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근대사 산책 1 - 천주교 박해에서 갑신정변까지
머리말 자위와 자학을 넘어서
근대사에 임하는 우리의 자세|전문화?세분화에서 종합화?총체화로|역사의 현재화를 위하여|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역사 서술 시각의 문제|도식주의를 넘어서| 식민사관과 안티 식민사관을 넘어서|역사의 명암(明暗)을 보자
제1장 천주교 박해
01 동방의 조상 숭배는 우상숭배다
장례문화와 천주교문화의 충돌|1785년 천주교를 사교(邪敎)로 규정하다|1789년 프랑스혁명|1791년 진산사건|문체반정 논쟁
02 당파싸움으로 증폭된 신유?기해박해
주문모?강완숙의 활약|신유박해와 오가작통법|동정녀 신드롬과 도모지 사형|황사영 백서 사건|신유박해가 식민지화 원인의 시작|부정부패와 1811년 홍경래의 난|개신교 선교사 귀츨라프의 충청도 방문|왕만 바뀌면 재개되는 천주교 박해
03 이양선의 출몰과 여항문화
아편전쟁과 태평천국의 난|1854년 일본의 개항|이양선은 충격과 공포의 대상|시계와 피아노|한양 중인계급의 여항문화|1860년 북경 함락에 대한 낙관주의
제2장 농민항쟁의 폭발
01 삼정문란으로 수탈당하는 백성
전정?군정?환정의 문란|농민의 간도?연해주 이주|민란상사(民亂常事)의 시대
02 고종 즉위, 대원군 등장
세도정치가 만든 어린 임금들|비변사 개혁과 서원 철폐|경복궁 중건의 명암|사치 금지령과 호포법
03 동학 창시자 최제우 처형
1860년 4월 5일 동학 창시|동학의 극단적 정신주의|조선 정부의 동학 탄압|유생들의 조직적 동학배척운동
제3장 대원군의 척화투쟁
01 병인양요를 불러온 병인박해
프랑스로 러시아를 막는 이이제이(以夷制夷)|대원군의 결백 콤플렉스|여성 순교자가 더 많은 이유|조선에서 22년을 지낸 다블뤼의 변화
02 제너럴셔먼호 사건
제너럴셔먼호는 무장 해적선|영국인 선교사 토머스|박규수의 활약|김일성 증조가 셔먼호 격침을 지휘했나?
03 병인박해를 악화시킨 병인양요
서울을 공포로 몰아넣은 50여 일|천주교도 8000여 명을 죽인 학살극|불안과 공포로 인한 자신감의 상실|돌아오지 않는 외규장각 도서
04 보부상의 정치조직화
군사력의 무능을 보완한 보부상|보부상의 정보 수집?전파 기능|지방장시의 커뮤니케이션 기능
05 오페르트의 남연군묘 도굴 사건
통상과 신앙의 자유를 얻기 위한 만행|배외감정의 격화|오페르트의 <금단의 나라 조선>
06 조선과 미국이 충돌한 신미양요
1871년 이필제의 봉기|아시아에서 성조기를 최초로 게양한 전투|포와 총 대 칼과 창의 대결|박규수의 ‘예의지방’ 비판|신미양요는 우발적 사건?|어재연의 수자기(帥字旗)를 돌려다오
제4장 강요된 개항, 근대의 시작
01 대원군 퇴진과 의자 뺏기 놀이
최익현의 탄핵소|최익현?이항로를 어떻게 볼 것인가?|호포법과 사색당쟁의 영향|고종의 생각이 결정적 이유|한국의 권력 탐욕 문화|공조판서 평균 재임기간 52일
02 일본이 조작한 운양호 사건
1873년 일본의 정한론 번성 이유|한일 국교 교착의 책임|운양호 사건의 전말|조작을 밝힌 일본측 보고서
03 조선을 강제 개항시킨 병자수호조약
페리함대의 일본판(日本版)|조선 사대부의 통상에 대한 경멸|최익현과 김인승|1876년은 근대의 시발점
04 수신사 파견과 개항 이후의 풍경
최초의 수신사 파견은 실패|일본인들의 사기적 통상|옥양목 열풍과 비누
05 1870년대의 생활문화
천연두와 종두법 실시|수십만 명의 생명을 앗아간 콜레라|신재효의 판소리|조선인은 착한 미개인?|양반의 백성 착취
제5장 개화파의 등장
01 박규수의 개화파 육성
개화사상의 3비조(鼻祖)|김옥균과 중화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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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현대사 산책>시리즈와 다양한 사회비평으로 널리 알려진 강준만 전북대학교 신문방송학과 교수의, 한국 근대사 산책 시리즈. 크게 개화기편과 일제강점기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 개화기편을 다룬 5권이 먼저 출간되었다. '개화기편'은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며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대를 종합하고 있는데, 전문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당대 신문기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료를 망라하여 지나간 역사의 파편들을 큰 그림으로 종합, 현재화하면서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메타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전문화, 세분화되어 있는 한국의 근대사를 종합화, 총체화하면서 한국 근대의 큰 줄기와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진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논쟁과 논란을 충실히 소개하고 있다. 다른 저작들이 그랬듯 지은이의 탁월한 자료편집 능력과 그에 대한 견해가 돋보이는 역사 시리즈다.
