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성문 헌법의 출현과 확산을 통해 근대 세계의 부상을 새롭게 논하는 생생하고도 권위 있는 책!
•〈파이낸셜 타임스〉와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2021년 ‘올해 최고의 책’
• 헌법주의의 미래에 관한 국제 포럼(International Forum on the Future of Constitutionalism)이 선정한 2021년 ‘올해의 책’
• ‘컨딜 역사상(Cundill History Prize)’ 최종 후보작
대단히 광범위하고 탁월한 독창성을 갖춘 《총, 선, 펜》은 1750년대부터 20세기까지 세계 차원의 성문 헌법 역사를 추적함으로써 기존의 내러티브를 수정하고 헌법 제정과 전쟁 수행 간의 긴밀한 연관성을 파헤친다. 이 과정에서 유명 헌법들을 재평가하고, 그동안 하찮게 여겨졌지만 근대 세계의 부상에 핵심 역할을 담당한 헌법들을 근사하게 되살려낸다.
또한 1755년 선구적 헌법을 제정한 코르시카,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영구히 부여한 태평양의 작은 섬 핏케언 등 그간 소홀히 다룬 지역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런가 하면 미국 건국의 아버지들이 미국 헌법의 틀을 짜기 수십 년 전에, 계몽적 색채의 나카즈(Nakaz)로 헌법 기술을 실험한 러시아의 예카테리나 여제 같은 뜻하지 않은 인물들의 기여도 부각한다.
성문 헌법은 개별 국가들과 관련해 검토되는 게 일반적이지만, 저자는 헌법이 어떻게 국경을 넘어 1918년경 6개 대륙으로 퍼져나갔으며, 국가뿐 아니라 제국의 부상을 도왔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성문 헌법이 어떻게 법과 정치는 물론 그보다 더 넓은 문화사, 인쇄술과의 관련성, 문학적 창의성, 소설의 부상 등에서 나름의 소임을 다했는지 조망한다.
린다 콜리는 헌법이 어떻게 장대한 혁명을 촉진하고 백인 남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했을 뿐 아니라, 기나긴 19세기에 걸쳐 토착민을 주변화하고 여성과 유색 인종을 배제하며 토지를 몰수하는 데 사용되었는지 파헤친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어떻게 유럽 및 미국의 권력에 저항하려는 서구 밖 인물과 활동가들이 헌법이라는 장치를 활용했는지 들여다본다. 저자는 어떻게 1861년 튀니지에서 최초의 근대적 이슬람 헌법이 제정되고 이내 억압당했지만 ‘아랍의 봄’에 영향을 미쳤는지, 어떻게 미국 남북전쟁에 영감을 받은 시에라리온의 아프리카누스 호턴이 서아프리카 자치 국가들을 위한 계획을 고안할 수 있었는지, 또 어떻게 일본의 1889년 메이지 헌법이 인도·중국·오스만의 민족주의자 및 개혁가들에게 서구 헌법주의와 어깨를 겨루는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는지 설명한다.
생생한 서술과 멋진 삽화가 돋보이는 《총, 선, 펜》은 세상을 뒤흔든 전쟁·강력한 지도자·선견지명을 지닌 입법가·헌신적인 반역자 들을 내세운 흥미진진한 역사를 통해, 입헌 정부에 대해, 그리고 근대성 개념이 어떻게 발전했는지에 대해 들려준다.
다음은 저자가 직접 밝힌 집필 방향이다.
