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서 야생동물이 인간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이야기
5월 보리 수확철이면 너구리 새끼가 야생동물병원을 가득 채우는 이유가 뭘까? 고니가 납 중독에 걸린 이유는 뭘까? 전주천 수달은 왜 앞발을 잃어야 했을까? 어미 뱃속의 새끼고라니들은 살릴 수 있을까? 수리부엉이는 깃 이식은 성공했을까?
급박하게 돌아가는 야생동물병원을 찾은 동물 환자들의 사연은 하나같이 구구절절하다. 그런데 동일한 것 하나는 모두 인간과 연관이 있는 이유라는 것이다. 수렵과 밀렵, 개발, 로드킬과 도시화, 서식지 파괴 등이기 때문이다. 심지어 개선충의 걸린 너구리의 발병 원인도 서식지를 잃고 굶주려서 면역력이 떨어진 너구리들이 개선충에 걸리는 것이니 야생동물병원의 동물환자들은 모두 인간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연관을 갖고 입원한 것이다.
이런 동물환자들을 보살피는 야생동물병원 수의사들의 손길은 때로는 따뜻하고 때로는 차갑다. 병의 치료를 위해서는 최선을 다하지만 다 고치고 난 후에는 야생성을 되찾아주기 위해서 차갑게 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귀여운 수달의 모습에 정을 느끼면서도 이별해야 하기에 정을 주지 않으려 애쓰는 초보수의사들의 모습에 웃음 짓게 된다.
게다가 야생으로의 귀환은 불가 판정을 받았지만 안락사 되지 않고 야생동물병원의 장기 투숙객이 되어 인간과 관계를 맺고 사는 동물들도 있다. 두 눈을 잃은 삼촌 너구리는 새끼 너구리들의 야생성을 회복시켜주는 유모 노릇을 하고, 고층 건물 유리창에 부딪혀 시력을 잃은 말똥가리는 사람들에게 야생동물의 부상원인과 야생동물 서식지 파괴의 심각성을 알리는 살아있는 조교가 되어 준다.
밀렵, 덫, 로드킬, 중금속중독 등 인간에 의해 다치고 인간에 의해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야생동물의 이야기, 대한민국에서 인간과 부대끼며 살아가는 야생동물의 슬프고도 아름다운 이야기가 가득 담겨있다.
[출판사 서평]
야생동물 빈국 대한민국의 치열한 야생동물 구조 일지
2000년과 2001년 <세계자원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은 국토 2킬로미터당 야생동물수가 95종으로 전체 155개국 중 131위로 야생동물 빈국에 속한다. 개발로 인한 서식지 감소와 밀렵, 밀거래로 인한 개체수 감소가 주요 원인이다. 이대로 둔다면 우리나라에서 야생동물수는 점점 줄어들고 천연기념물이나 멸종위기 동물은 사라질 것이다. 이런 상황 속에서 한 마리의 야생동물이라도 살려서 자연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애쓰는 곳이 바로 야생동물보호의 최전선, 전국에 있는 야생동물병원이다.
현재 국내에 있는 야생동물병원은 모두 11곳으로 재정 부족으로 시설과 인력 모두 열악한 상황이지만 현장은 한 생명이라도 살리려는 열정으로 꽉 차 있다. 로드킬로 척추가 손상된 고라니와 삵, 밀렵꾼의 총에 맞은 독수리, 낚시꾼들이 버리고 간 납 봉돌에 의해 납 중독에 걸린 고니 등 수 많은 동물 환자가 찾는 곳이지만 이들이 모두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은 아니다. 미처 손을 쓰기도 전에 떠나기도 하고, 야생에서 스스로 먹이를 찾으며 살아갈 수 없을 때에는 안락사를 시키기도 한다. 야생동물의 안락사 기준은 반려동물과 다르다. 자연에서 스스로 살 수 없을 거라고 판단되는 부상을 입었다면 안락사를 고려하게 된다. 힘든 결정이지만 그게 반려동물 수의사와 야생동물 수의사의 차이이다.
야생동물병원의 가장 기쁜 순간은 무사히 치료를 마친 동물들이 방생되는 순간이다. 병원에 들어왔다가 다시 자연으로 돌아가는 확률이 30.2% 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이동장을 박차고 자연의 품으로 돌아가는 야생동물의 모습에서 야생동물병원의 수의사들은 보람을 느낀다. 이런 벅참과 때때로 느끼는 좌절감을 초보 수의사들이 이 책에 담았다. 아직 초보이기에 야생동물의 죽음 앞에서 더 좌절하고, 분노하고, 살려서 자연으로 돌려보낼 때의 환희가 더 생생하다.
이 책의 저자들은 자신들이 병원에서 만난 야생동물은 모두 아름답고 특별했다고 전한다. 그 특별하고 아름다운 각각의 생명을 지켜주는 최후의 보루, 야전병원과 같은 야생동물병원의 급박한 일상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