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속화, 붓과 색으로 조선을 깨우다

EBS 화인 제작팀 ·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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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대표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의 그림과 생애를 통해 풍속화 속 숨은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EBS에서 방송되어 호평을 받았던 다큐멘터리로, 요즘 불어닥친 풍속화 열풍 속에 우리나라 대표 풍속화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풍속화 속에 담긴 미학적 비밀을 밝혀내보자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이 책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방송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세 풍속화가의 독특한 이력과 그들만의 개성적인 미술 기법상의 비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풍속화가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조선 후기 근대라는 시대를 어떻게 뜨겁게 살면서 실천했는지, 교과서나 그림 분석에 머물렀던 여타 미술 교양서가 전혀 말해주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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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서序 김홍도 - 조선 민중의 숨결을 그리다 '씨름'에 감춰진 천재성의 비밀 18세기, 풍속화의 시대 선線들이 품고 있는 음악 숨소리까지 들리는 그림 35밀리 렌즈로 포착한 진경산수 카메라 옵스큐라와 조선 화단 기법도 마음도 뛰어넘은 경지 시간 속으로 사라진 천재 신윤복 - 색色으로 조선을 흔든 불온한 화가 조선 사회의 에로틱 판타지 ‘색’ 다른 유토피아 가마에서 탈출한 여인들 서민의 눈에 담긴 양반의 이중성 색채에 숨겨진 아름다움의 비밀 그림 속의 프레임 여색과 채색의 절정, '미인도' 조선의 색을 되살려내다 김준근 - 19세기 조선, 세계를 만나다 가면 속 삽화가의 정체 김준근, 역사의 기억에서 떠오른 이름 이국을 떠도는 조선의 얼굴 개항장의 페인트 게릴라 조선의 풍습을 담은 1급 사료 기산 팩토리, 시대가 낳은 새로운 스타일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돌아온 화가 종綜 수록 도판 목록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조선 후기 대표 풍속화가,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의 그림과 생애를 통해 들여다본 풍속화 속 숨은 이야기 EBS 조선의 프로페셔널 화인-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편. 방송에서 다 말하지 못했던 풍속화 속에 감춰진 비밀을 추적한 역사-인문 다큐멘터리 EBS 조선의 프로페셔널 화인-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EBS에서 방송되어 호평을 받았던 다큐멘터리. 요즘 불어닥친 풍속화 열풍 속에 우리나라 대표 풍속화가들의 생애와 그들의 풍속화 속에 담긴 미학적 비밀을 밝혀내보자는 의도로 제작되었다. 다큐멘터리를 글로 옮긴 이 책은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형식으로 서술되어 있으며, 방송에서 미처 다 말하지 못한 세 풍속화가의 독특한 이력과 그들만의 개성적인 미술 기법상의 비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김홍도, 신윤복, 김준근 풍속화가 어떤 차이점을 가지는지, 그리고 그들이 조선 후기 근대라는 시대를 어떻게 뜨겁게 살면서 실천했는지, 교과서나 그림 분석에 머물렀던 여타 미술 교양서가 전혀 말해주지 않았던 새로운 사실들을 만나볼 수 있는 책이다. 조선 후기, 시대의 삶을 기록한 세 명의 화가. 그들의 그림과 시각 속에서 조선에서 싹트던 근대를 발견한다 조선 후기 대표 풍속화가들의 삶과 작품에 대해 다룬 다큐멘터리는 우연한 기회로부터 시작되었다. 신윤복을 다룬 소설과의 만남이 계기가 된 것. 김홍도와 신윤복 등 조선의 풍속화가가 등장하는 그 소설을 읽으면서 프로그램 제작자 김광호 PD는 의외로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운 내용 외에 풍속화나 풍속화가에 대해서 제대로 알고 있는 게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풍속화가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고 싶은 열망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프로그램 제작을 위해 조사를 시작했으나 그들에 대한 기록은 찾아볼 수 없었다. 그래서 고심 끝에 그들이 남긴 그림에 집중하기로 했다. 작가가 느끼고 표현하려 했던 것, 그 온전한 기록이 바로 작가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렇게 역추적해가면서 희미했던 화가들의 형체가 실체를 드러냈다. 그리고 조선 후기 세 풍속화가가 나름의 방식으로 근대를 도입하고, 근대를 살아냈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대의 화법에 머물지 않고 새로운 실험을 추구하며 붓으로 근대를 꿈꾼 세 예술가의 생생한 숨결을 만나다 김홍도와 신윤복의 그림 세계를 추적하면서 김광호 PD는 신윤복이 놀랍도록 근대적인 화가였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당대의 다른 화가들에 비해 확연히 앞서 있는 그의 그림을 보며, 그것이 과연 그만이 지닌 특성이었나 하는 데까지 의문이 확장되었다. 