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탄생]은 2006년형 가족영화의 가장 앞에 놓인 영화였다. 영화는 ‘가족’이 등장할 때 언제나 고려하게 되는 전통적 가족주의에 대한 의문으로부터 출발한다. 가족이라는 인연이 주는 고통과 외로움, 그리고 위안에 대해 말하는 이 영화의 화술은 새로웠다. [가족의 탄생]은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둥의 가족주의가 지닌 지엄한 가치를 부정한다. 영화가 묘사하는 가족(들)은 굳이 혈연으로 얽히지 않은 사람들이다. 혈연으로 맺어진 일반적인 가족이 있고 그 위에 별안간 나타난 ‘이방인’이 가족으로 편입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가족의 가치를 상징했던 혈연관계의 부정은 수천 년 동안 이 사회를 유지하고 지탱해 왔던 ‘관습의 파괴’를 의미한다. 피가 섞이지 않은 사람들이 가족으로 합류하면서 새로운 가족이 탄생되기 위한 갈등과 고통이 수반되는 것이다.
[가족의 탄생]은 전통적 가족의 상이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현재의 상황을 말해주는 징후적인 영화다. 한국 사회에서 가족은 더 이상 서로를 위해주기만 하는 혈맹은 아니며 마냥 위로가 되는 일차집단도 아니다. [가족의 탄생]은 바로 이 달라진 ‘관계’의 의미로부터 출발한다. 철부지 청년과 중년 아줌마 부부, 유부남과 동거하는 엄마를 둔 소녀, 박애주의적 여자친구를 둔 청년의 고민 등 기이한 상황에서 맺어진 가족들이지만 그들이 갈등하고 화해하는 방식은 일반적인 가족의 그것과 다르지 않다. 단순한 가족 관계뿐 아니라 한국 사회에서 부모와 자식, 형제, 자매, (잠재적 가족이라 할 수 있는) 연인 따위를 규정하는 ‘관계’에 대한 암묵적 선입견을 회의하는 시선이 이 영화 속에는 담겨 있다. 심지어 영화는 이 암묵적 규약들이 이젠 쓸모없어졌다고 주장한다. 극중 인물들은 관계를 규정해 온 사회적 통념 때문에 괴로워하지만 끝내는 그걸 극복한다. [가족의 탄생]은 오랜 시간을 두고 형성된 관계의 법칙에 종속돼 살아가기보다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로 새로운 관계망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속에서 긍정적인 가족의 의미를 발견한다.(중략)
_[작품 해설]중에서
머리말
양적 진화의 명암
2006년 한국시나리오선집 심사 총평
어느 해나 마찬가지지만 2006년처럼 한국영화의 희비가 극명하게 교차한 시기도 드물었을 것이다. 100여 편에 이르는 한국영화가 극장에 걸리는 제작편수의 급증 속에서도 ‘호황’이라고 기뻐할 수만은 없는 그늘이 있었기 때문이다. 많이 만들어진 영화 중 손익분기점을 넘긴 영화는 불과 20% 정도였고 80%는 ‘본전치기’조차 하지 못하는 수익률 저하 현상이 심각했다. [왕의 남자]와 [괴물]이 차례로 1000만 명 관객을 돌파하는 괴력을 보였지만, 다른 한편으로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을 두고 독과점 논란이 불거지기도 했다. 외형적인 제작편수 증가가 상대적으로 다양한 ‘실험’들을 가능하게 한 건 사실이지만 극단적 흥행 양극화로 인한 부작용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로 남았다.
대중영화 규범 안에서 가장 큰 변화는 ‘장르 영화’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이전까지 시도된 적 없는 신종 장르가 만들어지는가 하면, 대중 장르를 변주하고 장르 간 교접을 시도하는 모색들도 활발한 편이었다. 1300만 명의 관객을 모으며 한국영화 사상 흥행 1위에 오른 [괴물]은 한동안 충무로에서 시도된 바 없었던 괴수영화였다. [범죄의 재구성]의 최동훈은 [타짜]로 다시 한번 장르가 주는 쾌락의 극대치를 만들어냈다. 시장에서의 성공으로까지 이어지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뮤지컬 장르의 활성화 역시 유례가 없었던 현상이었다. 2006년 한 해 동안만 [다세포소녀], [구미호 가족], [삼거리 극장] 등 본격 뮤지컬을 표방했거나 뮤지컬 장르의 관습을 빌려온 영화들이 다수 제작됐다. 거반이 상업영화 시스템 안에서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세 편의 영화 모두 비주류 혹은 키치적 감성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대한 일반적 시각을 방증한 결과라 할 것이다. 장르 지평의 확대, 영화의 다양성이라는 측면에서 의미 있는 시도였지만 한 편의 성공 사례도 건질 수 없었다는 점에서 아쉬움을 남긴다.
장르 안에서의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장르성’을 고민하는 영화들, 즉 장르 자체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점이다. 남자영화 혹은 한국형 조폭영화 계보에서의 변화를 보여주는 영화들([짝패], [열혈남아], [거룩한 계보], [비열한 거리], [폭력써클])이 꾸준히 만들어졌다. 이들은 특히 남성적 쾌락의 전유물이었던 장르의 관습을 거부하거나 그 자체를 패러디 혹은 혼성 모방함으로써 한국 장르 영화가 장르에 대해 스스로 말하는 단계에까지 이르렀음을 보여줬다. 멜로드라마의 하위 장르인 로맨틱코미디에서는 뚜렷하게 희비가 엇갈리는 영화들 안에 [미녀는 괴로워]나 [달콤, 살벌한 연인] 같은 참고할 만한 사례들이 배출됐다. 멜로드라마는 특히 인접한 다른 장르에까지 영향을 미치기도 했는데, 퀴어 멜로 영화 [후회하지 않아], [열혈남아], [천하장사 마돈나] 등은 멜로드라마의 장르적 영향력이 얼마나 광대한 것인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기억할 만한 성과를 남겼다.(중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