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수다로 편견과 차별을 넘어 따뜻한 삶을 보듬는다.
이 책에는 비장애인이 미처 보지 못했거나 무관심했던 현실의 다른 부분이 담겨 있다. 바로 장애인의 삶이다.
버스에서 모두 앉아 있고, 왼쪽 긴팔 남방을 펄럭이며 나 혼자 서서 있었는데, 크게 우는 아이를 달래며 한 아이의 엄마가 “너 계속 울면 저 사람처럼 된다”라며 나를 가리켰다. 아이는 이내 뚝 울음을 그쳤다. … 나는 또 언제나처럼 상처를 감내해야 했고, 버스 안 사람들은 저마다 나를 쳐다보았고, 이내 조용하고 쾌적한 버스를 누리게 되었다. (106쪽)
한 손이 없는 나에게 택시를 타고 가라던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있었다. 반찬 몇 가지를 샀는데, 너무나 안쓰러운 얼굴로 힘들겠다며 집이 어디냐고 묻더니 택시비를 주고 택시도 잡아 태워 주셨다. 순간적으로 나는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몰랐던 것 같다. 얼떨결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하고, 택시를 얻어 타고 돌아왔다. (49-50쪽)
이 두 상황은 우리 사회가 장애인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잘 보여 준다. 우는 아이를 어르기 위해 장애인을 부정적 존재처럼 언급하는 아이 엄마와 장애인 손님을 손님으로서가 아니라 안쓰러운 존재로서 대하는 반찬가게 아주머니의 정서적 거리감은 무척 큰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우는 아이의 엄마와 반찬가게 아주머니가 보인 행동의 바탕에는 장애인을 불운한 운명을 타고난 불쌍한 존재나 동정의 대상으로 인식하는 온정주의적 태도가 존재한다. 그것이 어떤 경우에는 부정적 존재처럼 언급하게도 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안쓰러운 존재처럼 대하게도 되는 것이다. 그렇지만 장애인에게 필요한 것은 이런 온정주의적 태도가 아니다.
이 책에는 당당함이 담겨 있다. 장애인은 사회의 온정이나 바라는 존재가 아니라 인간으로서 당연한 권리를 가지고 살아갈 수 있으면 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는 차별과 편견 속에 자신의 운명을 탓하던 한 장애인이 장애를 삶의 한 형태로서 받아들이고 세상과 당당히 맞서 나가는 삶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특히 생소한 장애학을 공부하는 학자로서, 장애학을 통해 자신의 삶과 의식이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그 과정도 담담하게 들려주고 있다.
<수다 떠는 장애>의 지은이는 선천적으로 한 팔이 없는 장애를 갖고 태어났다. 어린 시절 친구들로부터 “외팔이” 또는 “후크 선장”이라는 별명으로 불리기도 했고, 길을 가다 장애를 숨기기 위해 착용한 의수가 헐거워져 벗겨지면서 당황했던 경험도 있다. 그리고 깁스를 한 적이 있는 비장애인이 얼마간 불편을 감수하며 장애 체험을 해본 것처럼 말을 할 때, 언젠가는 풀게 될 그 깁스를 부러워했다고 말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부터 장애인에 대한 세상의 편견과 차별을 경험하였고, 또 그런 자신의 운명을 원망하고 탓하기도 했지만, 대학에서 사회복지학을 공부한 그는 영국에서 석사 과정을 밟으면서 운명처럼 장애학을 알게 되었고, 또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밟았다. 그는 생소한 장애학을 공부하면서 장애가 삶의 한 형태라는 것을 수용하고, 장애인도 비장애인과 마찬가지로 동일한 권리를 지닌 인간이고, 자신의 역량을 강화하면 장애에 대해 자부심을 가지면서 사회에서 자신의 삶을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고 한다.
이 책에는 우리 사회의 중요한 화두인 사회복지 문제에 대한 생각거리들이 많이 담겨 있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노인과 여성, 교통과 의료, 디자인 문제까지 우리가 오늘을 살아가면서 고민해 보아야 할 문제들이 제기되고 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 장애인을 위한 시설들이 많이 갖춰지고 있다. 그런데 무늬만 장애인 전용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지은이는 어떤 공공 도서관에 설치된 장애인용 컴퓨터에는 기본적인 프로그램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 문서 작업도 제대로 할 수 없었다고 한다. 이유는 장애인이 많이 활용하지 않아서라는 것. 그렇게 무늬만 장애인 전용으로 할 바에야 평상시에는 비장애인도 사용할 수 있고, 장애인이 이용할 경우에만 장애인에게 우선권을 주는 방식으로 제대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장애인 전용 화장실도 예산이나 활용도가 문제라면 임산부나 유아를 동반한 가족들이 같이 사용할 수 있는 가족용 화장실로 바꿔서 문제를 해결하자고 한다. 그리고 장애인이 편리하면 모두가 편리하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우리 사회를 디자인한다면 우리 사회가 훨씬 더 살기 좋지 않겠냐고 말한다. 그리고 영국과 미국에서 공부하면서 체험한 양국의 의료제도를 비교한 글도 흥미롭다. 영국과 미국은 극과 극의 의료제도가 실시되고 있는데, 의료 접근성이 뛰어나고 비용도 많이 들지 않는 영국식 의료체계도 신속한 의료 지원을 받지 못하는 단점이 있고, 보험회사의 지배 아래 있는 미국식 의료체계는 돈이 없는 사람에게는 참 접근하기 어려운 시스템이다. 의료 시장 개방을 추진하고 있는 우리 현실에서 이 글은 우리에게 더 바람직한 의료체계에 대해 한 번 더 생각해 보게 한다.
이 책에는 따스함이 있다. 장애인도 비장애인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게 고단하기는 마찬가지다. 그런 고단함을 떨쳐버리는 데 수다만큼 좋은 것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은 딱딱한 이야기도 수다처럼 부드럽게 풀어내며 우리에게 위안과 공감을 준다.
이 책은 2009년부터 2012년까지 3년 넘게 서울복지재단의 웹진에 <수다 떠는 장애>라는 제목의 칼럼으로 발표되어 많은 이들의 관심과 공감을 받은 글들을 묶은 것이다. 그리고 2015년 우수출판콘텐츠 제작 지원 사업 선정작으로 뽑히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