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현대미술계의 올림픽,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가 전 세계의 많은 아티스트, 컬렉터, 마켓은 ‘그랜드 아트 투어’를 주목한다. 비엔날레의 제왕 베니스 비엔날레, 대학도시인 카셀에서 열리는 도큐멘터, 공공미술의 현주소를 확인할 수 있는 뮌스터 조각 프로젝트에서 동시대 시각예술 현장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현대미술계의 올림픽’이라 불리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는 참가국들이 ‘황금사자상’을 수상하기 위해 경쟁한다. 국제적이기는 하나 대중적이지 않은 미술인들의 빅 이벤트를 주목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작품의 가치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이 비엔날레에 모이는 사람들, 즉 특권계층이 현대미술의 가치와 가격을 결정한다고 저자는 말한다. 그리고 예술철학자 아서 단토의 ‘아트월드’의 개념을 빌어 이들을 ‘협의의 아트월드’라 지칭한다. 이 책에서는 바로 협의의 아트월드에 속하는 마켓, 뮤지엄, 큐레이터, 아티스트, 비평가를 중심으로 일어난 현대미술계의 크고 작은 사건들을 통해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추적하고 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 제도권의 논리는 어떻게 현대미술을 움직이는가 ‘현대미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이 거대한 물음에는 많은 것이 담겨있다. 산업화된 시대의 미술은 작품 그 자체로 평가될 수 없기 때문에 한 줄로 정의 내리기 어렵기 때문이다. ‘아트는 투자가 아니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세계적인 기업 총수, 재벌들은 슈퍼 컬렉터가 되어 작품을 수집한다. 대부호인 갤러리스트들은 고액의 작품을 사고팔며, 터무니없는 수수료 때문에 소송에 휘말리기도 한다. 그 와중에 아티스트들은 학술 용어인 인류세의 개념을 작품에 적용하며 점차 묘사보다도 철학에 관여하고 있다. 롤스로이스의 후원을 받았으면서도『자본론』을 낭독한 전시를 펼친 오쿠위 엔위저의「베니스 비엔날레」(2015), 서양과 비서양의 작품을 대등한 관계로 전시한 마르땅의「대지의 마술사들」 전(1989), 반 고흐 작품과 아웃사이더 아트를 나란히 전시한 얀 후트의「오픈 마인드」 전(1989) 등 전설적인 큐레이터들은 전시회를 통해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한다. 한편 미술관에서는 자체적인 작품 검열로 전시 개최가 중단되기도 하고, 작품 전시뿐만 아니라 사회적·사교적인 장으로 미술관의 역할은 확대되고 있다. 여러 가지 상황의 균형을 맞춰줄 비평가와 미술전문 매체는 광고 지면을 늘리면서 그 역할과 영향력을 상실하고 있다. 이렇게 협의의 아트월드는 자본주의 시장경제 혹은 어떤 제도권의 시각에 따라 현대미술계를 이끌고 현대미술을 정의해왔다. 산업화된 시대의 미술, 관람객의 역할은 무엇인가 자본주의 시장경제에 기대지 않은 현대미술이란 가능한 일인가? 현대미술 역시 다른 소비재와 마찬가지로 자본주의 논리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 논리에서 벗어나 현대미술을 바라볼 수 있는 것은 개개의 아트러버(미술애호가), 즉 관람객이다. 그동안의 관람객(감상자)는 지각 혹은 인지하는 형태로 ‘망막적 회화’에 의존해왔다. 그러나 동시대의 현대미술 아티스트들은 ‘보고 느끼는 것’만으로 해석되지 않을 다종다양한 작품을 만든다. 마르셀 뒤샹의 <샘>(1917) 등장 이후 20세기 아티스트들은 망막적 회화 이외의 영역을 추구하며 작품 활동을 했다. 그림물감을 캔버스에 흩뿌려 추상미술로 전개하거나(잭슨 폴록), 2차원의 회화 기법인 원근법을 3차원화하며 다양한 지각을 작품으로 제시하거나(다카마츠 지로). 또 미술관 안에서 관계 미학을 내새우며 팟타이를 방문객들에게 공짜로 대접하며 제도를 비판하거나(리크리트 티라바니자) 천안문 광장 앞에서 뻑큐를 날리며 정치, 사상에 대한 견해를 작품으로 표출한다(아이 웨이웨이). 어릴 때 당했던 학대를 당했던 개인의 경험을 자전소설처럼 작품으로 만든다(쿠사마 야요이, 루이즈 부르주아). 그동안의 보편적인 작품 감상에는 미술 이론과 미술사의 지식이 필요했다. 그러나 현대미술 작품의 감상자가 아티스트만큼 제도를 알 필요는 없다. 문제의식을 갖고 작품 활동을 하는 동시대의 아티스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세계정세나 세계사의 지식이 훨씬 중시되고 있다. 물론 미술 이론, 미술사를 알아두면 감상의 즐거움은 풍성해질 것이다. 제도권에서 벗어난 관람객이 할 수 있는 건 능동적인 해석자가 되는 것이다. 더불어 작품 감상의 경험을 늘리고 현대미술과 관련된 이슈에 지속적으로 관심 역시 필요하다. 보고 느끼는 능력은 사실 누구에게나 갖춰져 있다. 다만, 사물을 평가하는 데에는 견문을 넓히고, 지식을 늘리는 등의 인생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산업화된 시대의 미술을 접하는 관람객이 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