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것이 아름답다, 새로운 삶의 지도

에른스트 프리드리히 슈마허님 외 2명 · 인문학
200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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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머학교 고전교실 13권.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간명하고도 매혹적인 이 문장은 1973년 출간 이래 생태주의 운동뿐 아니라 경제와 과학기술, 가치 있는 삶, 노동과 교육에까지 깊은 영감을 준 슈마허의 책 제목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한창 번창한 70년대 초, 이 책은 무한 성장은 환상이자 인류가 망하는 길이라 날카롭게 지적하였고, 자연을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기술이 큰 위기를 만들 것임을 경고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슈마허의 예언대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고 지구 온난화와 생태 위기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환경 운동과 집필에 힘써 온 장성익 선생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새로운 삶의 지도>에서, 지금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품고 슈마허의 문제의식과 대안을 차근차근 들어 보자고 한다. 경제학과 환경, 생태 문제를 접목시켜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고 ‘중도경제학’ 혹은 ‘인간의 경제학’이라는 대안과, 자본과 결탁하여 자연을 조작하고 크고 빠른 것만 추구하는 과학기술 대신 자연을 이해하는 중간 기술을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차분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들려준다.

'그부호' 잇는 독보적 감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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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머리말 : 이 세상과 삶의 진실을 찾아서 1장 시대의 ‘우상’을 무너뜨린 선각자 현대 문명의 경고등, 『작은 것이 아름답다』|옳은 일을 하지 않는 것은 나쁜 일을 하는 것과 같다 2장 우리가 사는 세상 목적과 수단이 뒤바뀐 경제|잔치는 끝났다|산업사회는 인간을 어떻게 망치는가? 3장 새로운 미래의 꿈 생명과 평화를 일구는 경제|겸손과 지혜의 과학기술을 위하여 4장 ‘마음의 집’을 손질하자 ‘좋은 노동’과 ‘좋은 삶’의 관계|인간은 위대하다 나가며 : 슈마허가 그리운 이유 더 읽으면 좋은 슈마허의 책들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현대 산업 문명의 뿌리를 파헤치고 중도경제학, 중간 기술의 대안을 제시한 현대의 고전 ‘작은 것이 아름답다.’ 간명하고도 매혹적인 이 문장은 1973년 출간 이래 생태주의 운동뿐 아니라 경제와 과학기술, 가치 있는 삶, 노동과 교육에까지 깊은 영감을 준 슈마허의 책 제목이다. 자본주의 경제가 한창 번창한 70년대 초, 이 책은 무한 성장은 환상이자 인류가 망하는 길이라 날카롭게 지적하였고, 자연을 조작하고 지배할 수 있다고 믿는 과학기술이 큰 위기를 만들 것임을 경고하였다. 유감스럽게도 슈마허의 예언대로 불평등과 양극화가 더욱 심화되었고 지구 온난화와 생태 위기는 누구도 부인하지 못할 정도가 되었다. 오랫동안 환경 운동과 집필에 힘써 온 장성익 선생은 『작은 것이 아름답다, 새로운 삶의 지도』에서, 지금 이 문제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라는 질문을 품고 슈마허의 문제의식과 대안을 차근차근 들어 보자고 한다. 경제학과 환경, 생태 문제를 접목시켜 주류 경제학을 비판하고 ‘중도경제학’ 혹은 ‘인간의 경제학’이라는 대안과, 자본과 결탁하여 자연을 조작하고 크고 빠른 것만 추구하는 과학기술 대신 자연을 이해하는 중간 기술을 다양하고 흥미로운 에피소드와 함께 차분하고 명쾌한 문장으로 들려준다. 슈마허가 청년 시절 농장에서 일할 때였다. 날마다 소의 수를 세던 슈마허에게 마을 노인은 말한다. “수를 센다고 소가 잘 자라는 건 아니라네.”라고. 며칠 후, 소 한 마리가 죽은 채 발견된다. 이 일로 슈마허는 주류경제학의 근본적인 문제를 깨닫게 되었다. 포도밭의 주인이 늦게 온 일꾼들에게도 아침 일찍 온 일꾼과 같은 일당을 준 이야기, 방글라데시 한 농촌 마을 아낙네들이 암소도 없고 딸도 하나뿐이고 자기 수입도 없는 힐러리 클린턴을 가엾게 여긴 이야기 등은 행복한 삶의 기준, 삶의 진실에 대해 깊은 생각을 하게 이끌어 준다. 슈마허의 통찰을 하나하나 찬찬히 살피며 들려주면서도 저자는 슈마허의 견해가 현대사회의 문제점을 해결할 유일한 모범답안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다만 분명 우리가 좀 더 나은 세상, 다른 삶을 일구는 데 훌륭한 길잡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진정한 위기는 상상력 없음에 있으며, 우리 ‘마음의 집을 손질’하는 것이 세계를 변화시키는 첫 걸음이 될 것이라는 것은 분명하지 않을까? 십대들을 위해 고전을 새롭고 다양한 관점으로 소개하는 너머학교 고전교실의 열세 번째 책이다. 소의 수를 세던 청년 슈마허, 시대의 선각자가 되다 지금부터 약 50여 년 전만 해도 값싼 석유를 마음껏 이용하며 나날이 발전하는 과학기술 덕분에 인간의 삶은 날로 풍요로워질 것으로만 여겼다. 