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장애인 애인을 가졌으면서 다른 것도 가지고 싶었다. 욕심이었을까?”
장애를 가진 연인을 만나 사랑하고 헤어졌던 시간과 삶에 새겨진 요철
끝 모르고 이어지는, 자책과 화해로 이루어진 끝말잇기와 돌림노래
장애문화예술연구소 ‘짓’에서 활동했고 일라이 클레어의 《눈부시게 불완전한》을 우리말로 번역한 하은빈 작가의 첫 책이자, 장애를 가진 연인과 함께하다 헤어진 후 장애 담론의 언저리를 서성이게 된 개인적 경험이 담긴 책이다. 또한 장애를 가진 몸, 복잡다단하고 맥락이 뒤엉킨 곤란을 겪는 몸과 함께하는 삶으로 독자를 데려가고, 우리가 아직 가닿지 못한 새로운 돌봄과 삶이 있는 가능성의 세계를 상상하게 만들 이야기이기도 하다.
저자 ‘은빈’과 ‘우’는 대학 시절 만난 평범한 연인이다. 하지만 우가 근육병을 가진 장애인이고, 은빈이 비장애인이라는 사실 때문에 그들의 관계는 세상으로부터 왜곡되고 의심받고 오독되며 방해받는다. 은빈은 전동휠체어를 탄 애인과 함께 갈 수 없는 계단들을 마주하고, ‘배리어프리’한 학교 기숙사에서 우의 가족들과 동거를 시작하고, 우의 근육병이 진행되는 것을 지켜보며 세브란스병원을 오가고, 함께 일본을 여행하다 전동휠체어가 방전돼 곤경에 빠지고, 여의도 콘래드 호텔에서 함께 ‘호캉스’를 즐기고, 근육병을 가진 다른 친구의 장례식에 참석하고, 가족과 연락을 끊고, 공연예술을 업으로 삼고, 장애인-비장애인 커플로서 다큐멘터리에 출연한다. 그러던 어느 날 은빈은 오 년간의 긴 연애를 끝내고 우와 헤어진다.
우와의 긴 연애를 끝내고 은빈은 오랜 시간 동안 헤어짐을 돌아보며 자책하고 후회한다. 자신이 정말 우와 있으며 힘들었던 것인지,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이별을 결정하게 되었는지, 이 사랑이 어디서 시작되었고 어떤 모양으로 구부러졌고 어떻게 상했으며 어디서 끝났는지를 아주 오랫동안 되짚는다. “후회야말로 가장 진실된 것”이라는 믿음으로, 단순하게 설명하기 어려운 엉킨 실타래 같은 이별의 맥락을 고민하고, 무엇이 이 사랑을 끝장나게 만들었는지를 되돌아본다.
“우와 함께하는 삶은 분명 어려운 데가 있었다.
이 문장을 쓰기까지 십 년이 걸렸다.”
수많은 제약을 가진 몸과 함께하기 위해 분투했던 시간과 공간,
계속 살아가기 위해 체득해야 했던 체념과 자조와 농담의 기술
“내가 계속 우의 곁에 있었던 것은 내가 유별히 착하거나 우가 극진히 잘해주거나 우리의 다른 무엇이 특별해서가 아니라 우와 있는 것이 웃겼기 때문”이라고 저자 은빈은 회상한다. 대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시작된 두 사람의 첫 만남은 여느 연인들과 마찬가지로 귀엽고 풋풋했다. 하지만 우와 함께하며 은빈은 장애를 가진 몸과 살아간다는 것은 끊임없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으며 분투해야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전동휠체어를 타고 들어갈 수 있는 장소가 드물어 데이트는커녕 밥도 마음대로 먹지 못했고, 집 밖에서는 화장실도 제대로 갈 수가 없었다.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집이 없어 졸업을 유예하며 학교 기숙사에서 우의 가족들과 함께 살아야 했다. 좋은 대학을 다녔지만 교환학생이나 해외여행을 가는 일은 요원했고, 공기업에 합격하고도 연수를 받으러 고속버스에 타지 못했다. 비장애인에게는 평범하고 손쉬운 일도 장애인에게는 매번 싸우고 애쓰고 타협하고 포기해야 하는 일이었다. 은빈이 우와 함께하며 겪은 일화들은 장애를 가진 몸이 일상 속에서 불쑥 마주하는 차별과 배제를, 구체적인 미래를 예상하거나 계획할 수 없는 임시방편의 삶을 현실적으로 보여준다. 또한 저자는 연인이 받은 치료와 수술이 끼친 부작용을 지켜보며 장애를 가진 몸의 건강과 기능을 위한다는 명목 아래 가해지는 의료와 치료의 한계점도 짚는다.
