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머리에 / 믿음에게 말을 걸다
1장 풀이하는 글
1. 그 사람을 가졌는가?
2. ‘신信’의 사전적 정의
3. 무모하지만 아름다운 믿음의 역설
4. 믿음의 적 또는 의심과 선입견
5. 역사 속 믿음의 해석과 변천
6. 믿음의 현재적 소환
2장 원전과 함께 읽는 ‘믿음’
01단계 남산의 은유 또는 믿음의 이미지 / 『시경』
02단계 믿음을 통한 정치와 도덕의 결합 / 『서경』
03단계 변화의 원리에 대한 믿음 / 『주역』
04단계 국가 간의 맹약과 믿음의 조건 / 『춘추좌전』
05단계 믿음의 도덕적 내면화 / 『논어』 『맹자』
06단계 예치의 믿음과 천년왕국의 꿈 / 『순자』
07단계 겸애와 정령에 대한 믿음 / 『묵자』
08단계 믿음의 역설, 진정한 믿음은 믿음이 아니다 / 『노자』 『장자』
09단계 법치와 현실적 실천에 대한 믿음 / 상앙, 한비
10단계 오행론적 믿음의 발견 / 여불위, 동중서
11단계 성리학적 본성과 믿음의 합일 / 한유, 정이, 주희
12단계 양지론적 마음과 믿음의 소통 / 육구연, 왕수인
3장 원문
더 참고하면 좋은 책
저자/역자
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3000년 역사에서 ‘믿음’ 개념은 어떻게 형성되었는가?
‘신信’에 대한 철학 유파의 12지 입장 일목요연 제시
‘한국국학진흥원 교양총서-오래된 질문을 다시 던지다’ 아홉 번째 책 출간
사전적 정의에 따른다면 믿음의 일차적인 의미는 인간의 언어가 거짓 없이 실천되는 것을 말한다. 믿음이란 거짓 없는 진실성을 의미한다고 본 것이다. 그런데 중국철학사의 전개에서 제자백가 중 유가는 믿음을 구체적인 도덕적 덕목의 하나로 상정하여 그에 대한 고유한 특성을 부각시켰다. 유가에 의해서 믿음은 어짊과 의로움, 예의, 지혜와 더불어 인간이 반드시 지키고 간직해야 할 오륜과 오상의 하나로 구체화된 것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믿음의 덕목은 마치 유가에게 전유된 도덕 덕목을 가리키는 것인 양 오해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많은 철학자가 자신의 학파적 입장에서 또는 시대적 상황에 따라 고유한 믿음관을 보여준다. 이러한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아주 다양한 믿음에 대한 이해와 해석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왔다는 사실을 주목해야만 한다. 이 책에서는 역사적으로 전개된 믿음의 양상을 열두 가지 측면에서 조명해보고자 한다. 편의상 12라는 숫자가 동양적 사유를 반영할 수 있는 수의 성격을 갖는다는 측면에서 이러한 분류 틀을 상정해본 것이다. 그것은 『예기』의 월령 사상과도 맥락이 닿아 있고, 1년이 12개월로 구성된다는 역수 사상과도 연관된다는 점에서 나름 의미가 있다. 다만, 공자 이전의 시대적 배경을 다룬 『시경』 『서경』 『주역』 등은 독립적인 믿음의 특징이 발견되기도 하지만 상호 텍스트성 때문에 중복되는 믿음의 용례도 많다.
‘이틀 밤을 묵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기도
제1단계는 『시경』에 나타난 믿음의 양상이다. 『시경』에서는 ‘신信’의 의미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남녀 간의 ‘사랑의 약속’을 의미하는가 하면, 이틀 밤을 묵는다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그러나 『시경』에 나타난 믿음의 가장 독특한 의미는 무엇보다 시어를 통한 상징과 은유의 이미지화에 있다. 단 두 차례밖에 등장하지 않지만 『시경』은 남산이라는 공간적 이미지를 전면으로 띄워 올린다. 남산은 군자의 상징이며, 군주의 상징이다. 그것은 남성적인 우뚝함이며, 권위의 상징이기도 하다. 산이라서 높은 존재이며, 더욱이 남산이라서 태양이 가장 높이 떠올라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그 남산과 같은 군주는 늠름할 뿐 아니라 믿음을 갖춘 존재라고 이해되는 것이다. 『시경』의 노래는 남산을 통해 남성다운 지도자의 믿음을 형상화 해낸 특징이 있다. 『시경』에 표현된 ‘인仁’이 늠름한 젊은이의 듬직함을 일컫던 말인 것처럼, ‘신’ 또한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었다. 『시경』은 ‘인’의 관대하고 너그러운 특성이 ‘신’의 미더움을 통해 구체화되어 드러난다고 보는 것이다. 한편 『시경』은 믿음을 가로막는 거짓말에 대해 경계한다. 특히 신하들이 군주에게 하는 거짓말은 문제가 많을 뿐만 아니라, 늘 끊이지 않고 일어난다는 특성이 있다. 이러한 종류의 거짓말을 가리켜 ‘참언讒言’이라고 한다. 참언이란 죄가 없는 사람에게 죄를 뒤집어씌워 정말로 죄가 있는 것처럼 꾸며 윗사람에게 고하는 거짓말의 일종이다. 군주가 이런 참언을 믿고 정치를 수행한다면 나라엔 커다란 혼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시경』은 쉬파리의 윙윙거리는 소리를 참언으로 비유하여, 이를 경계하기를 잊지 않는다.