이때 누구보다 앞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의 심각성, 원자력발전의 위험성, 불평등과 양극화 등 인류가 머지않아 부닥칠 문제를 예언하고, 환경과 생태를 경제학과 접목시켜 현대 산업문명을 뿌리부터 뒤바꾸며 새로운 경제학과 과학기술의 대안을 제시한 사람이 바로 슈마허이다. 그 사상의 핵심이 담긴 책이 바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로, 『타임』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인류에게 가장 영향을 미친 100대 저서에 뽑힌 책이다. 저자 장성익 선생은 두바이와 가비오타스 두 곳을 대비시키며 이야기를 시작한다. 두바이가 돈벌이와 경쟁에 시달리는 현대 산업문명을 상징처럼 보여 준다면 연대와 지속가능성, 자연과의 조화를 원리로 삼는 대안 사회의 ‘실험’이라는 것이다. 이 실험의 원리를 선구적으로 제안한 사람이 바로, 슈마허이고, 그의 사상 핵심을 담은 책이 바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이다. 저자는 먼저 슈마허라는 조금 낯선 이름과 친해지자며 슈마허의 삶을 들려준다. 스스로 “조국이 없는 몸”이라고 했던 슈마허는 독일 본에서 태어났지만 세계 대전을 겪으면서 영국으로 이주했고 세계 곳곳을 여행하며 연구하고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생애가 파란만장했던 것처럼 다양한 사상을 섭렵하는데, 경제학에서 출발하여 마르크스주의와 불교에 심취한 뒤 생애 마지막에는 기독교에 귀의하였다. 무엇보다 그는 늘 “서 있는 자리에서 시작하라. 옳은 것을 하지 않는 것은 곧 나쁜 일을 하는 것”이라고 할 만큼 실천적인 지식인이었다. 주류경제학을 넘어 중도경제학, 행복 경제학으로 그가 가장 먼저 주목한 것은 이 사회를 지배하는 주류 경제학의 맨얼굴이다. 슈마허는 주류 경제학을 배우던 청년 시절, 소를 돌보는 일을 한 적이 있었다. 아침마다 언덕에 올라 소를 세던 그에게 마을 어른이 말한다. “소를 센다고 소가 잘 자라는 것은 아니라네.”라고. 며칠 후 소 한 마리가 죽었고, 이 일이 슈마허에게 큰 깨달음을 주었다. 즉 숫자는 질적인 것을 다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깨달음을 더욱 깊어진다. ‘성장’에 목표를 둔 지금의 주류 경제학은 모든 재화를 숫자, 화폐 가치로만 평가한다. 그것이 ‘어린아이들의 피눈물로 얼룩져 있든 말든, 수많은 사람을 죽이는 데 사용되든 말든, 자연 생태계를 폐허로 만든 것이든 말든’ 오로지 그것이 가져오는 이익에만 관심을 가질 뿐, 그것에 얽힌 사연과 맥락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양’이 ‘질’을 지배하는 것이다. 슈마허는 “경제학의 한계를 이해하고 해명하는 경제학”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저자 장성익 선생은 이 메타 경제학을 ‘인간의 얼굴을 한 경제학’이자 ‘자연과 함께하는 경제학’이라고 부르자고 한다. 경제적 가치 외에 그것의 사연과 맥락인, 인간적ㆍ생태적ㆍ사회적 가치가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탐욕과 시기심 같은 인간의 악덕(惡德)이 체계적으로 길러진다면 그것이 낳을 결과는 지성이 무너지는 것에 결코 못하지 않다. 탐욕이나 시기심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능력, 즉 사물을 전체적으로 보는 능력을 잃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그의 성공은 곧 실패가 된다. 사회 전체가 이런 악덕에 오염된다면, 놀랄 만한 일은 해낼 수 있어도 일상생활의 가장 기본적인 문제는 점점 더 해결할 수 없게 된다. GNP가 아주 빠르게 늘어날 수는 있다. 그렇지만 인간은 그것을 체험하지 못하고 점점 더 좌절, 소외, 불안정 따위에 시달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87쪽) ‘작은 것’은 왜 아름다운가? 중간 기술을 제안하다 슈마허는 현대 산업문명의 많은 문제의 원인이 ‘거대주의’에 있다고 본다. 이 거대주의는 기계화와도 연결되는데, 이것에 대한 맹목적인 숭배가 지금의 고통을 초래했다는 것이다. 거대주의와 기계화는 경제력을 집중시키고 환경을 점점 더 파괴시키며, 그 과정에서 개개인의 인간이 들어설 자리는 없게 된다. 슈마허는 이런 거대주의의 문제를 잘 드러내는 것으로 과학기술을 꼽는다. 더 이상 거대한 국가나 기업의 지원 없이는 연구와 개발이 불가능해진 과학기술은 그 후원자들의 권력이나 이윤 논리에 휘둘리고 있다. 또한 인간을 위해 쓰여야 할 과학기술이 오히려 인간의 창조적 노동의 영역을 무자비할 정도로 빠르게 소멸시키며 오히려 인간의 삶을 파괴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기술은 생산에 이용되는 시간을 줄여 버렸다. 그 결과 생산은 의미 없는 것으로 전락했으며, 명예는커녕 실질적인 중요성마저 잃어버렸다. 이 과정은 필연적으로 일하는 시간에서 인간적인 기쁨이나 만족감을 앗아 가는 결과를 낳았다. (중략) 그렇지만 유용한 것을 너무 많이 생산하면 쓸모없는 인간을 많이 만들어 내는 결과로 이어지리라는 걸 잊어선 안 된다. 현대 기술이 발전했고, 발전하고 있으며, 발전해 나갈 방식은 점점 더 비인간적인 얼굴일 것이다.” (151~152쪽) 슈마허는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작은 것’, ‘소박한 것’에 관심을 돌려야 한다고 한다. 무조건적으로 ‘큰 것’을 반대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과 결과적으로 권력을 중심으로 편제되는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슈마허는 ‘기술이 사람을 어떻게 변화시키는가’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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