“포기는 우리가 불가해한 일상을 살아가는 가장 유용한 방식이었고, 체념은 우리가 살아남기 위해 가장 먼저 익혀야 했던 기술이었다”고 은빈은 돌이킨다. 하지만 우를 사랑하게 된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우는 척박한 일상을 살아내기 위해 나쁜 일을 빠르게 잊어버리는 법을 익혔으며, 모든 것에서 농담을 발명해냈다. 은빈은 바로 그런 우의 모습이 늘 자신을 살려냈으며, 그 삶의 기술을 무척이나 배우고 싶었다고 회상한다.
나 자신으로 살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야 했다면,
정확히 어디서부터 돌이키고 후회해야 하는 것일까?
하지만 주변의 친구들이 점차 안정적인 생활을 꾸려갈수록, 우와 함께하는 미래가 불투명해질수록 은빈은 무력과 비관을 느낀다. 주변의 근육병을 가진 친구와 지인이 사고로 의식불명에 빠지거나 죽는 일들을 마주하며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은빈은 우가 자립생활을 할 수 있는 한 칸의 공간을, 삶의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거나 도모할 수 있는 약간의 시간을 바랐지만 당시에는 그 무엇도 이루어질 것 같지 않았다.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공연예술인으로서 살기를 바라게 되면서, 우와 함께 출연한 다큐멘터리가 그들이 원치 않았던 방식으로 재현되면서 둘의 관계는 삐걱거린다. 그리고 은빈은 어느 날 돌연 갑작스러운 이별을 택한다.
장애를 가진 연인과 살아가는 일은 분명 어려운 일이었고 헌신을 요구했다. 또한 주변인들이 점점 더 미래로 나아가는 동안 우와 은빈은 이동이나 배변, 거주와 생존 등의 기본적인 문제를 두고 차별적인 세상과 불투명한 미래 앞에서 씨름해야만 했다. 그러나 은빈은 여전히 우와 함께한 시간이 자신이 가져본 것 중 가장 좋은 것이며, 우가 지닌 연약하고 우스운 면모를 가장 사랑했다고 느낀다. 그리고 자신이 우를 떠나기 위해 자기의 본질적이고 소중한 무언가를 내다버렸다고 믿는다. 이 모순 속을 오가며, 은빈은 왜 그런 일이 벌어졌고 어떻게 하면 그러지 않을 수 있었을지 오랫동안 고민하며 방황한다.
누군가를 남겨두고 떠난 후 영원히 뒤를 돌아보며
삶을 ‘삶’이라고 규정했던 울타리들을 철회하고 확장하기까지
‘불완전한’ 몸과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가능성을 상상하다
은빈은 우와 함께했던 긴 시간을 되짚으며, “실패할 기회가 좀 더 있었더라면 좋았겠다”고 회상한다. “고통보다 즐거움을, 당위보다 사랑을 환기할 수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말한다. 긴 시간이 지나고 돌아보니 과거의 자신이 우와 함께하기 위해 바랐던 것들이 허황되거나 불가능한 일도 아니었으며, 우의 몸과 생활이 어떤 환경과 지대에 도착했더라도 그 삶은 온전한 삶이었을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정확히 자책하고 싶어서, 자신과 화해하고 싶어서, 이 사랑의 끝을 이해하고 살아가기 위해서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는 가장 평범하고 순진무구한 사랑과 장애를 둘러싼 차별적인 현실 사이를 오가며 미래를 상상해보려 애썼던 연애담이자, 누군가를 남겨두고 떠나며 영원히 뒤를 돌아보고 마는 오르페우스의 실패담이다.
장애를 바라보는 사회와 의료 체계의 치유와 회복 이데올로기를 다룬, 일라이 클레어의 《눈부시게 불완전한》을 번역하기도 한 저자 하은빈은 우와 함께한 시간과 경험으로 장애를 둘러싼 담론의 언저리를 줄곧 서성이고 있다. 사랑이 과거의 자신을 세상의 저변으로 떠다밀었다고 말하면서도, 바로 그 사랑이 자신을 살려주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이 책은 개인적인 경험이 담긴 에세이의 형식을 띠고 있지만, 장애와 질병을 포함해 빈곤이나 퀴어 등 소수자성을 지닌 몸과 관계 맺고 살아가기 위한 이야기로 읽히기도 한다. ‘불완전한’ 몸으로 곤란 없이 살아가고 관계 맺기에는 여전히 필연적 실패가 산재해 있는 세상에서, 이 이야기는 우리를 가보지 못한 돌봄과 포용이 있는 가능성의 세계로 데려가고 새로운 미래를 상상할 수 있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