퓰리처상 수상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가장 생생하고 동시대적인 ‘루시 바턴’ 이야기
“이 책은 삶 그 자체처럼 느껴지는 예술작품이다”
<뉴욕 타임스> 베스트셀러
<뉴욕 타임스 북 리뷰> <워싱턴 포스트> <타임> <엔터테인먼트 위클리>,
NPR 선정 올해의 책(2022)
“스트라우트처럼 놀라운 역량을 지닌 동시대 작가는 없다.
이 책은 좋은 책일 뿐만 아니라 우리가 필요로 했던 책이다.” 보스턴 글로브
인간의 복잡한 내면세계를 예리하게 포착해, 가장 명징한 문장으로 감정의 본질을 증류해내는 작가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신작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오른 『오, 윌리엄!』의 후속작이자 ‘루시 바턴’ 시리즈의 최신작인 『바닷가의 루시』는 루시와 첫 남편 윌리엄이 세상을 집어삼킨 바이러스를 피해 한적한 바닷가의 집으로 가게 되면서 일어난 일을 그린 장편소설이다. 『올리브 키터리지』의 ‘올리브’, 『내 이름은 루시 바턴』 『오, 윌리엄!』의 ‘루시’ 등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의 작품 속에서는 인간적이면서도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유달리 독보적인 존재감을 뽐낸다. 『오, 윌리엄!』 출간 이후 일 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새로운 ‘루시’ 시리즈를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을 두고 작가는 “루시와 윌리엄에 대해 생각하기를 멈출 수 없었다”고, “내게 그들은 살아 있는 존재이기에, 그들이 새로운 장소에서 새로운 상황에 처하는 것에 대해 계속 쓸 수밖에 없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렇게 스트라우트는 “문학사에 남을 불후의 캐릭터”인 루시를 가장 생생한 시공간으로, 전 세계가 맞이한 역사적 사건의 한가운데로 불러오게 되었다.
“당신은 알고 있었어?” 내가 묻자 그는 이렇게만 대답했다. “루시, 우리 누구도 뭐라도 아는 건 없어.” 그 순간 내가 이해한 것은―느리게, 아주 느리게 깨달았다―내가 정말로 아주 오랫동안 뉴욕을 다시 보지 못하리라는 사실이었다. (41쪽)
스트라우트의 기존 작품들이 미묘한 심리나 내적갈등과 같은 내면의 목소리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이고 있었다면 이번 작품에서는 이에 더불어 사회적 사건들이 전면에 드러난다. 『바닷가의 루시』는 배경이 코비드 19로 인한 팬데믹일 뿐만 아니라 서사 속에 트럼프 행정부의 정책들, 조지 플로이드 사건, 미국 국회의사당 습격 등 미국 사회를 뒤흔든 실제 사건들이 자연스레 녹아들어 이야기와 현실 사이의 거리를 좁힌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정신없이 지나온 몇 년간의 사건들이 비로소 내게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었다”는 시인 고명재의 말이 보여주듯, 이것은 모두가 함께 지나온, 그러나 여전히 쉽게 정리되지도 이해되지도 않는 한 시대에 대한 이야기다. 바이러스가 전 세계를 장악하자 시스템은 혼란에 빠지고 개인은 위기감에 사로잡혔다. 지구상의 모든 이들이 속절없는 죽음, 이기심과 분노, 절망과 배척, 슬픔과 무기력을 체험하고 또 목격했다. 일회용 마스크와 화장실 휴지를 두고 이웃과 싸우던 때가 있었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곁에서 지켜볼 수조차 없던 때가 있었지만, 그런 시간을 충분히 애도할 여유는 부족했다. 이전의 세상으로 돌아가기 위해 총력을 다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바닷가의 루시』는 어쩌면 이러한 시간들에 대한 정확하고도 아름다운 애도일 것이다. 조수(潮水)처럼 우리를 슬프게 하고 떠나갔던 일들에 대한, 그럼에도 아픔 속에서 우리를 다시 일으켰던 사랑과 사람들에 대한, 가장 ‘스트라우트적’인 엘레지가, 이토록 적절한 시점에 우리 앞에 도착했다.
