1974년 클로드 란츠만은 이스라엘 정부로부터 유대인 학살에 관한 영화의 제작을 의뢰받는다. 그러나 란츠만은 곧 벽에 부딪혀야만 했다. 증거가 부족했기 때문이다. 수백만 유대인이 학살당했을 것이라고 추정되지만, 건물로 남은 것은 파괴하다 남은 아우슈비츠 수용소 하나뿐이다. 수십만 명이 학살된 헤움노 절멸 수용소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생존해서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은 단 두 명뿐일 정도로 나치는 철저하게 증거를 인멸했다. 또한 인류 최악의 범죄를 어떻게 영화로 재현할 수 있는가라는 윤리적인 문제도 걸림돌이었다. 란츠만은 이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11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그리고 난제를 푼 영화는 예술의 정치성과 윤리를 논할 때 가장 논쟁적이면서도 중요한 작품이 된 동시에 다큐멘터리 역사에 한 획을 긋는 작품이 되었다. ? 〈b〉오로지 증언과 현재의 풍경만으로 쇼아를 재현하다〈/b〉 란츠만은 과거를 직접 보여주는 자료 화면은 단 한 장면도 사용하지 않고 배경음악 등의 장식적 요소도 배제한 채,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과거를 회고하는 증언자들과의 인터뷰, 그리고 과거 학살이 있었던 장소들의 현재 풍경만을 담았다. 한 사람의 증언이 다른 사람의 증언을 이어지면서, 연필로 소묘를 그리듯이 쇼아라는 거대한 참사를 9시간 26분 동안 그려 나간 것이다. 현재의 장소들은 그런 일이 벌어졌으리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풍경이 바뀌어 있다. 헤움노 강가, 트레블링카의 들판과 숲에 버려진 돌들, 수용소를 향하던 철로 등 단지 몇몇 장면만이 옛 장소를 어렴풋이 보여줄 뿐이다. 그러나 란츠만은 바로 그 풍경 위에 증언자들의 기억과 말을 덧입혀 과거의 모습을 다시 되살려낸다. 결국 증언하는 이들의 목소리와 표정, 그리고 그들이 서 있는 장소를 통해 과거가 완전히 폐기되지 않고 현재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재현될 수 없는 과거의 고통이 현재를 경유해 역설적으로 재현된 것이다. 〈b〉쇼아 신드롬〈/b〉 이 영화의 독특한 영상 문법과 극도로 절제된 제작 방식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서구 지성계 및 예술계가 마주할 수밖에 없었던 윤리적 화두, 즉 유대인 학살의 ‘재현 불가능성’에 대한 란츠만의 해법이었다. 완전한 부재의 증명을 통해 역설적으로 쇼아 현재의 관점에서 보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학살 장면을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방식으로 재현하는 것을 ‘트라우마적 포르노’라고 배척하는 란츠만 감독은 〈쉰들러 리스트〉는 물론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은 영화의 재현 방식까지도 격렬하게 거부했다. 란츠만에 따르면 〈쉰들러 리스트〉는 시각적 재현이 가진 스펙터클과 매혹에 경도된 볼거리에 불과하며 관객을 의도적으로 안전한 자리에 위치시켜 쇼아를 그저 과거에 머물게 만든다. 이후 비극을 다루는 다큐멘터리 및 영화의 제작자들은 란츠만의 비판과 접근 방식을 의식하고 참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보편적인 입장에서 적힌 역사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의 증언을 통해 은폐되어 있던 대안적인 역사를 만든 〈쇼아〉는 개봉 즉시 평론가와 언론의 극찬은 물론 학계에 큰 반향을 일으켰다. 《뉴욕타임스》는 이 영화가 홀로코스트에 대한 관점을 바꿨다고 평가했으며, 지그문트 바우만은 물론, 자크 랑시에르, 조르주 디디-위베르만, 조르조 아감벤 등은 이 영화를 기반으로 정치와 미학에 대한 사유를 전개하기도 했다. 〈b〉영원성을 보증한 ‘각본’집, 《쇼아》〈/b〉 본래 스크린 속에서 자막은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지 않는다. 그러나 란츠만은 일종의 영원성을 보증하기 위해 자막에 또 하나의 새로운 지위를 부여했다. 자막들뿐 아니라 영상 속에서 발화된 모든 질문과 대답들, 즉 인터뷰어이기도 한 감독 자신의 질문과 통역을 경유한 증언자들의 구술을, 반복되는 말버릇이나 머뭇거림 혹은 침묵까지도 빼놓지 않고 활자화했다. 란츠만의 표현을 빌자면 “영화 속에서는 영상이 제공되는 순서에 따라 끊어서 읽을 수밖에 없었던 일련의 순수한 순간들을 페이지 한 장 한 장에 기록”한 자막들을 읽다 보면, 보부아르가 란츠만의 영상 편집에 대해 말한 “한 편의 시와 같은 구조”라고 표현이 떠오른다. 〈b〉영화와는 또 다른 체험〈/b〉 글을 읽는 것은 영화를 보는 것과는 아주 다른 체험이지만, 영화 〈쇼아〉를 거의 온전히 글로 옮긴 이 책에는 기나긴 서사시로 읽히는, 텍스트만이 지닌 고유한 힘이 있다. “이런 단어를 사용해서 설명해도 될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그들의 목소리 하나하나는 산문이 아니라 시적인 리듬으로 들린다. 독자들은 영화와는 또 다른 방식으로 쇼아라는 과거의 심대한 비극이 그 시대를 몸으로 지나온 개개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남긴 심연을 ‘느낄’ 수 있다. 그 비인간성 혹은 고통의 기억과 재현의 문제에 대해서, 이미 영화를 접한 독자들은 보다 찬찬히 다시 한번 곱씹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영화를 접하지 않은 독자들은 보다 새롭게 그리고 충격적으로 마주할 기회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