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이 책은 조선 후기의 여성 문사이자 학자인 김호연재ㆍ임윤지당ㆍ강정일당ㆍ이빙허각ㆍ이사주당ㆍ김금원ㆍ김경춘 등에 관한 개별적이면서도 통합적인, 그리고 사적인 접근을 통해 그들이 이룩한 풍성한 지적 성과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통찰을 보여준 역저이다. 여성에게는 체계적인 교육이 허용되지 않아 지성을 형성할 만한 지적 기반이 취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모두 자신들이 당면해 있던 그 시대의 문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글로 보여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여성 지성인이었다.
여성 지성사는 기본적으로 여성 담론의 역사이지만 그 대상은 수양ㆍ정치ㆍ예론ㆍ이학ㆍ고전ㆍ가정ㆍ출산ㆍ유람ㆍ견문ㆍ문학에 관한 것으로 다양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 지성들의 사유와 의식은 ‘여성’이라는 화두에 의해 내적 통일성을 보여주면서 17세기 이후 18, 19세기까지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었는데, 가장 주목되는 것은 그들이 출산과 육아를 포함하여 여성에게 부여되었던 각종 가사 노동까지도 그들만이 소유한 거대한 자산으로 만들고 있었다는 점이다. 여성이 단순히 담론의 ‘대상’에서 ‘주체’가 됨으로써 그들의 논의가 일상 생활에 좀더 밀착되고 구체화된 것도 여성 지성사의 특성이다.
저자는 현재 조선조 후기 지성사나 유학 사상사에 여성 학자나 문사의 자리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그들의 성과가 대부분 가문과 소속 학맥의 논의 속에 묻혀 버리거나, 아니면 그 아류로 간주되어 그들의 독자성이 인정되지 않아서일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이 책은 이들의 지성이 가문의 성향과의 표면적인 유사성을 넘어 어떤 독자적 시각과 주장이 보인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그들이 비공식적으로 전달받은 지식을 기계적으로 사용한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사유와 일상의 경험에 의해 새롭게 변형시키고 재생산했음을 보여준다. 비록 앞 사람의 논의를 계승?비판?변형?거부한 것 외에 자신의 견해를 보여준 것은 아니더라도 그들이 직면해 있었던 문제가 ‘여성’이라는 데에 인식을 공유하고 있었을 뿐 아니라 이를 개인의 문제로 국한시키지 않고, 범사회적?시대적 문제로 본 것도 공통된 시각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적어도 여성에 의한 여성 관련 담론만은 논의의 여지없이 조선 후기 지성사에 그대로 편입될 수 있다는 관점이다.
이 시기 여성 지성들은 그들 개인의 삶에서 전통과 새로운 의식 사이의 균형을 잘 지킴으로써 사대부 일반의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경전의 근본 정신을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그간 후대 유학자들의 편향된 해석에 의해 여성들에게 부과된 잘못에 문제를 제기한 것이어서 그들이 보여준 새로운 의식 역시 이를 단순히 개성 있는 몇몇 여성들의 반발이라기보다는 경전에 대한 재해석을 시도한 것이라는 적극적인 의미 부여가 요구된다. 17세기 말 삼종의 재설정에서 출발한 여성 지성사는 19세기 중반까지는 그들의 가사 노동과 함께 정서까지도 자원화시킨 변화를 보여주며 전개되어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