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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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마누엘 푸익 비좁고 음습한 감방 안에서 만난 동성애자와 정치범, 그들만의 멜로드라마 성(性)적인 억압과 편견, 사랑과 자유에 관한 매혹적인 문제작 “난 너와 함께 남고 싶어. 지금 내 단 한 가지 소원은 너와 함께 있는 거야.” 아르헨티나가 낳은 세계적인 작가 마누엘 푸익의 작품 『거미여인의 키스』는 소설뿐 아니라 영화, 뮤지컬, 연극 등 장르를 불문하고 대성공을 거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마누엘 푸익은 왕자웨이 감독의 영화 「해피 투게더」의 원작을 쓴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푸익의 작품들이 동성애와 정치범을 다루고 있다는 이유로 고국에서 판금되었기 때문에 『거미여인의 키스』의 첫 출판은 1976년 스페인에서 이루어졌고, 즉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대중문화와 진지한 문학 사이의 위대한 구분을 과감하게 탈피한 작가로 호평을 받아왔다. 1985년 엑토르 바벤코 감독의 영화 「거미여인의 키스」가 아카데미 작품상, 감독상 및 시나리오상 등에 후보로 올랐고 몰리나 역을 맡은 윌리엄 허트는 남우 주연상을 수상하였다. 1993년에는 뮤지컬 「거미여인의 키스」가 토니 상 7개 부문을 석권하고 이후 브로드웨이의 단골 작품이 되어왔다. 또한 이 작품은 희곡으로도 만들어져 『스타의 망토 아래서』란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푸익은 라틴아메리카 현대 문학사에서 보르헤스, 마르케스 다음 세대로 이사벨 아옌데와 더불어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세계적 작가이다. 또한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갖춘 보기 드문 작가로서 한국에서는 영화 마니아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 왜 세계가 마누엘 푸익을 주목하는가? 대중문화와 진지한 문학 사이의 구분을 과감하게 탈피하여 대중문화를 통해 고급 예술을 창출한 작가. 포스트모던 비평의 선구자인 레슬리 피들러(Leslie A. Fiedler)는 순수문학과 대중문학의 차이점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 두 가지의 차이점이란 결국 문학 특유의 즐거움과 감동을 소수에게 주느냐, 다수에게 주느냐 하는 것인데, 가장 위대한 문학이란 그 두 부류의 독자들을 동시에 만족시킬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급문화 대 대중문화의 대립 논쟁이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는 모르겠지만 ‘가장 위대한 문학’에 관한 피들러의 관점에서 볼 때 『거미여인의 키스』는 확실히 ‘위대한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문학의 기능은 인간이 일상의 의식에서 탈출해 또 다른 의식의 세계로 들어가게 해 주는 것이다. 즉 독자가 자아의 세계로부터 벗어나 초자아의 세계로 들어가도록 해 주는 데 있는 것이다. 푸익은 완전히 상반적인 두 명의 주인공들을 극한 상태로 몰아넣음으로써 이들의 꿈과 환상을 통해 우리로 하여금 인간 본성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감금의 상태를 벗어나고자 하는 몰리나의 몸부림, 그리고 몰리나의 얘기를 “싸구려 낭만주의에 빠진 헛소리”라고 비아냥거리던 발렌틴 역시 결국 몰리나가 만들어 낸 환상에 빠지는 모습 속에서 우리는 현실 속에 갇혀 사고의 자유가 경직되어 버린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왜 『거미여인의 키스』가 아름다운가? 『거미여인의 키스』에서, 우리는 어둠 속에서 외롭게 고통받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지만, 우리의 눈에 보이는 것은 영화의 마술과 로맨스이다. ―《뉴욕 타임스》 푸익은 독창적이고도 도발적인 방식으로 사회 문제에 정면으로 대항하고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은 “비감정적이고 정밀한 문체로 인간 세계가 아직 희망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매우 아름다운 작품이다.”(《타임 리터러리 서플먼트》) 이 작품에 대해 시인 황인숙은 다음과 같은 시를 썼다. “몰리나의 사랑이 불쾌하지 않은 건 몰리나가 아름다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는 육체를 벽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몰리나의 가슴은 평화와 우아함과 미소로 가득했다. 