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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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사람도 글 한번 써보자 ‘맛있다’보다는 ‘달다, 시다, 짜다, 쓰다, 맵다’가 낫고, 그보다는 ‘달콤하다, 새콤하다, 짭쪼름하다, 쌉싸름하다, 매콤하다’가 낫다. 백 보 양보해도 ‘맛있다’는 ‘마시쩡’만 못하다. 두루뭉술하고 관념적이다. 혀의 감각과는 무관하다. 판단이며 생각이다. (...) 글쓰기는 ‘맛있다’를 지우고, 어떤 맛이 나는가를 적는 것부터 시작한다. -본문 중에서 글쓰기는 ‘맛있다’를 지우고 시작해야 한다고 말하며 ‘맛있다’는 ‘마시쩡’만 못하고 ‘재미있다’와 ‘좋다’ 또한 죽은 말이자 쓸데없는 단어라 단언하는 파격으로 시작하는 책, 『보통 사람의 글쓰기』 ‘보통 사람’이라고 본인을 소개한 저자의 당찬 패기와 ‘보통 사람’ 답지 않은 전문성이 엿보인다. 수많은 글쓰기 책이 범람하는 와중에 보통 사람을 위한 글쓰기라니 오해의 소지가 다분하다. 보통 사람을 위한 책임이 분명하다. 책을 읽으며 그 자리에서 글의 전반을 더 아름답게 고쳐나갈 수 있다. 그러나 전문가도 울고 갈 전문성을 지녔다. 보통 사람을 대변하는 책이기도 한 이유다. 비판과 조언, 안타까움과 부탁, 진지와 유머, 도전과 자학이 뒤섞여 있다. 타협만 없다. 아름다운 글쓰기의 원칙 정확히! 구체적으로! 짧게! 저자가 추구하는 보통 사람의 글쓰기란 아름다운 글쓰기다. 아름답기 위해선 몇 가지 원칙을 철저히 지킬 필요가 있다. 정확해야 하고 구체적이어야 하며 가급적 짧아야 한다. 더 이상 정확하게 쓸 수 없을 만큼 정확한 문장은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을 만큼 아름답다 말하는 저자는, 플로베르와 모파상의 말을 빌려 정확한 글의 아름다움을 주장한다. ‘한 가지 생각을 표현하는 데는 오직 한 가지 말밖에는 없다’ 글쓰기에 있어서 가장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우리가 무심코 쓰는 단어들을 지우고 구체적인 심상을 적어야 한다. 구체적으로 적고 감각적으로 드러내는 묘사는 글쓰기의 기초이며, 정확한 언어로 생각을 적는 글쓰기 자체가 곧 묘사이다. 구체적으로 글을 쓰려면 쪼개고, 부수고, 나눠라. 보통 사람도 글 한번 써보려면 묘사부터 익히자. 글은 짧을수록 좋다. 쓸데없는 말을 덜어내고 군더더기를 걷어내라. 글을 난삽하게 하는 부사어와 관형어, 문장을 망가뜨리고 무너뜨리는 최상급과 복수 표현, 고루하고 낡은 표현인 ‘-의’ ‘-적’, 한심하기 짝이 없는 피동과 이중 피동 등은 모조리 피해야 한다. 잘 쓴 문장의 대표는 신형철 평론가와 이동진 평론가의 문장이다. 저자는 이들의 글을 ‘현란하다’거나 ‘겉만 번지르르하다’고 평하는 이는 문장의 정수를 모르는 사람이라 단정하며, 미문과 명확한 문장은 충돌하는 개념이 아니라 말한다. 잘 쓴 문장은 아름다우면서도 명확하다. 또한 정확하고 구체적이고 짧다. 보통 사람이 알려주는 보통 사람의 글쓰기 전략 저자는 한 단어, 한 문장, 한 글을 쓰기 위해 두꺼운 사전 안의 수십 만 단어를 뒤지는 보통 사람이다. 그에게서 들을 수 있는 말은 글 앞에서 자신을 한없이 낮추고 한없이 고민하라는 것뿐이다. 보통 사람이 할 수 있는 건 그게 전부다. 보고, 듣고, 느끼고, 생각한 것들을 최대한 가깝게, 최대한 정확하게 쓰려고 노력하는 것뿐이다. 결국 성실하게 쓰는 것 말고는 별다른 방법이 없다. 글은 그저 쓴다고 쓰이는 게 아니다. 