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린이 아닌 모든 것

이장욱 · 소설
29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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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시의 미래에 이장욱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 소설의 미래도 이장욱을 가졌다"(백지은)라는 평을 들은 지 2년, 이제 우리 소설의 '현재'가 된 이장욱의 두번째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고백의 제왕> 이후 5년 만에 묶어낸 이번 소설집에서 이장욱은 확신 너머의 진실과 포착되기 어려운 삶의 틈에 주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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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절반 이상의 하루오 아르놀피니 부부의 결혼식 올드 맨 리버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대한 이야기 우리 모두의 정귀보 칠레의 세계 어느 날 욕실에서 이반 멘슈코프의 춤추는 방 작가의 말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잘 알지도 못하면서 알 것만 같은, 누구의 것도 아닌 우리 모두의 세계 당신은 어디 있습니까, 이 세계의 안입니까 바깥입니까? “저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소설은 문득 도착해 있습니다” “우리 시의 미래에 이장욱이 있었던 것처럼, 이제 우리 소설의 미래도 이장욱을 가졌다”(백지은)라는 평을 들은 지 2년, 이제 우리 소설의 ‘현재’가 된 이장욱의 두번째 소설집 『기린이 아닌 모든 것』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고백의 제왕』 이후 5년 만에 묶어낸 이번 소설집에서 이장욱은 확신 너머의 진실과 포착되기 어려운 삶의 틈에 주목한다. 인류와 개인, 진실과 허구, 이곳과 먼 곳… 말로 갈린 의미의 경계에서 묘하게 유머러스하고 건조하면서도 단정한 문장으로 “언제라도 되돌아와서 확인해야 할” “문학의 영원한 출발점”인 “아직까지 씌어져본 적 없는 삶”(김동식)을 끊임없이 더듬고 있는 것이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 수록된 대다수 작품은 최근 몇 해 동안 거듭 김유정문학상, 문지문학상, 젊은작가상,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일보문학상 등 유수의 문학상 본심에 올랐거나 최고상을 수상했다. 적확하고 다양한 평들이 이어졌다. 이장욱의 소설은 “침투력이 강한 정서적 밀도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좀처럼 대상과의 정서적 거리를 흐트러뜨리지 않”(박혜경)으며, “그리 복잡하지 않은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역설 혹은 아이러니를 제시”(류보선)한다. 단편소설의 미학적 원칙에서 약간 비껴서 있지만 매력적인 문장들 사이에서 “불쑥 등장”하는 “미지의 시간에 대한 예감”만으로도 아름다울 수 있음(이광호)을 보여주고, 결국 “‘사라짐’의 정서를 통해서만 간신히 환기될 수밖에 없는” 삶의 진실에 다가선다(강동호). 풍성한 평 너머, 이장욱의 소설에는 끝내 포착되지 않는 지점이 있다. “완벽한 기획 의도”와 어긋나는, 삶의 틈과 만나 소설 스스로가 이끌어낸 “생각하지 않았던 생각” “던지지 않았던 질문”들, 평론가에겐 즐거운 난제를, 독자에겐 영문 모를 위로나 쓸쓸한 재미를 안겨주는 빈 곳. 이장욱의 소설 전체를 안개처럼 리듬처럼 둘러싼 단언 불가능한 정서야말로 오늘의 문학을 말할 때 이장욱의 이름이 반드시 호명되는 이유일 것이다. 익숙함과 낯섦, 건조한 유머와 묘한 안도감, 확률과 우연이 교차되는 경계에, 우리의 표정을 닮았지만 그 누구의 것도 아닌 얼굴―모두의 세계가 있다. 가능한 한 ‘완벽한 기획 의도’를 갖고 쓰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소설은 번번이 그 ‘기획 의도’를 배반합니다. 그리고 저 자신도 온전히 이해할 수 없는 곳에 소설은 문득 도착해 있습니다. 어쩌면 저는 그 어긋난 도착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그 도착이나 착지에서 발생하는 오차나 미끄러짐이야말로, 소설 속의 인물과 사건이 지닌 ‘물질성’의 불가피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 제게 그것은 거의 맹목적인 확신에 가깝습니다. 그 ‘물질성’은 쓰는 사람의 ‘기획 의도’가 제어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바라건대, 그 물질성이 이 세계와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비롯된 것이기를 희망합니다._2014년 3월 문지문학상 ‘이달의 소설’ 선정 작가 인터뷰에서 가장 보통의 존재―평범한 삶의 수수께끼 그는, 이 세상에 자신이 완전히 혼자라는 사실과,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사람들이 거리에 흘러넘친다는 사실의 관계에 대해 생각했다._「올드 맨 리버」 그것은 무관심도 아니었고 과도한 애정도 아니었다. 