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도재경의 소설을 읽는 일은 앞으로 어떤 일이 덮쳐 올지
알고 있음에도 수십 번 같은 선택을 하는 타자를 믿는 일임과 동시에
나 자신을 깨우는 일이고 깊은 겨울밤, 두 사람이 먹었던 파인애플의 맛을 상상해 보는 일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이미 존재하고 있던 그림자의 주인을
마주하는 일이며, 삶이란 그 자체로 충분한 가치가 있다는 진실에
함께 뛰어드는 일이다. 나는 이 소설들을 읽는 동안 우리가 머물렀던
사랑과 마음에는 거짓이 존재할 틈이 없었음을 보았다. 말하자면 절벽 끝까지
내몰린 순간에서도 끝내 지키고 싶었던 푸르른 풍경 너머의 진실을.
ㅡ 이주란(소설가)
진실과 거짓 사이, 현실과 비현실 사이의 이야기들
소설가 도재경의 단편 소설 여덟 편을 모은 작품집이 열린책들 <한국 문학 소설선>으로 선보인다. 표제작인 「춘천 사람은 파인애플을 좋아해」를 비롯해 이번에 개작한 「그가 나무 인형이라는 진실에 대하여」 등 코로나19 시기 때부터 최근까지 발표한 단편들은 탁월한 이야기꾼으로서의 도재경 세계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특히 이번 작품집은 <경계>, <결별>, <사랑>의 세 가지 키워드로 소개할 수 있는데, 첫 번째로 책 속에는 진실과 거짓, 현실과 비현실, 외면과 내면 등 다양한 경계와 그 경계에서 방황하는 존재들이 등장한다. 두 번째로 책에는 여러 헤어짐이 등장한다. 가족을 잃거나 친구가 사라지거나 혹은 알 수 없는 존재로 인해 평범한 일상과도 결별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도재경 작가는 <사랑>에 관해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것은 예술과 문학에 관한 사랑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이번 작품집은 소재 면에서도 도재경만의 독특한 색채를 지니고 있다. 「그가 나무 인형이라는 진실에 대하여」와 「방독면을 쓴 바나나」, 「태리」에서는 판타지적인 소재들이, 그리고 「마인드 컨트롤」과 「푸른 먼지」, 「BMNT」에서는 SF 등의 장르 소설에서 보일 법한 소재들을 끌어오면서 현실과 비현실 사이를 자연스럽게 섞어 버린다. 글을 읽다 보면, 독자는 무엇이 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지 못하게 되는데, 그 경험이 굉장히 즐겁고 재밌어서 다음에 이어질 이야기는 또 어떻게 펼쳐질지 기대하게 된다. 그야말로 환상적이다. 도재경의 소설에 관해 정용준 소설가는 <읽는 것을 넘어 목소리로 들리는 문장, 기억되는 것을 넘어 마음에 새겨지는 이야기>로, 방민호 평론가는 <소설이 어떤 주제 이전에 그만의 색채를 갖춘 문체의 예술이라는 사실을 아주 잘 이해하고 있는 작가>로 각각 평했듯이 도재경의 작품집은 독자에게 실로 오랜만에 소설이라는 예술에 푹 빠지게 해준다.
“소설은 결국 사후의 이야기입니다. 소설가가 하나의 이야기를 전개하는 동안 그 소설의 내용을 이루는 현장에는 있을 수 없습니다. 책상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하는 게 소설가의 운명이죠. 기억이나 상상 등 다양한 표현 도구를 수집하면서 현장을 응시해야 합니다. 단순히 보는 게 아니라 여러 각도에서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이 소설의 화자는 제게 고마운 존재입니다. 이러한 과정을 저를 대신해 수행해 주었으니까요. 우리는 각성하는 존재인데 왜 같은 실수를 반복할까요? 무언가 끊임없이 반복되고 있다는 불길한 느낌이 들 때가 있습니다. 더 이상 외면하지 말고 이야기해야 하는 게 아닐까. 이 소설을 쓰면서 이야기의 본질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수없이 질문했습니다. 이야기는 우리를 위로하고 치유합니다. 이야기에는 우리의 삶을 지속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나〉라는 인간은 이야기의 숙주에 불과한 게 아닌가, 라고 이따금 생각 들곤 합니다. 인류가 지구상에 태동하던 순간부터 이야기가 출현했듯이, 지구 종말의 순간까지도 이야기는 남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이야기를 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과도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꿈에서도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 마지막 이야기는 누가 하게 될까요?” ㅡ 도재경, 문학평론가 박인성과의 인터뷰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