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진실을 죽였는가
이 책에서 가장 많이 다룬 것은 점잖은 인간들의 배후다. 바로 지식인들의 이면이요, 지식인들의 비도덕성이다. 그걸 뒤집어놓고 보면 나 역시 거기에 전부 해당할 수 있다. 부끄러운 일이다. 그래서 이 책의 많은 부분은 성찰의 기록이기도 하다. 이 책은 좌파에 경도되었거나, 가짜 보수의 허울 속에 갇힌 사람들을 위해 썼다. 결코 내 생각을 감추지 않았지만, 그만큼 여백도 많이 두었다. 독자들은 여기저기 비어 있는 터를 찾아 그 마당에서 한번 놀아보기 바란다.
- 서문 중에서
1. 보수논객 전원책, 좌파를 재정의하다!
우리는 부도덕한 정치인들을 너무 많이 봐왔다. 최고학부를 나온 엘리트라고 불리는 자들, 그들이 저지르는 범죄는 까발려질수록 더럽고 비열하다. 정치에 염증을 느낀 사람들은 차라리 무관심을 택한다. 좌파와 우파, 진보와 보수, 그 개념에 대한 정의도 명확하지 않은 채 중도라는 애매한 입장에서 냉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무상급식이냐 전면급식이냐, 선택적 복지냐 보편적 복지냐 같은 선택의 문제들은 우리 삶과 직접적으로 맞닿아 있다. 무엇이 문제일까?
대한민국 대표 보수논객 전원책은 좌파들의 공허한 정책과 단견, 무지 때문이라고 말한다. ‘시 쓰는 정치비평가’ 전원책은 진보주의자들이 인정하는 거의 유일한 보수주의자로, 각종 토론프로그램과 시사프로그램에서 거침없는 언변을 선보이며 수많은 이슈를 만들었다. MBC ‘손석희의 시선집중’과 KBS ‘열린토론’에 고정 출연할 정도로 탄탄한 논리를 가진 이 시대 지식인으로, ‘전거성’이라는 별칭도 있다.
전원책에 따르면, 좌파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으며, 동지라는 이름으로 뭉쳤다가도 자신의 입장에 따라 손쉽게 적을 만드는 자들이다. ‘지식인이란 이름표를 단 좌파 선동가들은, 정치적으로 문제된 공공의 사안에서 전문가가 아니면서도 공적인 의견을 표명하고 집단적으로 투쟁에 나서는 등 이념을 위해서라면 조금도 망설이지 않았다.(292쪽)’ 그건 모두의 미래가 아닌, 그들이 바라던 그들만의 미래였을 뿐이다.
전원책은 ‘이념의 중간은 없다. 이념에 무지하기 때문에 중도라는 표현을 쓰는 경우가 더 많다.(171쪽)’고 따끔하게 충고한다. 정치든 정치인이든 비판하기 위해서는 기회주의적 태도를 버리고, 스스로가 먼저 깨어 있는 우파가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이 책에는 저자의 문학·역사·철학 등 다방면의 식견을 바탕으로, 좌파의 원류라고 할 수 있는 ‘칼 마르크스’에서부터 지난 정권의 박정희, 노무현, 김대중 등 인물의 실체까지 총체적인 비평이 담겨 있다. 26가지 키워드를 매개로 한 각각의 아포리즘은 유기적이면서도 독립적이어서 관심이 가는 어느 장부터 펼쳐 읽더라도 울림이 있을 것이다.
노무현 정부 들어 역사의 ‘진실’을 규명하겠다는 운동이 벌어졌다. 처음 친일파를 찾아내 부관참시 하겠다는 것이, 곧 백년을 거슬러 가 ‘동학농민운동’부터 군사정권까지 역사를 다시 쓰겠다는 것으로 확대됐다. 민생은 제쳐두고 정권이 그런 일에 매달렸던 데는, 이 나라 ‘보수세력’의 뿌리를 잘라내겠다는 숨은 의도가 있었다. 노무현 정부는 ‘과거사를 전부 규명해야만 사회 기강이 서고 미래가 있다’고 둘러댔다. 그건 모두의 미래가 아닌, 그들이 바라던 그들만의 미래였을 뿐이다.
- 『자유의 적들』中 ‘진실’ (155쪽)
좌파는 모든 것을 계량화한다. 정확하게는, 좌파는 모든 것을 계량화할 수 있다는 데서 출발한다. 마르크스 이후 좌파의 주장에는 대체로 각종 통계와 수치들이 따라붙어 있다. 그러나 그 통계들은 숫자가 나열된 것 외에 어떤 의미도 없다. 그들이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기 때문이다.