저자/역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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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목차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자위’와 ‘자학’을 넘어선 강준만의 역사 읽기
:: 한국 근대사의 생생한 몽타주!
<한국 근대사 산책>은 정치와 경제뿐 아니라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며 개화기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시대를 종합하고 있다. 아울러 전문 학자들의 논문은 물론 당대 신문기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자료를 망라하여 지나간 역사의 파편들을 큰 그림으로 종합, 현재화하면서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라는 이해를 바탕으로 ‘메타 역사’ 서술을 시도하고 있다. 근대 한국의 풍경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을 편견 없이 보여줌으로써 ‘교과서’가 지니는 경직성에서 벗어나 한국 근대사를 생동감 넘치게 몽타주할 수 있게 한다.
:: 생각하는 역사(읽을거리1 참조)
한국언론사?한국문학사?한국철학사 등 각 분야의 역사는 그 분야에 관계된 역사에 대해서만, 즉 언론?문학?철학에 대해서만 말한다. 물론 각 분야와 관계된 시대적 배경에 대해 최소한의 설명은 들어가지만 역사의 큰 줄기와, 각 분야의 유기적인 관계를 조망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게다가 그간 나온 책들은 너무 간결하게 압축돼 있거나 특정 주제만을 다룬 전문서들 뿐이었다. <한국 근대사 산책>은 전문화?세분화되어 있는 한국의 근대사를 종합화?총체화하면서 한국 근대의 큰 줄기와 장면들을 유기적으로 결합하고, ‘진실’을 중심으로 벌어지는 논쟁과 논란을 충실히 소개하여 어떤 주장이나 편견에서 자유롭게 함으로써 ‘생각하는 역사’를 전개한다.
:: <한국 근대사 산책>의 특징(읽을거리1 참조)
나이스비트가 <메가트렌드>로 유명해지자 사람들은 그에게 “나는 당신이 책에서 말한 것들을 대부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그 모든 조각들을 한데 모아 정리해주었지요”라고 말하곤 했다. 그러나 나이스비트는 <마인드 세트>에서 그런 평가에 대해 “‘익은 과일 따기’는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최고의 찬사다”라면서 “문제는 무엇을 따서 어디에 놓을까 하는 것이다”라고 여유를 보였다.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을 연관 지어 하나의 커다란 그림으로 엮어내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한국 근대사 산책>의 첫 번째 특징 역시 바로 이러한 ‘종합’이다.
두 번째 특징은 ‘역사의 현재화’다. 모든 역사가 다 그렇지만 특히 개화기는 현재진행형 이야기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개화기 이전은 너무 멀고 개화기 이후는 너무 가깝다는 이유도 있겠지만 이 시절 조선은 열강들의 각축전의 와중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했다는 점이 오늘의 상황과 비슷하다고 보기 때문에 지식인들은 주로 개화기 사건을 거론하면서 오늘을 논하고 있다. <한국 근대사 산책>은 현재의 이야기와 역사적 사건을 연계시켜 풀어 쓰는 새로운 기술방식을 시도했다. 과거와 현재의 생생한 커뮤니케이션을 위해 책과 논문은 물론 신문기사?칼럼 등을 광범위하게 이용하고 있다.
세 번째 특징은 ‘언론?문화?커뮤니케이션에 큰 관심을 기울였다’는 점이다. E. H. 카는 “역사는 역사가와 사실과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지만 그 상호작용?대화의 성격과 질이 문제의 핵심이고 ‘대화’보다는 넓은 의미의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단어가 더 적합하다. 역사는 커뮤니케이션이다. 역사를 그렇게 이해할 때에 인간이 역사에 끌려 다니거나 이용당하지 않는 주체성을 조금이라도 확보할 수 있다. 기존 역사 서술은 커뮤니케이션과 과정을 소홀히 하면서 구조와 결과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거대담론의 폭력성’을 은연중 드러냈다.
