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리, 교환일기를 쓰기로 했어요!
30대 며느리와 60대 시어머니의
직진하는 대화, 우회하는 마음, 공감하는 시간을 만나다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친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즉각적인 반박은 “며느리와 시어머니가 꼭 친해져야 할까?”일 것이다. 서로의 삶에 참견하지 않고 각자의 인생을 존중하는 쿨한(?)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야말로 요즘 세대가 지향하는 추구미(!)가 분명한 것 같다. 그런데 여기, 누구보다 따뜻한 공감와 다정한 마음을 나누며 교환일기를 주고받았다는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있다.
출판사를 운영하며 책을 쓰고 그림을 그리는 30대 며느리 여준은 어느 날 다짜고짜 시어머니 현미에게 “교환일기를 쓰자”고 청한다. “가까워질수록 괴로움의 구렁텅이에 빠져버린다는 그 악명 높은 고부 관계로” 만났지만, 그는 시어머니를 보자마자 호감을 느껴버렸다고, 그래서인지 “시어머니와 며느리 사이의 불문율을 깨고” 점점 더 가까워졌다고 털어놓는다. 아픈 날에도, 불안이 가득 차는 날에도, 여준은 친정엄마가 아닌 시어머니 현미를 찾았고 두 사람은 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곤 했다. 그러다가 여준은 내친김에 함께 교환일기를 쓰자고 제안해 버린 것이다.
“사실 저는 내향적인 편이지만, 어릴 때부터 제가 좋아하는 유형의 사람에겐 굉장히 적극적으로 다가가곤 했어요.” 여준의 고백은 이 특별한 교환일기의 출발점을 명확히 보여준다. 그는 시어머니가 진심으로 좋았다. 그리고 뜻하지 않게 좋은 어른을 만난 것이 특히 좋았다. 그러니 사회적 관계에서 기대되는 역할이나 거리두기를 과감히 버리고 이토록 ‘우연한 필연적 관계’를 우리만의 방식으로 새롭게 만들어가기로 했다. 그렇게 시어머니와 며느리라는 관계에 ‘현미 씨’와 ‘여준이’를 더해 나갔다.
다정한 이별을 상상할 수 있다면…
죽음이라는 주제 앞에서, 우리는 더 가까워졌다
여준과 현미가 나눈 대화는 특별하지 않으면서 동시에 대단히 특별하다.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고자 하는 자세를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나눌 수 있는 대화라서 특별하지 않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나누는 대화의 주제라고는 상상하기 힘든 삶과 죽음에 대한 성찰, 과거와 미래, 무언가를 애호하는 마음, 진한 우정에 대한 생각 등 그 무한한 소통의 범위에서 오고 가는 통찰이 대단히 특별하다.
여준과 현미는 처음부터 서로를 보는 순간 서로가 너무 좋았다고 이야기했지만, 교환일기라는 형식의 글을 통해 생각을 주고받으면서 이 관계는 호감을 넘어 깊은 이해로 발전한다. 현미는 “남 배려하다 지레 죽는 성격까지 어찌 그리 닮았는지” 신통하면서도 자신과 너무 닮은 여준이 스스로를 갉아내는 삶을 살까 봐 걱정한다. 여준은 자신처럼 공감 능력이 뛰어난 ‘공감 요정’ 현미가 지나치게 많은 것들을 포용하다가 어느 순간 지쳐버릴까 봐 자신을 지키면서 살자고 제안한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상상하고 기대하는 30대 여준과 새로운 것을 펼쳐나가기보다는 완성을 향해 나아가며 지난 시절들을 돌아보고 반추하는 60대 현미. 언뜻 생각하면 이런 두 사람 사이에 공통된 대화의 주제가 만들어질 수 있을까 싶겠지만, 뜻밖에도 두 사람이 가장 깊이 있고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눈 주제는 바로 ‘죽음’이었다.