물론 수많은 글쓰기 전략이 있어 따라하면 되겠지만, 거기엔 영혼이 없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글의 영혼 유무는 평소에 관찰을 얼마나 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저자는 ‘당신의 글이 만족스럽지 않다면 그것은 충분히 다가가 관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라고 말한다. 생각을 달리해야 한다. ‘재미있는’ ‘흥미로운’ ‘낭만적인’ 따위의 말들로 생각이나 느낌을 부어 넣는 게 아니라, 재미있게 그리고 흥미롭게 전달하며 낭만적으로 묘사해야 하는 것이다. 글의 시작과 끝은 중요하다. 글의 시작은 개요일 것이다. 글짓기는 집 한 채를 짓는 일과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개요대로 써지는 글이란 여간해선 없다. 일반적인 글은 자료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구상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게 구상을 끝냈다면 개요는 불필요하다. 누구도 개요만으로 글을 평가하진 않는다는 사실을 명심하자. 반면 마지막은 어떤가. 글의 마지막은 퇴고일 것이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유명한 말 ‘모든 초고는 걸레다’를 굳이 빌리지 않아도 퇴고는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하다. 애당초 완성한 글, 완벽한 글이란 없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끊임없이 퇴고해야 한다는 걸 절대 잊지 말자. 하지만 퇴고할 시간을 확보할 수 없을 때가 있을 거다. 가령 시험을 볼 때. 저자는 퇴고한 글을 가지고 가라고 한다. 그것 역시 글쓰기 전략이다. 교실 밖의 글쓰기 상식 밖의 글쓰기 교실에선 상식을 가르친다. 상식은 보통 사람이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할 지식을 가리키는데 절대적이기 쉽다. ‘올바르다’ ‘그르다’를 판단하는 것과는 별개의 일일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린 교실 밖의 이야기, 상식 밖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교실에서는 절대 가르쳐주지 못하는 것, 가르쳐줄 수 없는 게 있기 마련이다. ‘말하듯 쓰자’가 문장론의 원칙처럼 되어 있다. 이 구호는 말과 글이 너무나 달랐던 한 세기 전에 생겨났기에 말과 글이 너무나 같아 고민인 지금 세대가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된다. 말은 말이고, 글은 글이다. 우리가 할 일은 말을 ‘말답게’ 하고, 글을 ‘글답게’ 쓰는 일이다. 명심하자. 글쓰기를 예술로 아는 경우가 다분하다. 글쓰기를 멀리하고 멀리할 수밖에 없게 되기 일쑤다. 저자는 글쓰기가 기술이라고 단언한다. 그저 한 단어를 적고, 사전을 검색하고, 보다 정확한 말이 없는지 찾아보고, 고치고, 읽고, 다시 단어를 찾는 일을 반복할 뿐이다. 노동인 것이다. 여기에는 재능이 아니라 성실함이 필요하다. 누구나 좋은 글을 쓸 수 있지 않을까? 글쓰기 훈련에는 오로지 글쓰기만 있을 뿐이다. 하루에 문장 한 줄 쓰지 않으면서 작문 이론을 배우거나 책을 읽는 걸로 글쓰기 훈련을 했다고 하는데, 완전한 착각이다. 글을 쓰지 않는 시간은 간접적이고 암시적이다. 직접적으로 글쓰기를 훈련하는 유일한 방법은 일정한 양을 정기적으로 쓰는 거다. 이 책을 읽고 있는 당신, 엄밀히 말해서 글쓰기 훈련을 하고 있는 게 아니다. 이 책을 읽고 영감을 얻어 글쓰기에 매진할 때 비로소 훈련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