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2004년 번역출간된 <열네 살>로 국내에도 이름을 알린 일본의 만화가, 다니구치 지로의 작품 중 두번째로 소개되는 책이다. 저자가 경험했다고 밝힌 1950년대 전후 일본 돗토리현에서 일어난 대화재를 큰 소재로 차용하고 있다. 사이좋은 부모님과 다정한 남매, 남 부러울 것 없이 살아가는 평범한 가정은 어느 날 일어난 마을의 화재로 인해 집이 소멸되며 삐걱거리기 시작한다. 평생을 함께일 것 같던 부부 사이에도 힘든 생활고로 인해 골이 생기고, 오해와 실망은 부지불식간에 걷잡을 수 없이 커간다. 어린 주인공의 마음에도 석연치 않았던 분위기는 어른이 된 후에 돌이켜 생각하는 과정에서 하나씩 납득이 되어간다. 이 작품에서 소설적 장치로 사용되는 굵직한 것들은 어찌보면 <열네 살>의 그것들과 흡사하다. 어떤 계기로 인한 가족의 분열, 부모에 대한 자식의 오해, 그로 인한 어긋남은 정해진 수순처럼 진행된다. 여기에 결말부에 더해지는 서로간의 이해를 위한 화해의 손길까지도 흡사하다. 그러나 <열네 살>보다 앞서 발표된 작품이고, 순서를 따지자면 앙굴렘에 노미네이트된 작품으로는 먼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연재된 작품 특성상 에피소드별 통일성이 강한 것도 하나의 강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