위기와 분열의 시대,
비통의 기억을 직면하고 나아가는
부드럽고 단단한 한걸음
소설가인 루시는 본인도 이해하기 어려운 심경의 변화로 인해 예정되어 있던 이탈리아 북투어를 돌연 취소한다. 북투어를 하기로 했던 3월이 되자 이탈리아에 바이러스가 퍼졌다는 뜻밖의 소식이 들려오지만 루시는 그 일이 뉴욕에까지 영향을 끼칠 거라는 생각은 하지 못한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 바이러스는 3월이 다 가기도 전에 전 세계로 퍼지기 시작하고, 루시의 전남편이자 친구인 윌리엄은 루시에게 함께 도시를 떠나자고 제안한다. 아직 남편 데이비드의 죽음에서 회복하지 못한 루시, 그리고 아내가 떠난 뒤 찾아온 급격한 건강 악화와 자신이 알지 못했던 이부누이의 존재로 인해 중년의 혼돈기를 겪고 있는 윌리엄은 서로를 구하기 위해 메인의 한 바닷가 마을로 향한다.
돌이켜보면 이상한 점은, 그저 내가 그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어떻게 모를 수 있었는가 하는 것이다. (24쪽)
작품은 일상적인 대화와 파편적 일화를 통해 모두가 경험했던 팬데믹 초기, 혼란의 풍경을 생생히 그려낸다. 격리와 거리두기, 마트에서의 물건 사재기, 타지역 사람들에 대한 배척, 재택근무, 백신 등…… 쉽게 익숙해질 것 같지 않던 일들에 점점 무뎌지고, 적막과 외로움은 어느새 일상이 되어가던 기억들을 이야기 속에서 발견하면 물러나 있던 감정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 스트라우트는 특유의 절묘하고 절제된 문장으로, 아직 소화되지 않은 장면들을 현재로 소환한다. 때론 또렷이 떠올리기 두려워 “묘하고 노르스름한 색깔들”로 치환되고 마는 극한의 공포와 슬픔의 순간들까지도.
또한 『바닷가의 루시』는 그때 우리 곁에 쉽게 거처를 옮길 수도 없고, 외로울 때 전화를 받아줄 누군가가 부재한, 다른 이의 도움 없이는 계단을 오를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놓치지 않고 이야기한다. 그러한 곤란과 결핍은 결코 추상적으로 드러나지 않으며, 가장 구체적인 묘사로서, 내 가족과 내 이웃에게, 길에서 나와 매일 인사하던 사람에게 일어난 일들로서 무참히 드러난다. 그렇게 스트라우트는 지난한 일이 될지라도, 우리가 고통의 기억을 직면해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한다. 함께 그 힘겨운 시간을 지나온 모든 이들에게는 분명, 그 기억에서 길어내야 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삶이라는 미지의 아름다움 속
육 피트의 거리를 넘는 일에 대하여
『바닷가의 루시』는 극히 제한된 환경에서 살아가는 두 사람에 대한 이야기지만, 소설 속엔 전작에 못지않게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루시는 자신의 작품을, 그리고 자신이 지나온 어린 시절의 가난을 온전히 이해하는 밥 버지스를 사랑하게 되고, 그의 아내인 마거릿과도 친해진다. 그들의 자동차 번호판에 “여기서 꺼져 뉴요커! 고 홈!”이라고 써붙인 것으로 의심되는 노인과 정답게 인사하는 친구가 된다. 정치적 성향이나 백신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샬린 비버와 주기적으로 만나 산책하고, 벤치에 멀찌감치 떨어져 앉아 서로의 인생사를 나눈다. 쉽게 포옹하거나 만날 수도 없는 딸들과 관계가 완전히 뒤바뀌는 변곡점을 맞이하기도 하며, 평생 알지 못했던 언니 오빠의 진심을 알게 되기도 한다. 언제나 ‘삶’ 그 자체를 온전히 예술로 승화하는 스트라우트의 소설답게, 『바닷가의 루시』에서는 삶이기에 일어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이상하고 아름답고 슬픈 만남과 헤어짐이 계속된다.
밥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나를 흘끗 보았고, “당신 말 듣고 있어요, 루시” 하고 말했다.
우리는 아름다운 작은 만이 바라보이는 벤치에, 육 피트는 되지 않았지만 거리를 두고 그는 한쪽 끝에, 나는 반대쪽 끝에 앉았다. 태양은 찬란한 노란색으로 빛났다. (115쪽)
어쩌면 이 소설을 관통하는 문장은 “알 수 없다” 그리고 “듣고 있다”일 것이다. 문장 사이의 적절한 여백과 반복, 그리고 투명할 만큼 명료한 대사들은 우리에게 삶이란 도저히 예측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방향으로 마구 흘러가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실을 남긴다. 세번째 부인에게 막 버림받은 전남편과 바닷가 집에 고립되어 함께 반 고흐의 자화상 퍼즐을 맞추게 되는 일. 그렇게 납득하기 어려운 일들이 우리 앞에 계속해서 펼쳐질 것이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