우리를 묘사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고 주인공으로 삼지도 않는다는 느낌이었다. 그냥 그녀와 내가 그의 글에서 숨 쉬고 있을 뿐이었다._「절반 이상의 하루오」 72억 4400만 분의 1. 30만 명이 태어나고 17만 명이 죽어가는 매일, 그 사이 13만 명 중의 하나로 살아가는 일. 태어나 누군가 만나 사랑하고 이별하고 희로애락을 겪다 결국 죽기로 정해진 것. 수치는 ‘인류’의 삶을 매끄럽게 정리한다. 살다가 문득 알아차리고야 마는 “인생의 대부분이 실은 반복적이며 기계적인 동작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사실은 “누구에게나 동일한 조건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기묘한 평화를 준다”. 마치 우주에서 지구를 찍은 사진 속 ‘창백한 푸른 점’이 안도감과 우울을 동시에 안겨주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모두가 나와 같은데 왜 외로워지는 걸까?” 확률이나 수치 같은 “동사무소”식 단언은 ‘나’의 삶을 설명해주지 못한다. 우리는 인류의 운명과 개인의 유일한 삶 사이 어디쯤에서, 멀리 보면 비슷하지만 가까이 보면 너무나 다른 하루를 보내고 있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도시의 거리에는 도시의 거리를 걸어다니는 사람의 수만큼 많은 과거가 있”고 “서로 다른 삶들은 서로 다른 방식대로 흘러”간다(「올드 맨 리버」). 확신 너머에 대체 불가능한 삶이 있다. 이장욱의 소설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을 법하지만 어디에도 없다. 공식적인 기록들 사이의 헐거운 틈을 여러 사람의 기억을 빌려 채우면 어디에나 있는 삶은 어디에도 없는 삶이 된다. 그렇게, 평범한 사람들은 서로의 희미한 삶의 궤적을 증명하는 증인이 된다. 스스로를 증명할 수 없을 때 “타인의 이야기가 요청”되고 “동시에 모두의 이야기가 교차하고 직조되면서 우리가 여태껏 몰랐던 삶의 진실을 얼핏이나마 살”(양경언)피는 것이다. 이를테면 “정귀보(1972~2013)”의 삶을 각별하게 만드는 것은 어디서 태어나 어떻게 자랐으며 언제 죽었는지가 아니라 그와 관계를 맺었던 타인의 기억이다. 정귀보를 떠올리면서 무심결에 짓는 “표정”은 정귀보뿐 아니라 그들 각자의 삶을 “나 자신도 설명할 수 없는 신비로운 사건”으로 만든다. 『기린이 아닌 모든 것』에서 사람들은 삶을 배회하면서 곁에 있던 사람의 기억을 되짚는다. 가만히 혼잣말을 중얼거리거나, 나아가 초대장을 던지며, 소설을 읽는, 자신의 이야기를 듣는 누군가가 삶의 비공식적인 증인이 되어주기를 바란다. ‘나’를 닮은, 나와 절대 같을 수 없지만 나 같은 사람들에게 이장욱은 “아무렇게나 흐르지 않도록 사람을 붙들어두는 작은 닻 같은” ‘이름’을 불러주고 있는 것이다. 어쩐지 알 것 같으면서도 짐작만 하는, 모두에게는 그런 하나의 세계가 있다. 여기보다 어딘가에―공백을 메우는 공백 인류의 운명과, 관계로 재조명한 개인의 삶을 더한다면 한 인생을 완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그것 역시 불가능할 것이다. 개인의 입장이 반영된 기억과 증언에는 한계가 있다. 소설의 마지막 문장을 읽고 나서 오히려 더 많은 궁금증이 생기는 것은 ‘모두’와 ‘홀로’의 세계를 더하고서도 삶에 영영 메워지지 않는 틈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삶은 때로 “ㅤ볠다른 이유 읎”(「우리 모두의 정귀보」)이, 제멋대로 흐른다. 이장욱의 소설은 하나의 정답을 향해 달려가지 않는다. 애써 인과를 끼워 맞춰봐도 마주치는 건 “우리가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길고 복잡한 해안선을 가진,/그런 세계”(「칠레의 세계」)일 뿐이다. 이장욱은 생이 던지는 수수께끼와 끊임없이 “싸우고 사랑”해왔으나, 삶에 끝내 빈 지점이 있을 수밖에 없다면 소설 역시 그러한 것이 아니겠느냐며 그 틈을 그대로 놓아둔다. 벌어진 틈은 억지 해석이 아니라 뉘앙스로 채워진다.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게 자연스럽게”(「절반 이상의 하루오」), “말의 의미보다는 그 말의 어조와 뉘앙스와 목소리 자체”가 “어둡고 이질적이며 매혹적인 하나의 세계”(「우리 모두의 정귀보」)를 만들어낸다. 이장욱의 소설 속 인물 몇몇은 여행자나 입양아이며, 타향에서 모국어도 현지어도 아닌 제3의 언어로 이야기한다. 바라나시나 이태원, 스례드니 거리에 있든 1801호나 마포대교에 있든 제 집 한번 벗어난 적 없는 히키코모리든, 대개 “자신이 이 세계에 속해 있다는 걸 낯설어하는 기색이 역력”한 그들은 존재 자체로 경계를 상징하고 있다. 바흐의 음악,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 배우 히스 레저, 얀 반 에이크의 그림, 기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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