- 『자유의 적들』中 ‘계량화’ (189쪽)
2. 부도덕한 지식인들, 그들이 진정한 ‘자유의 적’이다!
지식인들의 집단적인 편견은 인류를 파멸로 이끈다. 1930년대 히틀러가 독일에서 나치즘의 광풍을 일으킬 때 서구의 지식인들 중에는 반유대주의와 반시오니즘과 애국주의, 나아가 독일의 재탄생을 칭송하는 자들이 많았다. 사실 지식인들이 책에서 말하는 ‘진리’ 혹은 ‘진실’에는 자신의 시야에 스스로 갇혀서 나온 편견이 허다하다. 그런 편견이 진리 혹은 진실로 둔갑할 수 있는 것은, 그 책을 읽는 독자 역시 좁은 시야에 갇힐 수밖에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 『자유의 적들』中 ‘편견’ (425쪽)
두 얼굴을 가진 자들은 대개 배운 자, 가진 자들이다. 배운 자들은 배운 ‘기술’을 이용해서, 가진 자들은 돈의 위력으로 탐욕을 채운다. ‘수십조 원의 그룹을 자식에게 물려주면서 온갖 편법을 동원해 수억 원의 증여세만 내도록 절세한 자가 부끄러움을 모르고 공공의 영역에 나선다는 건, 이 사회가 얼마나 그런 일에 무감각한지 잘 증명해 주는 예다.(368쪽)’ 이런 현실 속에서 요즘은 좌파도 우파도 아닌, 새로운 성향을 내세우는 ‘강남 좌파’에 사람들의 관심이 지나치게 쏠려 있다. 하지만 우리는 역사적으로 독일의 히틀러정권이나 우리나라의 박정희정권을 보면서 집단적 편견의 무서움을 보았다. 『자유의 적들』은 편견에 사로잡히거나 무지한 좌파에서부터 더 나아가서는 지적 허영심으로 가득 찬 지식인까지 이 시대의 모든 부도덕한 자들을 향해 일침을 가하는 책이다.
시 쓰는 정치비평가 전원책은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대상을 ‘동지라고 부르는 자들’이라고 조언하면서 거짓말이 넘쳐나는 정치판을 똑바로 직시하라고 한다. 우리 주변에서도 젊은 시절엔 좌파를 지향하다가 이념을 전향해 우파가 된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이들을 좌파라고 할 것인가 우파라고 할 것인가?
좌파니 우파니 하는 이분법은 결국 부차적인 것이지 본질은 아니다. 이 책은 이 시대 지식인으로 불리는 시민의 적이자 ‘자유의 적들’을 낱낱이 까발린다. 자유의 화신인 척하면서 정치적 이익을 취하려는 무지한 지식인들 모두가 이 책의 비판 대상이자 진정한 자유의 적들이다. 때론 은근하게 때론 적나라하게 까발려진 진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정치인은 별로 없다. 이 책의 아포리즘은 이 시대 지식인이라 자부하는 사람들의 지적 허영심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진정한 정신적 자유를 안겨줄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김정일을 두고 ‘식견 있다’고 평가했다. 국가지도자의 이런 잘못된 평가는 국민의 경계심을 풀고 스스로를 무장해제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북한의 만수대의사당에 갔을 때 ‘인민의 행복이 나오는 인민주권의 전당’이라고 적었다.
- 『자유의 적들』中 ‘진실’ (148쪽)
대개 스스로를 좌파나 진보라고 부르는 자들이 쓰고 있는 관용이란 가면 뒤에는, 예외 없이 근거 없는 분노와 허세에 가까운 오만이 빚어내는, 조소와 모멸이 뒤엉킨 맨얼굴이 숨어 있다. 그런 그들의 동질성에는, ‘읽고 싶은 책’만을 읽고 듣고 싶은 말만 듣는 이단 마르크스교의, 패거리의식이 깔려 있다.
이에 비해 보수 혹은 우파를 자칭하는 자들의 관용은 터무니없는 예의에 불과하다. 상대를 존중하는 척 하면서 가끔 고개를 주억거리고 심지어 맞장구까지 친다. ‘적어도 나는 좌파의 말을 알아듣는다’는 표정에는, ‘자신도 깨어 있다’는 암시를 하는 비굴한 미소가 번져 있다. 그러나 속살은, 무지로 인한 무관심이거나 완전한 체념이다.
- 『자유의 적들』中 ‘관용’ (229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