여준과 현미는 영화 <룸 넥스트 도어>에서의 죽음과 우정을 이야기하며, 각자가 겪어온 죽음을 통해 고민하게 된 삶과 죽음의 경계를 이야기한다. 두 사람이 경험한 죽음의 얼굴들은 각각 달랐지만, “죽음이 다가오고 있음을 강하게 직감할수록 더 부정하고 싶은 마음에 죽음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를 나누는 걸 죄악시”하는 경향을 거스르며 더 솔직하게 지나간 죽음들과 언젠가 자신에게 닥칠 죽음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현미는 <룸 넥스트 도어>에서 투병하던 마사r 마지막을 지킨 잉그리드에게 전하듯이, “일생을 남 배려하고 걱정하던 내 모습 다 잊어버리고 하고 싶은 말, 생각 다 뱉어내고 편안히 마무리할 수 있게 도와줘야 해, 알았지?”라고 여준에게 당부한다. 그런 현미에게 여준은 ‘어머니, 그런 말씀 마세요!’라는 말 대신, “제가 어머님의 잉그리드가 될게요. 지나온 삶을 이야기하는 추억여행의 친구도 되고, 죽음이라는 두려움 앞에서 솔직해질 수 있는 대화 상대도 되고, 어머님의 존엄을 위해 무엇이든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될게요.”라고 화답한다. 언젠가 맞이할 죽음의 순간에, 혹은 죽음을 앞둔 시간에, 서로의 존엄을 위해 무엇이든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할 수 있는 관계라면, 이 관계야말로 ‘찐친’이라 불릴 만하지 않은가.
새로운 존재가 나의 세계에 등장했다
시어머니에게 손잡고 대화하고 싶다고 달려드는 그런 며느리가
여준은 시어머니 현미와 교환일기를 쓰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엔 주변에 알리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이 일기가 그저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사담으로 남을 수도 있어서, 관계가 틀어져 이 일기가 멈출 수도 있어서 조용히 일기를 주고받았다는 것이다. 후자의 경우 다행히 일기를 세상에 내놓을 수 있을 만큼 여전히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어 걱정을 덜었다. 그리고 당사자로서는 의미 있는 대화였지만 혹여 독자들에게 사담으로 읽히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있었음에도, 그는 이 일기를 세상에 내놓기로 했다.
“세상이 불편한 관계라고 말하는, 괜히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다그치는, 말이 안 통할 거라고 고개를 내젓는 편견을 부수고 싶은 이들에게 힘이 되”기를, “긁어 부스럼을 미리 두려워하고 싶지 않은 이들에게도 소박한 응원이 되”기를 바랐기 때문이다. 또한 “60년대생과 90년대생 여성이 주고받는 삶과 죽음, 과거와 미래, 영화와 문학, 그리고 가족에 대한 이야기”에 세대와 사회적 관계를 넘어서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현미는 이런 며느리의 존재가 그저 고맙고 기쁘다. “한 해, 한 해 묶은 나이의 매듭이 길어져 어느새 아래쪽으로 더 길게 향하”고 매듭은 계속 굵어지기만 해서 “점점 더 자기중심적인 판단 기준이 강해지”고 그 안에 갇히고 있었는데, 며느리 덕에 ‘그렇고 그런 일상’에 새로운 모험이 더해진 것이다. 젊은 사람이 나이 든 사람에 대해 관심을 갖고 궁금해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이 “존경스러울 정도”였다고 고백하는 시어머니 현미 씨. 그는 사느라 바빠 챙겨본 적 없었던 여리고 순수했던 과거를 떠올리고, 마음 한구석에 방치되어 있던 진짜 마음도 다시 들여다보면서 교환일기가 남긴 의미를 되새겼다.
이 책은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만났지만 결국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 만나 서로에게 진심으로 다가가는 용기에서 시작된 이야기다. 모든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이렇게 될 수 있다고 말하는 것도 아니고, 자신들이 특별히 훌륭해서 가능했다고 과시하는 것도 아니다. 다만 용기를 내어 먼저 손을 내밀고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할 때 어떤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를 보여줄 뿐이다.
“부디 이 일기가 마지막이 아니길 바라며”라고 쓴 여준의 마지막 문장처럼, 두 사람의 대화는 계속될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을 읽은 누군가도 용기를 내어 가까운 사람에게 먼저 손을 내밀게 될지도 모른다. 관계에 대한 편견을 버리고 진심으로 다가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교환일기가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