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과 인간이 사랑하고
사물과 언어가 분열하는
무섭게 아름다운 발명의 시
201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시인 김복희의 첫 시집이 민음의 시 248번으로 출간되었다. 김복희는 등단 당시 “대상과 무관하게 낯선 의미를 빚어내는 발명의 시”라는 평을 받으며 개성과 존재감을 드러냈다. 시집 제목인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은 시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의 조합이다. ‘사랑’, ‘인간’, ‘새’, 그리고 ‘나’. 이 단어들을 어떻게 조합해도 시집의 말하는 바가 된다. 새로운 내가 인간을 사랑한다는 뜻도, 내가 새로운 인간을 사랑한다는 뜻도, 인간인 내가 새로이 사랑을 한다는 뜻도 가능하다. 모든 조합은 조금씩 비슷해 보이나 방점을 어디에 찍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된다. 이렇듯 김복희는 섬세하고 단호하게 발명의 작업을 이어 간다. 발명의 첫 다발인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은 인간을 부르는 가장 낯선 입 모양이자, 사랑을 말하는 가장 새로운 목소리다.
■시인과 동물과 인간, 혼종의 사랑
당신 양털 깎는 과정에 대해 알고 있냐 목화처럼
배를 가를 때 유일하게 저항하지 않는 동물이다
유순하며 아픔을 모르는 동물이다
(……)
나는 혼자가 아니다
내가 움직이고 있다는 것을 잘 아는 양 한 마리
―「양 한 마리」에서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을 펼치면 다종다양의 동물과 식물과 사물 들이 등장한다. 이들은 모두 시적 화자의 애정 어린 시선을 듬뿍 받는 이들이다. 시인은 같은 종(種)인 인간에게서 멀어져 오히려 동물에 가까워진다. 종을 넘어선 우정을 보여 준다. 반대로, 인간인 ‘나’에게 인간을 가장 낯선 종으로 두기를 택한다. 우리가 평소에 동물을 보는 것과 같은 거리감으로 인간을 본다. 이러한 ‘탈인간’ 혹은 ‘동물 되기’는 인간에 대한 기대도 없지만, 인간에 대한 자만 역시 없는 상태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란 누구나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 일이 아니며, 오히려 끊임없이 외우고 중얼거려야 할 일, “선생님”(「수인학교」)이 필요한 ‘인간성 연습’임을 주장하는 듯하다. 이렇듯 김복희에게 ‘인간’은 중요하지 않은 동시에 중요하다. 그래서 더욱 시인은 멀리서 다정하기를 택한다. 사람에게 거리를 두는 동시에 혼자 내버려두지 않는다. 매, 노새, 양, 벌레, 꽃나무, 건물 다음으로, 가장 나중에 인간의 이름을 부르지만, 끝끝내 부른다. 김복희의 세계에서 인간인 우리는 저마다의 거리를 유지한 채 서로를 봐 주는 존재가 된다. 친숙해하지 않으며 사랑하기. 이것이 시인이 권하는 인간을 사랑하는 새로운 방식이다.
■서로의 용기가 되는, 신종 감수성
「죽고 싶으면 죽어도 좋아
그 전에 이것만 다 써 보자」
친구의 맞은편에 앉아 연필을 깎는다
(……)
사람들 머리 위로 어깨 위로
눈이 온다고 한다
꿈결같이 사람을이
맞아 죽었다
―「거리로」에서
세계를 작동시켜 온 익숙한 규칙 혹은 관행을 모두 부정하고, ‘발명’ 쪽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시인이 유일하게 희망의 여지를 ‘발견’하는 관계는 ‘친구’다. 이때 김복희가 보여 주는 친구 관계는 단순히 희망적이지 않으며, 서로가 서로의 것을 “얻어먹고”(「잉어 양식장」) 갉아 먹을지도 모른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는 마치 혼자서도, 둘이서도 절뚝거릴 수밖에 없는 청년세대의 모습을 묘파하고 있는 듯하다. 또한 시집 『내가 사랑하는 나의 새 인간』 속 낯선 이미지들은 곧 정상성의 세계에서 쉽게 소수자가 되는, 이해받지 못하는 약자를 떠올리게 한다. 동시에 서로의 용기가 되는 친구들의 목소리로 가득하다. 시적 화자가 시에 등장하는 모든 ‘친구들’과 나누는 심상하지만 심상치 않은 대화는 모든 소수자의 어깨를 감싸고 의지를 북돋기에 충분하다. 시인은 힘없고, 혼자이고, “죽고 싶”어 하며, 여차하면 “맞아 죽”는 그들을 ‘친구’라고 부른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칼과 연필을” 챙기고, 망설이지 않고 눈이 내리는 듯 엄혹한 세상으로 나간다. 약자와 소수자가 힘을 얻게 될 미래의 날을 소망하는 다음 세대로의 선언 같다. 김복희의 시집을 읽는 우리는 새로운 감수성을 환히 틔워 줄 친구를 얻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