‘정치적 권능’ 및 ‘도덕주의’와 결합하기 시작
제2단계는 믿음의 정치적 권능과 도덕주의적 성향이 결합되기 시작한 『서경』의 경우다. 『서경』에 나타난 믿음의 용례는 주로 군주의 명령어로서 등장한다. 이때의 믿음은 군주의 명령을 따르는 것이며, 불신은 군주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을 의미한다. 『서경』은 군주의 권력이 하늘로부터 온다고 믿었다. 그래서 하늘에 대한 믿음은 매우 중요하다. 하늘에 대한 믿음은 길한 결과를 가져오지만, 반대로 하늘에 대한 불신은 흉한 결과를 초래한다. 『서경』에는 정치적 천명사상이 담겨 있는 것이다. 그러나 『서경』의 정치적 천명사상은 점차 도덕적 천명사상으로 전환되는 특징을 띤다. 이러한 천명사상의 변화는 믿음의 범주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전의 정치적 복종의 강요와도 같았던 믿음의 의미는 점차 하늘의 도덕적 원리를 밝히고 깨닫는 것으로 전환된다. 외재적 하늘에 대한 믿음을 내면화하여 하늘을 인간의 존재 근거로 이해하기에 이른 것이다. 훗날 성리학의 첨예한 논쟁의 근거가 되는 ‘도심’과 ‘인심’의 개념이 『서경』에 등장하는데, 그것은 마음의 도덕화를 지향한 것으로부터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경』으로부터 믿음의 내면적 도덕화가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 것이다.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믿음에 대하여
제3단계는 변화의 원리에 대한 믿음을 통해 현실의 난관을 돌파한다는 『주역』의 입장이다. 『주역』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변화한다는 데 대한 믿음을 종용한다. 현상적 존재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다는 사실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다. 물론 『주역』의 정신에서 변화하지 않는 것에 대한 믿음이 없지 않지만, 현상적 존재에 관한 한 변화의 도리를 외면할 수 없다. 그리고 인간 상호 간의 관계에서 믿음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내면적으로 믿음이 있다면 어떠한 어려운 상황도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 『주역』에서는 믿음이 현실의 어려움을 극복하게 하는 중요한 덕목으로 강조되는 것이다. 『주역』은 믿음과 언어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이들의 관계가 반드시 정합적으로 일치하진 않는다고 한다. 언어의 한계가 믿음을 배반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한편, 『주역』 역시 지도자의 믿음을 강조한다. 지도자의 믿음이 가슴 가득 진실하다면, 다른 사람들이 그를 믿고 따를 뿐만 아니라 새끼 돼지나 물고기와 같은 미물에 이르기까지 길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지도자의 믿음이 세상을 소통시키며, 평화롭게 안정시킬 것이라는 주장이다.
‘춘추’를 통해 국가 간의 맹약과 믿음 사례 살피다
제4단계는 국가 간의 맹약과 믿음의 사례를 집중적으로 거론한 『춘추』의 경우다. 『춘추』는 일반적으로 충신효자를 높이고 난신적자를 비판하는 춘추 시대의 정신에 입각하여 기록된 역사서다. 맹자는 『춘추』를 공자가 산삭했다고 보았고, 공자가 『춘추』를 완성하자 나라를 어지럽히는 난신적자들이 두려워하게 되었다고 밝혔다. 그런데 『춘추』에 나타난 믿음의 용례는 대부분 국가 사이에 관한 것이다. 춘추 시대에는 국가 간의 전쟁이 빈발했기 때문에 서로의 영토를 침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의 의례인 피의 혈맹의식이 자주 행해졌다. 이것을 맹약이라고 한다. 맹약은 국가 간 또는 제후들 사이에 서로 믿음의 예를 행하는 것이다. 믿음과 예는 서로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그런데 예는 덕의 한 가지 절목에 해당된다. 만일 덕의 결여나 예를 어긴 상태에서 강제적으로 맹약이 이루어졌다면, 이것은 지킬 필요가 없다고 한다. 모든 맹약은 상호 간의 예와 덕이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것이다. 『춘추』는 국가 간의 신뢰를 중시하여, 믿음을 지킨 경우와 믿음을 배반한 경우를 자세히 소개하여 역사의 거울로 삼고 있다. 한편, 국가 간의 맹약을 거행할 때에는 반드시 하늘과 신의 권위에 의지하여 서로 간의 믿음을 공고히 하고자 했다. 그래서 『춘추』에서는 신(상제, 또는 천제)에게 진실한 것을 믿음이라고 했고, 동시에 축사가 올바른 말로 거짓 없이 신에게 고하는 말 또한 믿음이라고 했다. 물론 당대의 축사들이 허위로 신에게 고하는 일이 많았던 것으로 보아 신에 대한 믿음의 의미가 많이 퇴색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믿음은 여전히 신과 함께하는 중요한 덕목에서 제외될 수 없었다.
공맹, 믿음의 도덕적 내면화
제5단계는 공자와 맹자에 의한 믿음의 도덕적 내면화다. 공자는 마음속의 충성스러움의 덕목과 믿음을 병칭하여 거론하곤 했다. 주희는 공자가 말한 ‘충신忠信’을 규정하여 자기 마음을 다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