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소설 속 주인공이 현실에서 살아 움직이기 시작했다! 작품 속 등장인물인 나는 작가 페터 빅셀 자신이다. 나는 여섯 살 난 아들 마티아스, 아내와 함께 다락층에 세 들어 산다. 토마토 색으로 칠해진 우중충한 벽, 수도관은 새고 보일러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 이 낡아빠진 집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나는 책상 앞에 앉아 소설을 구상 중이다. 그는 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그도 다락방에 세 들어 산다. 나는 그에게 키닝어라는 이름을 주고, 고향 빈에 엘프리데라는 애인을 만들어 주었다. 이웃도 여럿 만들어주었다. 번듯한 직업과 취미까지 만들어주었더니 나의 머릿속에서, 나와 함께 살던, 내 뜻대로 움직이던 키닝어는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점점 실제로 존재하게 된다. 점점 자기 의지대로 움직이는 존재가 된다. 여권을 만들어 여행을 하고, 치과에 가고, 심지어 허름한 집에 대해 불평까지 늘어놓는다. 키닝어는 캐롤이라는 영국 여자를 만난다. 고향에 남겨진 엘프리데에게는 뭐라고 할까. 잘 모르겠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키닝어가 사라졌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는 키닝어만이 알고 있는데. 나는 이야기를 계속 진행시키기 위해 키닝어를 찾아 나서야 한다. 현실에 키닝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이라니! 하지만 주인공 키닝어 없이도 말썽 많은 집과 이웃들의 이야기는 계절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계속된다. 이야기 속에서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라도 이야기는 계속되어야 하는 것이다. 페터 빅셀은 말한다. “내 생각에……” “문학의 의의란 내용이 전달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고 ‘이야기하기’를 계속 해나가는 데 있다. 문학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야기들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인간이란 자기 자신의 삶을 스스로에게 이야기하기 위해 이야기의 모델들을 필요로 한다.” 인간은 이야기하는 존재인 동시에 이야기되는 존재이다. 인간은 누군가에 의해 이야기되는 순간, 비로소 인간적으로 존재함을 누리게 된다. 키닝어가 캐롤을 만났다면 그것은 이야기이다. 키닝어가 집을 나갔다면 그것은 이야기기다. 그런 의미에서 이야기를 간직한 키닝어는 현실에 존재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키닝어는 도대체 누구일까. 해답은 마지막 페이지 너머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계절들은 페터 빅셀의 유일한 장편소설로 고도로 정제되고 압축된 일상의 언어로 현대인의 고독과 단절을 언어적 유희로 표현한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소설, 즉 모든 것이 완성되어 결말이 맺어진 이야기를 접해왔던 독자라면 이 작품이 다소 황당무계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소설 전개의 파괴를 노리는 이른바 ‘앙티로망’이기 때문이다. 페터 빅셀은 계절들에서 현재진행형의, 즉 쓰고 있는 중의 소설을 쓴다. 발간 당시 현실과 작가가 만들어낸 허구 사이의 미묘한 겹침을 다루어 평론가들에게 전혀 새로운 형식의 문제작이라는 찬사를 받은 바 있다. 책을 펼치는 순간, 집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키닝어를 찾아 헤매는 페터 빅셀의 기묘한 소설 놀이가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