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실은 야구장 오타쿠거든요…….”
야구와 맥주가 있으면 행복한
작가 오쿠다 히데오의
좌충우돌 관람기!
현대를 살아가는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자신만의 독특한 시각으로 바라보며 때로는 냉소적으로, 때로는 따뜻하게 그려 내는 일본 최고의 작가 오쿠다 히데오. 2004년 제131회 나오키상을 수상한 그의 작품 『공중그네』가 수년간 서울대 도서관 대출 순위 1위를 차지할 정도로 한국에서도 문학적인 면과 대중적인 면에서 모두 인정받으며 우리에게는 이미 친숙해진 작가다.
그가 이번에는 특유의 유머 감각과 삐딱함으로 무장한 채 세계 각지의 야구장으로, 록 페스티벌로, 그리고 심지어 세계 최고의 롤러코스터를 타러 놀이동산으로 동분서주한다.
자칭 ‘히키코모리(은둔형 외톨이)’인 게으름뱅이 작가는 출판사 편집자가 야구 관전 르포나 여행기를 써 달라고 부탁할 때마다 일단은 귀찮다고 거절하고 보지만, 결국은 그의 약점을 잘 아는 편집자의 꼬임에 빠져 번번이 이곳저곳으로 떠나고 만다. 예를 들어 호시노 저팬(호시노 감독이 이끄는 일본 야구 대표팀)이 출전한 베이징 올림픽 야구 관전기를 써 달라는 편집자의 말에 “아테네 올림픽을 관전한 것으로 충분하다.”고 버티지만, 편집자는 “거기 중국 요리 맛있는 것 아시죠?”라며 미식을 즐기는 오쿠다 히데오의 약점을 건드린 후, “주니치 드래건즈 선수가 네 명이나 출전한다던데……”라며 결정타를 날린다(오쿠다 히데오는 주니치 드래건즈의 열렬한 팬이다). 이렇게 하여 작가는 또 한 번 짐을 싸서 먼 길을 떠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이 몸, 내년이면 쉰 살의 소설가인데 번번이 가볍게 취급당하고 떠밀려 다니는 신세입니다.”라며 “혹시 이 몸, 너무 쉬워 보이는 것 아닐까요?”라고 한탄한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괜찮습니다. 저, 사실은 야구장 오타쿠거든요.”라며 스스로를 위로하기도 한다.
올림픽 기간 내내 좋아하는 중국음식과 맥주를 즐기며 경기를 관람한 작가는 일본 야구팀이 형편없는 경기 운영으로 우승은커녕 3, 4위 결정전에서마저 패하자 실망과 분노를 금치 못하며 야구 대표 팀에게 “헤엄쳐서 돌아오라!”고 일갈한다.
한편, 젊은 시절 록뮤직 팬이었던 저자는 일본에서 매년 ‘후지 록 페스티벌’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가서 목이 터져라” 노래하고 싶은 욕망이 사로잡히나 “록의 일선에서 이미 물러난 몸이 내 나이의 절반밖에 안 되는 젊은이들 사이에 섞일 용기가 없어” 몇 해째 미루던 중, 출판사의 젊은 여성 편집자가 팀을 짜서 같이 가자며 “가게 되면 르포도 써 달라”고 대의명분까지 내세워 등을 떠밀자 “마음속으로 감격의 눈물을 흘리며” 너그럽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산속에서 사흘간 열리는 “꿈의 록 페스티벌”에 참가한다. 젊은 시절 음반으로만 듣던 ‘더 낵(The Knack)’의 ‘마이 샤로나’ 등을 직접 들으며 “소리를 지르고 머리를 격렬하게 흔들어 대는 등” 남의 이목을 개의치 않고 망아의 경지에 젖는다.
밤 11시 반, 마지막 밴드인 프라이멀 스크림이 무대에 섰다. 이 시간에 3만 명이 산속에서 날뛰고 춤춘다. ……아하하하. 웃음이 끓어오른다. ……아직도 주저하는 로큰롤 아저씨 여러분, 내년에는 꼭 행동에 옮깁시다. 외톨이가 아닙니다.
