혐오 발언

주디스 버틀러 · 인문학/사회과학
37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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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더 수행성, 패러디, 드래그 등의 개념으로 잘 알려진 페미니스트 주디스 버틀러가 '상처를 주는 말' 즉 혐오 발언에 관한 문제를 다루는 책이다. 더 세부적으로는,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문제, 언어적인 상처, 타인의 호명으로 탄생하는 주체의 문제, 언어적 생존이나 화자의 책임 등과 같은 언어와 권력, 침묵이나 전유 그리고 저항에 관한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철학적 질문들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포르노그래피와 인종차별주의가 법적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반인종차별주의 이론가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낸다. 그녀가 비판하는 이론가들은 모두 혐오 발언을 규제하자는 어떤 '평등'주의적 논증을 제기한다. 즉 발언이 집단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런 논증들을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제정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규제는 발언을 '재의미부여'하고 '재수행'함으로써 이런 발언에 도전하도록 일깨워질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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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감사의 글 서장 우리는 왜 언어에 상처를 받는 걸까 예상 밖의 호명 발언의 장면들 호명으로서의 언어 행위 이름의 상처를 주는 행위 요약 1장 불태우는 행위, 상처가 되는 말 혐오 발언에서 포르노그래피까지 2장 주권적 수행문 매키넌과 포르노그래피적 발언의 논리 보편성에 대한 투쟁 국가 발언 / 혐오 발언 3장 전염되는말: 편집증과 군대 내 동성애 4장 은폐된 검열과 담론적 행위능력 검열에 저항하기 정치적인 언어 행위 권력의 은폐된 수행성 옮긴이 해제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은 가능한가? 주요 개념 / 용어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버틀러는 법적 주장과 언어 행위의 한계를 시험하는 논쟁에 멋지게 개입한다. ―호미 바바, 시카고 대학 표현의 자유의 정치에 관련되는 이들에게 필수적인 저서다. ―드루실라 코넬, 러트거즈 대학 법대 우리에게 정치가 진지한 사유를 필요로 함을 보여주는 훌륭한 참여다. ―조나단 쿨러, 코넬 대학 이 훌륭한 저서에서 느슨한 순간은 단 한 순간도 없다. ―바버라 존슨, 하버드 대학 혐오 발언에 대한 저항은 가능한가? 1990년대 미국 사회에서는 인종차별, 성적 소수자 차별, 혐오 범죄가 특히 부각되었다. 백인 소년이 흑인 가족의 집 마당에서 십자가를 태운 사건, 고등법원장 후보가 한때 부하 직원인 판사를 성적으로 추행하여 상원의원 청문회까지 열렸던 일, 영화 <미시시피 버닝>을 보고 난 후 백인을 살해한 흑인들, 로드니 킹, 동성애 차별 등이 끊이질 않았다. 2010년대 한국 사회의 흐름도 이와 비슷하다. 일베, 김치녀, 소라넷, 강남역 살인 사건, 여성 혐오 랩 가사, 퀴어문화축제, 고위 공직자의 ‘개돼지’ 발언, 데이트 폭력, 메갈리아……. 그야말로 혐오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혐오 발언’의 문제는 현재 한국 사회에서 뜨거운 감자로 급부상했다. 흔히 ‘막말’이라고 하는 사태는 최근 교육부 고위 공직자의 ‘개, 돼지’ 발언으로 정점에 이르렀다. 개인적 일탈 행위였다 쳐도, 그의 말은 ‘듣는 이의 따귀를 강타하고, 복부를 걷어차고, 열등한 자로 만들어 버렸다.’ 이 책 『혐오 발언』에서 주디스 버틀러가 주장하는 바에 따르면, “국가가 혐오 발언을 생산한”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의 논쟁적인 책 『혐오 발언』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페미니스트”(사라 살리), “낸시 프레이저와 함께 미국에서 가장 널리 읽히며 토론되는 철학자 중 한 명”(리처드 로티)으로 소개되곤 하는 주디스 버틀러는 젠더 수행성, 패러디, 드래그 등의 개념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이 책 『혐오 발언』에서 ‘상처를 주는 말’ 즉 혐오 발언에 관한 문제를 다룬다. 더 세부적으로는,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 규제의 문제, 검열과 표현의 자유 문제, 언어적인 상처, 타인의 호명으로 탄생하는 주체의 문제, 언어적 생존이나 화자의 책임 등과 같은 언어와 권력, 침묵이나 전유 그리고 저항에 관한 심층적이고 본질적인 철학적 질문 들이다. 따라서 『혐오 발언』에서 버틀러가 던지는 이런 질문들은 시공간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기 한국 사회의 ‘상처를 주는 말’에 관한 문제에 대해서도 동시대성이 존재하며 많은 사유들을 제공해 줄 것이다. 주디스 버틀러는 이 책 『혐오 발언』에서 혐오 발언, 포르노그래피, 동성애자의 자기 선언, 십자가 소각, 국가 검열 문제 등 다양한 형태의 ‘상처를 주는 말’을 다룬다. 