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손만 잡고 자는 우리, 무슨 사이일까? 집과 재산을 공유하지만 섹스는 하지 않는다? 남편이 아닌 여자 친구와 소울메이트인 나, 이상한 걸까? 사랑과 우정 사이, 다른 길을 찾아 나선 레즈비언들의 새로 쓰는 관계와 섹슈얼리티 이야기! “보스턴 결혼? 그게 대체 뭔데?” ― 섹스라는 관념에 도전한 레즈비언들 두 여자가 있다. 이 여자들은 몇 년을 함께 살아왔고, 집과 재산을 공유하고, 반려 동물을 같이 키우고, 함께 있을 때면 다정한 손길로 서로 어루만지고 안아준다. 그러나 섹스는 하지 않는다. 이 둘은 애인일까? 부부일까? 아니면 그냥 아주 친한 친구 사이일까? 두 사람은 레즈비언일까? 그저 남자를 만나지 않고 있는, 여자 친구와 함께 사는 이성애자일까? 이런 질문을 던지며 섹스, 연애, 관계, 친밀성의 기존 관념에 도전한 레즈비언들이 있다. 《보스턴 결혼》은 ‘로맨틱하지만 무성애적인 관계’라는, 레즈비언들 사이의 흔하지만 이야기된 적이 거의 없는 현상에 주목한다. 이 책을 쓴 25명의 다양한 여성들은 때로는 자신들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때로는 문헌에서, 때로는 현장에서 길을 찾으며 독자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섹스란, 레즈비언 정체성이란, 관계란 대체 무엇이냐고. 사랑보다 먼, 우정보다는 가까운 ― 여성들이 다시 쓰는 관계의 서사 ‘보스턴 결혼’은 19세기에 결혼하지 않고 둘이 함께 살며 깊은 우정을 나눈 독신 여성들을 이르던 말이다. 두 엮은이는 어린 시절 여자 친구들에게 품은 열정이나 일반적인 연애로 부를 수 없던 관계 등 자신들의 개인적인 경험으로 책을 연다. 이런 현상에 새로이 이름을 붙여주면서 지금까지 우리를 제한하던 섹스와 연애의 관념을 넓히려고 저자들이 빌려온 개념이 바로 19세기의 ‘보스턴 결혼’이다. 지은이들은 오늘날 레즈비언들 사이의 섹스 없는 사랑에 보스턴 결혼이라는 이름을 붙여주며 이것이 비정상 상태이거나 문제 있는 관계가 아니고, 나름의 역사를 지닌 해볼 만한 연대체라는 점을 강조하려 한다. 책은 우선 다양한 측면에서 ‘보스턴 결혼’을 둘러싼 이론적 논의들을 살펴본다. 릴리언 페이더먼은 19세기 보스턴 결혼을 한 여성들에 관해, 그리고 여성들 사이의 사랑을 둘러싼 사회적 담론의 변화를 추적하며 ‘섹스 없는 사랑’이 어떻게 터부시됐는지 밝힌다. 마니 홀은 섹스를 중심에 두고 관계의 중요성을 따지는 구조에서 벗어나보려 다양한 대안적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섹스의 중요성에서 탈피할 수 있을까 가늠해본다. 조앤 룰런은 레즈비언들의 삶에서 금욕, 섹스하지 않고 사는 삶이 갖는 의미를 여러 측면에서 따져본다. 수재너 로즈와 데브라 잰드, 마리 치니는 인터뷰, 문학 작품, 연애 지침서 등 다양한 자료를 통해 레즈비언들이 관계를 시작할 때 사용하는 구애 각본을 세 가지로 구분해 살펴본다. 로라 브라운은 보스턴 결혼 커플과 심리 상담을 할 때 상담사가 염두에 둬야 할 지점들을 짚어본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내용은 다양한 여성들이 보내온 자신의 ‘보스턴 결혼’ 이야기다. 13명의 여성이 따로 또 같이 들려주는 자기 관계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보스턴 결혼의 생생한 현실, 특별하지만 또 지극히 평범한 이야기들을 만날 수 있다. 다사다난한 일련의 성적인 연애들을 거쳐 결국 모린이라는 여자와 무성애적인 관계로 정착한 레슬리, 성적인 관계에서 무성애적인 관계로 이동하며 8년을 만나왔지만 아직도 그 관계의 성격을 두고 밀고 당기는 중인 앤지와 시더, 무슨 이유에서 언제부터 섹스를 그만뒀는지 모르겠다는 40대 커플 마리아와 캐슬린의 이야기는 그 결은 조금씩 다르지만 섹스 없이도 유지되고 있는 관계의 다양한 측면을 보여준다. 한편 다른 사람과 연애하지만 ‘가장 온전히 서로 이해하는 사람’으로 만나오고 있는 스무 살 차이의 매리앤과 엘리자베스, 각자 약혼자와 여자 애인이 있지만 섹스가 아닌 ‘블리스’를 나누며 자신들의 관계를 다른 사람들에게도 인정받고 있는 루스와 아이리스의 이야기는 인상적이다. 이 두 이야기는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관계가 꼭 섹스하는 연애 관계일 필요는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로라는 우리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관계인데도 성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무시되는 관계들이 많다고 지적하며, 자신의 레즈비언 친구들하고도 다른 도시로 이사를 갈 때 “누구 나랑 이사하고 싶은 사람?”이라고 물을 수 있는 공동체가 되고 싶다고 말한다. 사랑이냐 우정이냐 하는 협소한 정의로는 담아낼 수 없는 이 다양한 관계의 스펙트럼을 들려주는 여성들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자신이 맺고 있는 관계들에도 다시 한 번 질문을 던져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책은 ‘보스턴 결혼’과 관련된 몇 가지 쟁점을 다루며 끝맺는다. 엘렌 콜은 성 상담 치료사로서, 이 책에 실린 이야기들을 읽은 뒤 규칙적인 성생활은 육체와 정신의 건강에 필수이고 치료사는 그것을 목표로 내담자를 대해야 한다는 기존의 관념을 다시 돌아보게 됐다고 말한다. 마르시아 힐은 관계를 정의하는 언어를 또 하나 만들어낼 때 그것이 기존 언어의 위계 속으로 포함될 위험성을 염려하면서도, 아직 우리에게는 말해지지 않은 관계, 말해지지 않은 친밀성과 헌신을 묘사할 언어가 더 많이 필요하다고 격려한다. 동성 결혼의 시대, ‘하나이지 않은 친밀성’을 찾아가는 지도 그리기 격렬한 반대를 불러일으키면서도 미국에서는 동성 결혼이 합법이 됐고, 한국 사회 역시 호모포비아에 맞서 동성애자로 살아갈 권리, 가족이 될 권리를 부르짖고 있는 시대다. 우리는 이성애자 부부에 대응하는 동성애자 커플의 이미지를 어렵지 않게 그려볼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이것으로 충분한 걸까? 《보스턴 결혼》은 그렇지 않다고, ‘섹스하고, 연애하고, 결혼한다’는 단일한 서사 뒤로 억압된 다양한 친밀성을 다시 꺼내주고 이름을 붙여줘야 한다고 말하는 책이다. 이성애 중심, 남성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우리가 더 많은 관계를 상상하고 맺어나갈 수 있게, ‘하나이지 않은 친밀성’을 찾아낼 수 있게 말이다. 평생의 동반자와 섹스 없이 살아가는, 애인 아닌 친구와 가장 깊고 끈끈한 유대를 나누는, 먼저 그 길을 모색한 여성들의 이야기는 독자들에게 든든한 지도가 돼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