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타니 고진의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이 ‘개정 정본판’으로서 재출간되었다. 구판본의 번역을 맡아준 박유하 교수가 번역을 다시 한 이 책은 종래의 것과 비교할 때 완전히 새로운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저자는 자신의 주요 저작을 <정본집>으로 묶으면서 전면적으로 개정작업을 가했기 때문이다.
‘전후 일본의 명저 50’에 선정되기도 한 이 책은 이미 한국문학 연구에 가히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쳤다고 할 수 있다. 이는 한 때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이 차지하고 있던 영향력과 맞먹을 정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영향관계가 가능했던 것은 이 책이 가지고 있는 근대성 분석이 ‘일본’근대문학 연구를 넘어서 ‘근대문학’ 연구 자체에서의 보편성을 획득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몇 년 전 가라타니 고진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발표함으로써 문학판에 커다란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그런데 우리가 가라타니의 문제적 선언으로 인해 얻은 수확 중 하나는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을 다시 볼 수밖에 없도록 이끈다는 점이다. 저자의 말처럼 기원이 보이는 것은 종언에 이르렀을 때라고 했을 때,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는 확실히 ‘종언’의 그림자가 담겨있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을 단순히 ‘종언’을 예견한 책으로만 봐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어쩌면 진짜 문제는 ‘기원’도 ‘종언’도 아니기 때문이다.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작업을 물음의 형태로 요약하자면 “근대문학이 어떻게 해서 과잉된 평가를 받게 되었는가?” 또는 “근대문학은 어떻게 ‘근대문학 이전의 문학’을 배제해갔는가?” 라는 것이다. 여기서 ‘어떻게’를 작동시키는 요소(즉 반복강박)를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고 하겠다.
이 책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분석대상이 뜻밖에도 근대문학사 안에서도 매우 제한된 영역(즉 메이지 20년대 문학)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왜 그는 ‘새삼스럽게’ 메이지문학, 그것도 20년대 문학에 대해 생각했던 것일까?” 즉 “집필 동기는 무엇이었을까?” 라는 의문에 도달한다. 이에 대해 가라타니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내가 의식했던 문제 중의 하나는 이런 것이었다. 당시는 1960년대 이후의 급진적인 정치운동이 좌절되고, 그 결과 사람들이 <문학>으로 향하는 현상이 생기고 있었다. 아니면 <내면>으로 향하는 일을 통해 모든 공동 환상으로부터 <자립>하는 일이 가능한 것처럼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한 현상이 실은 진보적 포즈를 취한 보수주의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은 나중에 증명된 바 있다. 나는 그 경향에 부정적이었지만 단순히 <정치>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그것을 부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좀더 근본적인 비판이 필요했다. 당시 내가 알게 된 것은 그런 현상이 메이지 20년대 때부터 되풀이되어 왔다는 사실이었다. -한국어판 서문에서
가라타니가 말하는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근대문학의 ‘소멸’이라기보다는 ‘완성’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근거가 되는 지점이다. 이 되풀이는 식으로 번갈아가면서 헤게모니를 잡아가는 반복적 과정이다. 그렇다면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바로 이런 반복의 정지(완성)를 뜻하는 것이라고 하겠다. 즉, 근대문학의 종언은 근대문학의 반복강박이 사라지는 지점, 즉 근대문학이 치유되는 막다른 지점에 꽂힌 이정표인 것이다. 바로 이 지점, 막다른 종언에 이르러 그 기원을 되돌아보며 암중모색을 해보는 것의 의미는 결코 간과할 수 없는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