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녕대군은 영화로운 제왕의 길을 헌 짚신 짝처럼 내팽개치고 솔직하고 자유로운 삶을 도모했던, 우리 역사에서 왕세자 자리를 내던진 오직 한 인물이다.
월탄 박종화는 이러한 양녕대군을 '조선왕조실록'등 각종 자료를 섭렵하여 일대기를 구성하고, 여기에 독자적인 시각으로 성격을 창조하여 그를 역사 속의 인물인 아닌 우리 눈앞에 살아 움직이는 인물로
형상화하고 있다.
박종화 특유의 입담과 예기치 못한 사건 전개로 흥미진진양녕대군은 세자의 길을 버리기로 결정하고 탕아의 길을 걸어간다. 그 과정에서 장안의 기생과 악공, 완패들을 세자궁으로 불러들이고, 월담하여 대가댁 소실을 빼앗아온다. 장안의 기생들과 놀아나고 소실들을
차지하는 장면이 박종화 특유의 입담과 걸쭉한 묘사로 읽는 이들을 재미에 푹 빠져들게 한다.
폐세자가 되어 광주(廣州)에서 거처하게 된 이후 양녕은 광주유수한테 푸대접을 받는데, 양녕을 배행하는 장사패들이 광주유수에게 앙심을 품고 있다가 그를 잡아 시장바닥에서 호랑감투를 씌운다. 옷을 다 벗긴
후 바지에 두 팔을 끼우고 그 바지로 얼굴을 뒤집어씌운 것이다.
세종이 등극한 이후 세종과 술과 색을 멀리하겠다는 약속을 하고 평양으로 유람을 떠나는데, 세종은 평양감사한테 밀지를 보내 평양에 양녕이 나타나거든 기생 수청을 들게 하라고 한다. 술과 기생수청을 거부하던
양녕은 결국 평양기생 정향이의 꾀에 넘어가 정향이와 몇날며칠을 지내고 정향이의 치마에 시까지 써준다.
한문투의 속어와 속담을 유창하게 구사예들 들자면 '당구삼년폐풍월(堂狗三年吠風月)'이라 하면 요즘 사람들은 무슨 말인지 알기 어렵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는 말이다. 접수화 해수혈 같은 말도 있다. 접수화 해수혈(蝶隨花蟹隨穴)은
나비가 꽃을 따르고 게가 구멍을 찾는다 하여 남녀간의 일을 표현한 말이다. 이처럼 선인들이 쓰던 재미있는 한문투의 표현을 유창하게 구사하여 읽는 재미를 한껏 더해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