그녀는 포르노그래피와 인종차별주의가 법적 규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들과 반인종차별주의 이론가들을 비판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이끌어낸다. 그녀가 비판하는 이론가들은 모두 혐오 발언을 규제하자는 어떤 ‘평등’주의적 논증을 제기한다. 즉 발언이 집단 구성원들에게 피해를 준다면, 그것은 규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버틀러는 이런 논증들을 거부한다. 궁극적으로 그녀는 혐오 발언에 대한 어떤 규제도 제정하지 말 것을 권한다. 규제는 “발언을 ‘재의미부여’하고 ‘재수행’함으로써 이런 발언에 도전하도록 일깨워질 자들을 침묵시키도록 작동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버틀러가 비판하는 이들은 모두 ‘상처를 주는 말’에 대해, 이는 주체가 의도적으로 행사하는 차별 행위이고, 이 말들은 곧 행위가 되며 수신자를 열등한 지위로 종속시킨다는 견해를 편다. 그들은 혐오 발언이나 포르노그래피가 ‘그냥 말only words’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면서 혐오 발언을 폭력이자 차별 행위로 간주한다. 버틀러는 어째서 이런 이론가들을 비판하는 것일까? 그녀는 혐오 발언의 이런 해악들을 부정하는 것인가? 혐오 발언을 어떻게 사유해야 할까? 많은 언어학자와 페미니스트 이론가, 인종이론 연구자는 혐오 언어는 그 자체로 폭력적 혐오 행위이며, 차별적 행위라며 법률적 규제가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마리 마츠다는 규제나 처벌을 받지 않는 혐오 발언자는 국가 권위의 후원을 받는 것이며, 혐오 언어의 피해자는 국가가 없는 자가 된다. 그녀는 KKK단과 네오 나치의 사례를 들며 혐오 집단의 위협은 불법적인 폭력 행위 이상이며, 그들의 인종차별적 선동은 개인의 안전과 자유를 부정하는 행위라고 본다. 따라서 이들의 혐오 발언을 방치하는 것은 사실상 그것을 지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이들에 대한 방치는 다수자에게 소수자를 억압할 수 있는 권리를 국가가 승인하는 행위와 마찬가지다. 따라서 공식적인 처벌과 제제는 혐오 발언에 대한 적절한 대응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주디스 버틀러는 혐오 언어에 대한 반대는 분명하게 밝히면서도 ‘혐오 발언’에 대한 국가의 규제에는 반대한다. 그녀는 ‘혐오 발언’을 법적으로 규제하자는 주장하는 몇몇 페미니스트 및 반인종차별주의 이론가들과 논쟁을 벌였다. 혐오 발언은, 말만 가지고도 사회적 약자들을 예속시키는가? 포르노그래피는 여성들을 열등한 지위로 못 박아 두는가? 동성애자의 커밍아웃은 청자를 모욕하는 성행위인가? 버틀러는 이 책 『혐오 발언』에서 이런 견해부터 따진다. 과연 언어는 화자가 의도한 대로 타인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권력을 소유한 것인가? 버틀러는 이들처럼 언어가 의도한 대로 행위가 되고, 혐오 발언이나 포르노그래피가 주체를 열등한 지위로 재종속시킨다는 견해를 발언내행위론이라 지칭하여 비판한다. 그녀가 혐오 발언의 절대적 효력을 의심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혐오 발언은 어쨌든 피해자에게 막대한 해악을 끼친다. 그런데, 혐오 발언은 항상 작동할까? 혐오 발언은 항상 기계적이고 정확하게 효과를 낳을까? 버틀러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버틀러 역시 혐오 발언이 어떻게 행위하고, 심지어 상처를 주게끔 행위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혐오 발언 규제의 지지자들이 기술하는 꼭 그런 방식으로 언어가 직접적이거나 인과적으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본다. 그렇기에 버틀러는 혐오 발언의 규제 지지자에 대한 비판적이고 대안적인 견해를 제공하고자 한다. 버틀러는 이데올로기적인 호명이 주체를 구성한다는 알튀세르의 호명 이론에 대한 비판을 전개한다. 버틀러는 호명의 작동은 필연적일 수 있지만, 기계적이거나 전적으로 예측 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본다. 권력은 그 권력이 행사되는 효력과는 구별된다. 오히려 권력은 일부 언어 행위 이론이 나타내는 것처럼 그렇게 식별하거나 국한하기 쉽지 않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녀는 J.L. 오스틴과 쇼사나 펠만의 이론에 의지하여, “말의 기계적인 고장이나 ‘불발’ 그리고 예측 불가능성”(오스틴)을 재강조하고, 언어 행위는 말하는 몸의 행위로 무엇보다 육체적인 행위(쇼사나 펠만)라는 점을 재인용한다. 그리하여 버틀러는 말의 육체적인 효과는 화자의 의도를 초월한다고 설명한다. 버틀러는 이렇게 발언과 행위, 발언과 효과 사이의 ‘간격’을 주장하는, 혐오 발언에 대한 ‘발언효과행위론’을 펼친다. 버틀러에 따르면 “말하기가 그 자체로 행하기인 것은 아니며, 그것은 저항되어야만 하는 피해의 행함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말함과 행함 사이의 간격을 유지하는 것은, 비록 어렵다 하더라도 발언이 어떻게 그리고 어째서 피해를 행하는지 말할 수 있는 어떤 이야기가 항상 존재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혐오 발언은 다른 의미나 힘, 효과를 가질 수 없는가? 이처럼 언어 행위가 반드시 의도한 대로 행위하지 못한다는 특성은 혐오 발언의 효력이 절대적이지 않음을 뜻한다. 또한 반면에 혐오 발언이 전유와 전복에 취약함을 보여준다. 그리하여 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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