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전주를 속속들이 누비는 뒷골목 리포트
전주라는 집합적 좌표에 쌓인 시간의 켜를 역사라고 부를 때, 전주를 여행한다는 것은 그 시간 중에서 과연 어떤 시간을 자신의 욕망과 겹치도록 놓아둘 것인가를 되묻는 질문으로 풀이해볼 수 있다. 한때 방문자(외부자)였고, 지금은 거주자(내부자)이며, 동시에 여행자(해석자)인 필자는 전주를 명소의 병렬적 집합으로 보는 수평적 관점에 머물기보다는, 일련의 수직적 시간 가운데 특히 도드라지는 특별한 한때를 꼽아, 당시의 풍경과 지금의 풍경을 버무리고, 그때의 갈망과 지금의 상념을 보태 새로운 정경으로 반죽해 보고자 했다. 이 책에서 필자는 전주의 여러 곳을 다루겠으나, 그곳들이 그저 ‘그때-그곳’에 대한 회고에 머물기보다는, ‘지금-여기’와 맞물리고, 결국에는 ‘지금-우리’에 속했으면 하는 바람을 품고 있다.
전주 여행은 전주의 풍경을 재구성하는 일, 예전의 모습에 지금의 경관을 비추어 이 세상 어디에도 없는 저만의 장소를 만들어내는 일, 현실의 풍경에 꿈의 풍경을 중첩해 다시 바라보는 일, 시간-장소-화자(storyteller)의 3차원 정육면체로 전주를 처음부터 재건축하는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전주를 마음대로 다시 짓고 살뜰한 장소를 북돋워 세월의 기념비를 세우는 일인 것이다.
다시 말해 이 책은 지난 몇 년간, 읽고 공부하고 걷고 올라 장소와 내력, 풍경과 정념, 현실과 역사를 뒤섞어 종이 위에 재구성한 전주인 셈이다. 이 완전한 도시(全州)에 새겨진 1,100여 년의 세월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필요하다. 이를테면 나는 늙은 사공이고, 이 책은 나룻배라고 생각해 보자. 당신은 전주천을 따라 작은 나룻배를 타고 전주의 곳곳을 돌아보는 중이라고. 이 책에 실린 서른 개 남짓한 꼭지는 그 나룻배가 들르는 전주 곳곳의 작지만 아름다운 마을들이라고. 우리는 아주 천천히, 시간이라는 물결에 실려 거기 살았던 따뜻한 사람들과 동네가 품은 흔적들을 하나하나 만나보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