마찬가지로 신윤복보다 앞서 활동한 김홍도 역시 과학적이고 실증적인 방법으로 사실적 화풍을 정립해 나가면서 가장 먼저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인 화가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리고 김홍도와 신윤복에 대해 조사하던 중 만나게 된 또 한 명의 근대 풍속화가 김준근과도 조우한다. 세 화가의 뒤를 좇으면서 김광호 PD는 그들이 자신만의 독특한 미술 방법을 고안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는 무척 놀란다. 신윤복은 구도와 색에 빼어난 화가였다. 그는 인테리어적 요소까지 고려한 큐레이터 마인드를 가진 화가로 완성된 그림이 어디에 걸릴지 장소까지 염두에 두고 그림을 그렸다. 그리고 주사나 등황, 쪽 등 당시에는 구하기 어려웠던 물감을 사용해 그만의 화려한 채색화를 구현했다. 많지 않은 물감으로도 농담을 조절해 그림의 강조점을 살리는 등 당시로서 그의 화법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김홍도는 오늘날 ‘카메라 옵스큐라’라고 불리는 서양광학기구를 사용해 당시 문인들에게 일반적이었던 관념화가 아닌 사실적 그림을 구사했다. 미켈란젤로나 레오나르도 다 빈치처럼 과학에 기반을 둔 실재성으로 사진 같은 정밀한 그림을 그린 것이다. 마지막으로 김준근은 상업주의 그림을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전의 화원 화가들과는 뚜렷이 다른 길을 걸었다. 그는 근대 이행기 인천이나 원산 등의 개항장을 중심으로 조선을 찾기 시작한 외국인들을 상대로 조선의 풍물을 알리는 그림을 그려 팔았다. 그래서 그는 국내보다는 외국에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그의 그림은 현재 세계 11개국에 1190여 점이 퍼져 있다. 그들은 왜 풍속화를 그렸으며, 풍속화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까? 김광호 PD는 직접 발로 뛰며 그들의 삶과 예술에 대한 자료들을 채집해갔다. 그러면서 생각보다 이들 화가들에 대해 알려진 사실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몇 장의 그림을 제외하고는 그들의 드라마틱한 삶과 천재적 열정을 구체적으로 이해할 만한 자료가 거의 없었다. 그래서 많지 않은 자료와 그림 속의 정보들을 통해 그들의 삶을 재구성했다. 그가 주목한 것은 화가들의 생의 이면에 감춰진 애환과 그늘이었다. 그런 것들이 예술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 일이 이 화가들에 가장 가까이 다가갈 수 있는 지름길이라고 판단해서다. 그리고 몇 가지 핵심적인 의문에서부터 출발해 그들의 삶에 가까이 다가갔다. 궁중 최고의 화가인 김홍도가 어떻게 해서 일반 서민들의 생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을까? 성리학이 지배하던 사회에서 에로티시즘을 자유롭게 발산한 신윤복의 화풍은 무엇을 말하려 했던 것일까? 김준근은 『근역서화징』에도 이름이 올라 있지 않으면서 어떻게 그림이 전 세계에 퍼져 있게 되었을까? 등등. 김홍도가 살았던 18세기는 풍속화가 유행하던 시대였다. 전 세계가 요동치는 격변기로 동아시아에도 서양 문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새로운 사상, 물자 유입과 더불어 내적으로도 부가 축적되어 다양한 문화가 발전했으며, 일부 소수 계층이 향유하던 예술 또한 변화하는 사회 분위기에 따라 새롭게 꽃피게 되었는데, 그중에서도 대표적인 것이 서민회화였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는 조선도 예외가 아니어서 동아시아 회화에서 17∼18세기는 풍속화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홍도가 태어나 자란 시기는 풍속화가 사람들의 인기를 얻고 있었는데, 문인화만 평가하던 당시 분위기에서 새로운 화풍인 풍속화의 유입은 조선 화단에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김홍도 역시 젊은 시절 조영석이나 윤두서 등 풍속화가의 화풍을 접하고 영향을 받았을 거라고 짐작하지만 그러한 시대의 영향만이 김홍도가 풍속화를 그린 주된 이유는 아니었다. 김홍도가 풍속화를 그리게 된 중요한 계기는 문화정치를 표방한 정조와의 만남이다. 서민들도 풍속화를 원했지만 임금인 정조가 풍속화를 원했다. 서민들의 생활을 담은 그림이 정조에게는 백성들의 삶을 이해하는 중요한 창구였기 때문이다. 이렇듯 단원 풍속화는 격변하는 시대적 배경과 임금의 요구, 화가의 재능과 노력이 합쳐져 세상에 태어나게 된 것이다. 김홍도는 풍속화를 그리면서 감정까지 그대로 전달되는 음악적인 선을 구사함으로써 그의 천재성을 드러냈다. '무동'이나 '서당' 등의 그림을 보면 옷자락에서 음률이 흘러나오는 듯한 음악적인 느낌을 받는다. 보는 사람들에게 흥겨움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음률이 누구나 김홍도 그림을 좋아할 수밖에 없는 이유였다. 또한 김홍도가 오늘날까지도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풍속화가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그림 안에 진한 웃음 코드가 들어 있기 때문이다. 신윤복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폭된 것은 드라마 '바람의 화원'의 영향이 클 것이다. 신윤복이 과연 남장여자일까? 하는 호기심은 누구나 한번쯤 가져보았을 것이다. 『근역서화징』에 신한평의 아들로 나오고 굳이 남장을 하면서까지 활동할 절박한 이유가 없었던 걸로 보아 그가 여자일 가능성은 희박해 보이나 이런 가정이 가능했던 것은 신윤복의 생애에 대해 알려진 것이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장신구나 의복의 섬세한 표현과 화사한 색채, 그리고 어떤 그림에서나 빠짐없이 여성이 등장하기 때문일 것이다. 신윤복 하면 에로틱한 그림을 떠올리게 된다. 당시 엄격했던 성리학 분위기가 지배하던 시대에 신윤복의 그림은 어떻게 가능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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