“그 어떤 단일 서적도, 그리고 분명 그 어떤 단일 저자도 18세기부터 제1차 세계대전 시기까지 해상 및 육상의 국경 지역을 넘나들면서 발생하고 오늘날까지 내내 경계와 정치와 사상의 패턴을 주조하고 있는 엄청난 규모의 헌법적 창의성과 논쟁 그리고 결과물을 본격적으로 다뤄보겠다는 야심을 품기 어려울 것이다. 이와 관련한 전개 과정에는 문서화할 수 있고 문서화해야 하는 수많은 상이한 역사가 존재한다. 나 자신의 전략은 새로운 헌법과 다양한 전쟁 및 폭력 간의 거듭되는 맞물림에 영향을 주고, 그로부터 출현한 일련의 주요 주제와 위기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이었다. 개략적인 연대순에 따라 정리되어 있는 본문의 각 장은 이들 주요 주제 및 발화점 가운데 하나를 중심으로 펼쳐진다. 각 장은 특정 장소와 특수한 헌법 제정의 에피소드를 소환하는 방식으로 시작된다. 그리고 문제된 그 주제가 세계의 다른 지역들에 널리 영향을 끼치는 현상을 탐구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다
청나라 말기의 사상가 캉유웨이(康有爲)가 변화의 기운을 감지한 것은 이스탄불에서였다. 예순 살의 철학자이자 개혁가로 고국 중국에서 추방당해 방랑자 신세이던 그는 1908년 여름 오스만 제국의 심장부에서 혼란의 한복판에 놓였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러시아와 영국이 술탄 압둘하미드 2세의 영토에 속한 마케도니아를 장악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정부의 무능을 드러내는 징표로 받아들인 일부 오스만 제국 군대가 반란을 일으켰고, 그들은 1876년에 발효했지만 곧바로 철회된 그 제국의 최초 성문 헌법이 복원되길 바랐다. 캉유웨이는 오스만 제국의 반군이 그 헌법의 공식 복원에 성공한 7월 27일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그는 반군 지도자들이 술탄에게 보낸 최후통첩의 골자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들은 저마다 무릎을 꿇고 고했다.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습니다. 오직 튀르키예만이 그것을 선언해놓고 폐지하는 바람에 국민이 만족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군인들의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을 제압하기 위해 반란군이 제기한 주장에 대한 설명이다. 캉유웨이에 따르면, 그들은 그 제국의 일반 병사들 사이에서조차 ‘생각’이 ‘바뀌었다’고 강변했다. 게다가 그들은 훨씬 더 외면하기 힘든 주장을 펼쳤다. 지금, 그러니까 1908년에 “모든 나라에 헌법이 있다”고 역설한 것이다. 18세기 중반 이후 새로운 성문 헌법이 여러 국가와 대륙에 걸쳐 점점 더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고, 이는 다양한 정치적·법적 제도를 형성하고 재편하는 데 영향을 끼쳤다. 아울러 사고, 문화적 관행 그리고 대중의 기대 유형에 혼란을 안겨주고 또한 그것들을 변화시켰다.
성문 헌법에 대한 일반적 이해 또는 오해
성문 헌법은 특정한 법적 제도라는 렌즈를 통해, 그리고 애국심에 비추어 바라보는 게 일반적이다. 따라서 보통 개별 국가와 관련해서만 분석된다. 그것은 육지와 바다의 경계를 점진적으로 넘나드는 전염성 짙은 정치 장르로 간주되어온 기간 동안에는, 대개 전쟁이 아니라 혁명에 따른 결과로 여겨졌다. 특히 성문 헌법의 부상은 미국 독립 혁명을 비롯해 프랑스 혁명, 아이티 혁명, 중앙아메리카와 남아메리카에서 불거진 여러 봉기 등 대규모 혁명이 영향을 미친 결과로 받아들여졌다. 때문에 이 같은 새로운 헌법의 주요 원동력에 대해서는 흔히 선택적 방식의 설명이 이루어지곤 한다. 성문 헌법의 출범과 그에 대한 인기가 증가한 것은 공화주의의 부상 및 군주제의 쇠퇴와 궤를 나란히 하는 현상으로 간주되며, 세계 전역에 걸친 기세등등한 민족 국가의 성장 및 거침없는 민주주의의 진보와 관련된 것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그러나 주요 혁명, 공화주의, 국가 형성 및 민주주의와 연관된 현상으로 접근하면 논의가 지나치게 협소해지고 잘못된 길로 접어들 수 있다. 1914년 이미 성문 헌법은 전 대륙 차원에서 규범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남북 아메리카 바깥에서는 당시 대다수 국가가 여전히 군주제를 실시했다. 1914년에 남북 아메리카를 비롯한 그 어느 대륙에서도 완전한 형태의 민주주의 국가는 없다시피 했다.
많은 사회와 민족이 성문 헌법에 투자해온 이유
수 세기에 걸친 그토록 많은 성문 헌법이 수명도 제한적이고, 많은 경우 책임 있는 통치 및 내구적 권리를 보장해주는 장치로서 효과 역시 신통치 않은데, 대체 왜 많은 사회와 민족이 그토록 집요하게 시간·창의성·사고·희망을 종이 및 양피지에 적은 이런 유의 정치적·법적 장치에 투자해온 것일까?
이 책은 대략 수 세기에 걸쳐 일어난 이례적인 변화, 즉 세계 전역의 국가·정치 행위자·평범한 남녀가 반응하고 생각하고 행동하고, 그리고 그들의 신뢰를 표명하는 방식의 이례적 변화를 도해화하는 데 관심이 있다. 저자는 여러 지리적 공간에 걸쳐 단일 문서인 성문 헌법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상을 설명할 때 순차적으로 휩쓸고 간 대규모 전쟁과 침략이 맡은 역할을 강조한다. 이런 유의 텍스트가 급증한 현상은 흔히 민주주의의 부상과 특정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