-본문 중에서
이처럼 조금씩 사그라져가는 젊음을 붙잡고 싶어 하는 작가의 열망은 그의 주체할 수 없는 시의심과 어우러져 또 하나의 예상치 못한 여정을 탄생시키기도 한다.
회전수 세계 최고의 롤러코스터 ‘좋잖아요(롤러코스터의 이름)’가 일본에 등장했다는 뉴스를 본 작가는 자신이 마지막으로 롤러코스터를 타 본 것이 25년 전이라는 사실을 떠올리고, 더 늙기 전에(“타임 리미트가 다가오기 전에”) 그 롤러코스터를 타 보고 싶어 한다.
아. ‘좋잖아요’를 타 보고 싶다. 타서 어떻게 되든 돼 버리고 싶다. 나는 편집자 앞에서 아련한 눈길로 그렇게 중얼거렸다.
-본문 중에서
그러자 담당 편집자 B여사는 “그럼 타러 가시죠. ‘어른 원정대’ 발동하죠, 뭐.”라며 즉시 13명의 중년으로 이루어진 원정대를 결성해 “수치와 체면을 잠시 뒷전으로 하고” 놀이동산을 향해 길을 나선다.
그러나 그들 앞에 위용을 드러낸 롤러코스터는 모두의 얼굴에서 “핏기를 가시게” 만들고, 티켓을 잃어버렸다는 둥,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아저씨 대원이 속출한다.
그 위용이 마치 미쳐 날뛰는 구렁이 같은 양상이다. ‘좋잖아요’가 달려왔을 때는 다들 못 볼 것을 봤다는 표정이었다. ……아, 싫다 싫어. 저걸 만든 작자는 악마다.
“목이 바짝바짝 타 들어가고 오줌이 마려운” 상태에서 드디어 작가는 ‘좋잖아요’에 올라탄다. 패닉 상태에서 “바지라도 벗으라면 벗을 기세”로 안내원이 지시하는 대로 안전띠를 조이고 안전 바를 고정시킨다. 그리고 드디어 롤러코스터가 출발한다.
아아아아아. 패닉의 극치. 구웅, 바닥이 내려간다. 마치 선더보드 2호의 이륙 장면 같다. ……사, 사, 살려, 주, 주세요. 도마에 오른 생선의 기분을 알겠다. 이런 우울함은 중학 시절에 불량소년들에게 체육관 뒤로 불려 나간 후로 처음이다.
마침내 지옥 같은 시간이 끝나자 롤러코스터에서 해방된 어른 원정대 대원들은 서로를 포옹하며 그 끔찍한 공포감에 대해 한 마디씩 이야기한다. 작가는 이 경험에 대해 ‘자신의 무력함을 알게 되었다’며, 인간은 그저 일개의 연약한 존재일 뿐 아무 것도 아니라는 점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이 외에도 ‘혹시 무슨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라는 쓸데없는 호기심 때문에 한여름 작열하는 태양 아래 아무 볼거리 없는 만국 박람회에 “다리를 질질 끌며” 다녀오기도 하고, 뭘 하러 가는지도 정확히 모르면서 “우동 먹으러 가자”는 꼬임에 빠져 “간 김에 사찰 순례도 하고”라는 말을 흘려듣고는 ‘88 사찰 순례’에 따라 나서기도 한다.
작가 오쿠다 히데오 특유의 대책 없는 솔직함으로 폭소를 터뜨리게 만드는가 하면 작열하는 독설로 가슴이 뻥 뚫리는 듯한 통쾌함을 느끼게 하는 『야구를 부탁해』는 저자의 야구에 대한 사랑과 록 음악에 대한 열정, 갖가지 미식 체험, 여행, 중년의 감회 등 흥미진진한 요소들이 곁들여져 『공중그네』이후 오쿠다 히데오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또 하나의 작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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