몰리나는 진정한 여성이며 진정한 인간이었다. 나는 이 기묘한 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한 편의 판토마임을 생각했다.” 몰리나는 한 남성과 평생을 살면서 그를 주인으로 받아들이고, 그가 껴안으면 두려움을 느껴야 한다고 생각하는, 허울만 남성인 여자이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는 부르주아적 이성애 모델을 답습한 것으로, 동성애자 역시 착취적인 남/여 모델에 의해 왜곡되어 있다. 게다가 도덕적으로 금기시되는 동성애에 대한 죄의식이 이중의 굴레를 씌운다. 발렌틴은 <여성이 된다는 것은 순교자가 되는 것이 아니며, 남성이 된다는 것은 특별한 권리를 가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더군다나 “성적 취향이 인간의 존엄성을 해칠 수 없음”을 주장하고 있다. 마르쿠제가 동성애자를 사회의 억압적 요소를 상기시켜 주는 비판적 철학자에 비유하듯 우리는 몰리나를 통해 애처로운 환상을 그러나 아름다운 관계의 가능성을 본다. 라틴아메리카 현대 소설은 1960년대 이후 세계 현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치면서 상업적으로도 성공을 거두었으나, 국내에 관심을 불러일으키면서 본격적으로 소개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초이다. 마르케스를 위시한 이들 ‘붐’ 작가들은 지역성과 세계성을 적절히 융합하면서 현대인이 처한 상황을 다양한 서술 형식으로 접근하였다. 한편 1980-90년대에 전성기를 맞기 시작한 ‘포스트 붐’ 세대는 ‘붐’ 작가들이 읽기 어려운 난해한 소설을 추구하는 엘리트주의에 빠져 있으며 지나친 세계주의 성향으로 라틴아메리카의 현실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하면서 소설 장르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향을 강하게 보여 준다. 마누엘 푸익은 ‘포스트 붐’의 이러한 특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 작가로서 작품성과 대중성을 고루 갖춘 작가로 주목받고 있다. 성과 정치 성의 억압을 푸익은 현대를 파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삼고 있다. 그는 작품 속에서, 남성 우월주의와 남성성/여성성이라는 이분법적 성 이데올로기에 억눌린 인물들을 통해 성을 둘러싼 인류의 관습과 제도들을 문제화하고 있다. 푸익은 이러한 성적 억압이 할리우드식 영화나 멜로드라마가 최상의 가치인 양 제공하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행해지고 있다고 비판한다. 푸익은 성에 있어서 음성적이고 터부시되는 모든 것을 탈신비화하기 위해 글을 쓴다고 말한다. 동성애자인 몰리나와 좌익 게릴라인 발렌틴이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이들은 같은 감방에 수감되어 있고, 감옥 생활의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몰리나가 자신이 관람했던 영화들을 발렌틴에게 들려주는데, 그러는 동안에 두 죄수 사이의 관계가 진전되어 간다. 처음에, 몰리나가 들려주는 영화는 이성적이고 정치적인 발렌틴에게는 비판의 대상일 뿐이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부르주아 사회의 하찮은 대중문화의 일종이고 동시에 인간을 비정치적이 되도록 세뇌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진보적인 남성임을 자만하면서, 몰리나를 싸구려 감정에 매달리는 여자 같다고 경멸하던 발렌틴은 몰리나에게서 인간의 진정한 애정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관계의 진전은 소설의 역동성을 마련해 주는데, 그 관계의 절정은 소설 후반에 이루어지는 두 인물간의 성애에서 완성된다. 인간적 합일이라는 구도를 통해 작가는 동성애를 하나의 성도착증으로 터부시해 온 기존 관념과, 여성과 남성을 여성성과 남성성의 대비로 가둬두는 성 이데올로기를 문제삼고 있다. 소설 처음에는 몰리나와 발렌틴이 각각 여성과 남성성을 대표하는 듯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 진정한 이해와 애정이 싹트고 결국 성적인 합일에까지 이르게 되면서 작가의 의도는 오히려 그러한 관념들의 허구성을 증명하는 데 있음을 알게 되는 것이다. 푸익은 이러한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해 정신분석학자들의 성에 대한 이론과 반론들을 각주 형태로 제시하는데, 독자들은 각주로 나타난 학문적 텍스트와 인물 사이의 대화로 나타난 허구 텍스트를 계속적으로 대비하고 비교함으로써 능동적 역할을 증대시키게 된다. 영화와 문학 어린 시절 푸익은 자신에게 “영화란 현실을 대체할 수 있는 하나의 언어체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