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우주’인 정신은 생각하기를 멈추고, 모든 것이 존재하기를 그만둘 걸세.”
“그건 내가 상관할 일이 아니오, 영광. 별들은 타오르고 떨어지지. 사람들은 살고 죽고. 언젠가는 ‘영원’조차 끝에 이르게 되지. 그동안 나에게는 책임이 있소.”
“자네가 상관할 일이 아니라 했나, 꿈의 왕? 그럴지도 모르지. 자네의 책임이 아닐지 몰라.”
“그러나 자네 잘못이라네.”
그 모든 이야기 이전의 서곡
영원 일족의 꿈, ‘꿈의 왕’ 모르페우스. 거대한 ≪샌드맨≫ 서사시의 주인공인 그는 본편 이야기가 시작될 때 긴 잠에 빠진 상태였다. 한껏 쇠약해진 모습으로, 머나먼 은하계에서 돌아오던 길에 잡혔다는 모호한 설명만 남긴 채 말이다. 모르페우스가 깨어난 후부터 이야기가 진행되었으니, 그 이전의 일들은 지금까지 누구도 알 수 없이 가려져 있었다. 그에게 과연 어떤 일이 일어났던 것일까?
태초 이전에 ‘밤’이 있었다. 경계가 없고 끝도 없는 밤. 태초에 ‘시간’이 있었다. 그 안에서 만물이 생성하고 물질이 존재할 수 있었다. 그리하여 우주가 가능해졌다. 그 ‘우주’가 곧 끝나려 한다. 신의 임재인 ‘영광’에 따르면, 작은 세포 하나가 오류를 일으켜 몸 전체에 암이 퍼지듯 4천억 개가 넘는 은하계에서 단 하나의 별이 미쳤기 때문. 때는 1915년, 미쳐 버린 별의 광기가 암처럼 퍼지고 있었다. 이를 막을 수 있는 존재가 있을까? 아니, 막아야 하는 책임은 과연 누구에게 있을까? ‘오래전 한 아이가 살고, 한 세계가 죽은’ 데 관여했던 모르페우스. 우주를 구하기 위해서가 아닌 스스로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그가 나선다. 종말을 향해 가는 우주에서 ‘희망’을 찾기 위해….
만드는 데 20년이 걸린 프리퀄
20세기 그래픽 노블을 대표하는 작품인 ≪샌드맨≫이 처음 세상에 나온 것은 1989년. 그 후 7년에 걸친 연재가 완결될 무렵에는 이미 고전으로 추앙받고 있었다. 전 세계의 온갖 신화와 상징, 기담을 한데 끌어 모아 전에 없던 환상적인 서사시를 그려 낸 닐 게이먼에게 숙제가 있었다면 단 하나. 바로 ≪샌드맨≫의 앞부분 이야기를 채우는 일이었다. 그리고 연재를 마친 1996년에서 20년이 지난 지금, 비로소 ≪샌드맨: 서곡≫이 완성됐다. ≪샌드맨≫에 친숙한 독자라 해도 “이 책을 읽고 나면 그 친숙했던 장면들을 다른 눈으로 보게 되기를 희망한다.”는 작가 닐 게이먼의 말처럼, ≪샌드맨: 서곡≫은 지금까지 모든 독자들에게 의문으로 남았던 부분을 그 어느 때보다 아름답게 풀어낸다. 물론 답보다 더 많은 의문을 일으킬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 역시 닐 게이먼에 따르면 “샌드맨의 본질”일 테다.
흥미로운 이야기에 더해 디럭스 에디션인 ≪샌드맨: 서곡≫에는 풍성한 부록이 가득하다. 그중 백미는 담당 편집자 셸리 본드의 진행으로 이뤄진 인터뷰. 닐 게이먼과 J.H. 윌리엄스 3세, 데이브 스튜어트가 직접 밝힌 그들의 작업 방식과 인생철학은 그야말로 보물과 같은 자료이며, 세계적인 레터러 토드 클라인이 말하는 레터링 작업 설명은 현업 교과서로 써도 될 만큼 탁월하다. 거인의 어깨에 올라 세상을 보는 마음으로, 거장들의 업무 방식과 속마음, 그리고 ≪샌드맨≫ 서사시의 찬란한 비밀을 감상할 때가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