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소설의 여왕, 다나베 세이코의 대표작
『조제와 호랑이와 물고기들』 『서른 넘어 함박눈』 등으로 국내의 연애소설 독자들에게 널리 사랑을 받아온 연애소설의 여왕, 다나베 세이코. 그녀가 자신의 소설 주인공 중 가장 좋아하는 ‘노리코’의 결혼생활을 그린 작품 『아주 사적인 시간』은 ‘남녀 사이의 이야기를 그린 소설’ 중 단연 걸작으로 손꼽힌다. 다나베 세이코는 남녀 사이의 로맨스에서 역동성을 가져다주는 ‘변심’을 소재로 이 소설을 완성했는데, 주인공 노리코의 흔들리는 마음에 따라 흔들리는 관계들의 이야기가 책을 펼치는 독자들의 마음까지도 흔들어놓는다. 다나베 세이코의 인간관계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과 때로는 아포리즘 같은 소설의 구절들은 이 작품을 빛바래지 않은 클래식의 위치에 올려놓기에 충분하다.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 우리들의 연애와 그 결혼생활을 꼬집는 듯, 그녀의 능청스럽고도 태연한 문체는 ‘아주 사적인 시간’ 속으로 안내한다.
연극할 마음이 필요한가요, 연애하는 데?
노리코, 서른한 살. 남자 같은 짧은 머리에 여름이든 겨울이든 바지에 티셔츠 차림. 화장도 안 하고 어딜 봐도 누가 봐도 그냥 ‘여자아이’ 같은 여자다. 이런 노리코 앞에 돈 많고 섹시하고 능력 있고 나이까지 어린 ‘고’라는 남자가 나타난다. 좋아하는 그림을 그리며 소박하게 살아가던 노리코에게는 인생의 판을 뒤집는 사건이 아닐 수 없다. 무엇보다 그가 초호화 맨션을 들이대며 청혼을 했기 때문이다.
‘별것’ 있을 것 같던 노리코. 하지만 그녀도 지극히 평범한 여자이기에 그의 청혼을 기꺼이 받아들이며 상위 1%의 ‘상류층’이라는 무대에, ‘부잣집 사모님’이라는 역할을 부여받고 화려하게 등장한다. 이렇게 노리코의 ‘결혼’이라는 연극이 시작된다. 노리코는 모든 것이 풍족한 생활을 하며 살아간다. 적당히 파티도 하고 원하는 옷이며 액세서리, 차 등등 모든 걸 갖게 된다. 또한 남편 고도 그녀를 끔찍하게 사랑한다.
하지만 이러한 결혼생활이 3년간 지속되자, 노리코는 더 이상 흔들릴 게 없을 것 같던 자신의 마음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아주 사적인 시간을 찾아서
이 소설은 제목 그대로 주인공인 노리코가 자기만의 ‘아주 사적인 시간’을 찾아 나서는 이야기라고도 할 수 있다. 물론 그 모험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이 아닌,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상류층에 발을 디딘 노리코는 금방 사치스런 생활에 익숙해진다. 모든 일상이 평온한 듯하며 완벽한 결혼생활인 듯하다. 하지만 보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시간이 지날수록 노리코의 마음은 변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과거를 돌아보며 자신의 옛 남자와의 관계가 어떻게 변해갔는지 생각하게 된다. 한때 자신이 사랑했던 남자가 친구의 남편이 되어 아기를 안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저 ‘아저씨’라는 생각만 들고, 결혼 후 짜릿한 사랑을 했던 남자는 이제, 중후한 ‘중년남자’일 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닌 것이다.
이러한 노리코의 ‘변심’은 남편 고와의 관계에 변화를 낳고, 그녀의 결혼생활을 조금씩 뒤틀린다. 노리코는 고와 ‘부부관계’라는 연극을 즐겁게 연기했지만, 결국 계속되는 연기에 지치고 만다. 그리고 자신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연기할 필요 없이 자기 자신으로 있을 수 있는 ‘아주 사적인 시간’임을 깨닫게 된다. 다나베 세이코는 노리코의 이러한 변심을 통해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조용한 변화가 실은 세상에서 가장 파란만장한 것일 수도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