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로 읽고 보는 쉬운 미술 이야기
이 책 『광고로 읽는 미술사』는 정통 미술사와 달리 현대 광고를 내세워 그 속에 함축된 미술과 역사를 풀어낸 책이다. 글을 쓴 미술 평론가 정장진은 고대 이집트 문명부터 시작해 오늘날의 제프 쿤스로 마무리되는 각 장마다 간략하고 핵심적으로 미술사를 다뤘다. 또한 이 책은 광범위한 회화사를 종합적으로 편집한 미술사 입문서로도 손색없다. 이제 막 미술사를 읽어 볼까 싶은 독자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교양 도서가 될 것이다.
저자는 재미난 광고 한 편부터 이야기를 시작한다. 예를 들면, 고흐가 그린 폴 가셰 박사의 초상화에 휴대폰을 합성한 광고를 보여 준 후, 고흐의 그림이 왜 이 시대 인기 모델이 되었는지를 알려 주면서 고흐의 광기 어린 작품 세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간다. 또, 시대를 불문하고 언제나 사랑받는 모나리자가 현대 광고에 어떻게 사용되었는지 일렬로 나열해 한눈에도 모나리자의 위상을 알 수 있다. 다이어트 모델, 혹은 스타킹 모델, 불경기를 드러내는 심기 불편한 표지 모델로서의 모나리자 등등. 그뿐만 아니다. 스티브 잡스의 <애플>이 에덴동산의 <애플>로 연결될 때에는 광고와 미술의 재치 넘치는 연계에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하지만 정장진은 여기에서 멈추지 않고 미술사를 다시 써야 한다고 주장한다. 곰브리치나 잰슨이 쓴 지나치게 고리타분한 미술사가 아닌 전혀 다른 미술사에 대해 각성해야 한다고.
사실 지금처럼 역사상 광고로 가득 찬 적은 없다. 상업적 광고가 대부분이지만 공익 광고, 정치 광고도 결코 적지 않다. 저자는 현대인이 <광고에 매몰된 채 살아간다>는 말을 <이미지에 매몰된 채 살아간다>라고 정정한다. 그렇다, 우리가 보는 것은 단순한 광고가 아니라 이미지이다. 광고를 지배하는 시각적 메시지의 생산, 유통, 소비를 지배하는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논리 전체가 이미지이다. 그리고 이미지는 바로 광고 속에 숨어 있다. 이를 최초로 지적한 사람이 바로 1960년대 초에 광고 이미지를 기호학에서 분석한 프랑스의 문학 연구가 롤랑 바르트이다. 이후 광고는 순수 예술과 동등한 차원에서 이미지의 일부로 편입되어 거의 동일한 분석, 연구 방법론의 적용 대상이 되었다.
롤랑 바르트는 유명한 제면 업체인 판자니가 스파게티를 광고하기 위해 제작한 이미지를 분석하면서, 신선도를 부각시키는 세세한 이미지를 다룬 다음, 이 아무것도 아닌 광고 이미지를 서구 회화의 중요한 장르 중 하나인 정물화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 문화적 근원을 언급하였다. 광고는 걸작 예술품을 활용해 때로는 은밀하게 그 수사학을 가져오기도 하고, 때로는 다른 명작의 이미지와 함께 어울려 아예 예술 작품으로도 태어난다. 책이나 잡지의 표지에 쓰이거나, 상업적 용도를 벗어나 대선 후보의 정치 포스터에도 등장하며, 어떤 때는 창고에 쌓아 놓았던 물건에 날개를 달아 준다. 그러므로 저자는 이제 <이미지>로 키워드를 바꿔야 한다고 말한다. 21세기, 문화와 이미지 시대에는 회화도 이미지 중의 하나에 지나지 않으며 따라서 광고도 당당히 이미지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한다.
미술을 알아야 광고가 보이고, 광고를 읽을 줄 알아야 세상이 보인다!
이 책은 광고가 활용한 원화들을 시대별로 나누어서 다루었다. 르네상스와 19세기, 20세기의 회화, 조각 들이 가장 많이 광고에 활용되었다. 중세는 거의 없었고, 17세기도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로 드물었다. 뜻밖에도 20세기 작품들이 광고에 많이 활용되었는데, 사실 이런 현상은 의외라고 할 수는 없다. 워홀이나 릭턴스타인 같은 팝 아트 예술가들은 광고, 만화, 혹은 연속극 같은 대중 예술과 대량 생산된 상품들로부터 거꾸로 창작의 모티브를 얻어 내기도 했다. 이런 현상은 오늘날 더욱 심해져서 아예 처음부터 예술가들이 개입해서 상품을 디자인하고 마케팅에 참여하기도 한다. 유명한 보드카 업체인 앱솔루트가 전형적인 예이며, 제프 쿤스 같은 현대 예술가가 참여한 BMW의 「아트 카」도 한 예로 들 수 있다.
잘 만든 광고는 채널을 돌리는 사람의 손을 멈추게 한다. 최근 좋은 반응을 얻은 신세계 닷컴 광고는 회화(에드워드 호퍼)를 영화(셜리에 관한 모든 것)로 제작하여 재해석한 콘텐츠를 다시 응용함으로써 성공을 거뒀다. 회화가 있고 영화가 있었으며 그리고 광고가 나왔다. 콘텐츠가 하나의 먹이 사슬처럼 연결되면서 해석되고 응용되는 이 순서에 잠시 주목하자. 그러나 다른 사슬이 있다. 이 두 번째 사슬은, 앞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어 놓는데, 즉, 광고가 있고 영화가 있으며 회화가 가장 나중에 나온다. 콘텐츠 먹이 사슬이 꼭 회화, 영화, 광고 순은 아니다. 전도된 먹이 사슬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중요한 것은 이 세 개의 콘텐츠가 먹이 사슬을 이루며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이전부터, 언젠가는 사슬을 이룰 수 있도록 처음부터 서로 가까이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회화, 영화, 광고 사이에는 접점들이 있었고, 이 접점들은 원래부터 언제든지 경계를 넘어서서 사슬을 이룰 수 있는 잠재적 가능성 상태에 있었다.
각 콘텐츠 영역에는 고유의 코드가 있다. 광고의 코드는 영화의 코드와 비슷하지만 근원적으로 다르다. 회화와 영화의 관계에서도 각각의 코드는 접점보다는 차이점이 많다. 미미하고 돌발적이지만 이 서로 다른 코드의 접점들이 만나 삼투압이 일어나듯이, 서로에게로 침투하여 돌연변이를 만들어 낸다. 그러므로 우리가 보는 광고 속에 미술이 있음을 이해해야 한다. 미술을 알아야 광고가 보이고 광고가 보이면 시대를 알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