네 번째 특징은 이른바 ‘메타 역사’ 서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메타 역사’란 ‘역사에 관한 역사’다. 개화기 시절의 어느 사건에 대해서건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하며 수많은 주장과 이견들이 난무한다. 당연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명쾌한 역사란 있을 수 없으며 ‘교과서’는 늘 위험하다. 특정한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종합’에 의미를 둔 이 책은 다양한 주장들을 다 보여주는 데에 주력했다. 역사는 단순명쾌할 수 없으며 매우 복잡하다. 과거의 복잡성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의 복잡성과 전혀 다를 바 없으며 현재라는 변수가 더해져 현재보다 오히려 더욱 복잡할 수밖에 없다. 복잡성은 한 차원 높은 재미를 재공한다. 매 사건마다 각기 다른 여러 전문가들의 주장을 감상하다 보면 “아, 똑같은 사안을 이렇게까지 다르게 볼 수도 있구나!” 하는 놀라움과 더불어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 이런 이해와 체험은 “역사는 외우는 과목”이라는 잘못된 생각에서 벗어나게 한다. 역사는 ‘외우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는 것’이다.
다섯 번째 특징은 ‘역사 서술의 다양한 시각을 치우침 없이 소개하면서 도식주의를 넘어서려고 했다’는 것이다. 이 책은 특정한 지향성을 갖고 있지 않다. 보수?진보 시각이 충돌을 빚으면 둘 다 균형 있게 소개하려고 했으며 개화기 역사에서 잘 나타나곤 하는 민족사적인 서술 시각도 공정하게 보려고 애를 썼다. 암울한 역사의 그늘을 거닐며 독자가 자괴감이나 패배주의에 빠지지 않을까 걱정해 특정한 시각을 강조하기보다는, 오히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렇게 성장했다는 건 우리의 저력이 무섭다는 걸 말해주는 게 아니겠는가”라고 발상의 전환을 해보길 권하는 게 옳은 일이다.
:: 늑대 떼의 출몰과 함께 시작된 개화기
개화기 역사는 가슴 한구석을 답답하게 한다. 동화식으로 이야기하자면 당시 우리나라의 처지는 사나운 늑대 떼에게 포위된 한 소년의 모습을 연상케 한다. 부모님의 말씀을 안 듣고 위험한 곳으로 간 소년의 잘못에 대해 인과응보(因果應報)라고 말하기엔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소년의 몸부림이 너무 눈물겹다. 그 소년은 나름대로 꾀를 내보기도 하지만 다 실패로 돌아가고 결국 늑대의 밥이 되고 만다.
한반도에 ‘늑대 떼’가 본격 출몰한 건 조선의 국운이 기울기 시작한 1870년대부터였다. 개화기를 언제부터 언제까지로 볼 것이냐에 대해선 학자들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바로 이 시기에서부터 1910년에 이르는 30~40년간을 개화기로 보는 시각이 유력하다.
‘늑대 떼’의 출몰과 함께 개화기가 시작되었다는 건 그들을 무조건 막아내 싸우는 것만이 능사일 수는 없었으며 그 만큼 대처 방안을 놓고 내부의 혼란과 갈등이 심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다. 그 혼란과 갈등은 크게 보아 ‘개화론’과 ‘수구론’의 대립에서 비롯되었지만 이런 이분법 자체에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
“당시의 지식인?위정자들의 사고를 개화 혹은 수구의 어느 한쪽에 끼워 넣으려는 것은 당시 조선의 정치지형, 그리고 현실정치의 역학관계 및 문맥을 이해하는 데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 이런 시각에 입각하게 되면 동요하고 있던 시대를 살았던 당대인들의 정치적 고뇌와 선택의 의미가 생동감 있게 느껴지기 어렵다. 19세기를 살았던 인물들의 사고의 경직성을 탓하면서 정작 우리 스스로가 이분법적이고 도식적인 사고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든다.”
:: ‘자위’와 ‘자학’을 넘어서는 ‘제3의 길’
‘명암(明暗)이론’은 편견과 도식?집착을 모두 넘어서는 제3의 길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명암의 양면을 다 보고 끌어안고 축복이 저주가 되고 저주가 축복이 되는 역사의 문법 위에 바로 서자는 것이다.
조선조 500년은 축복인 동시에 저주였다. 안정된 체제 유지가 축복이라면 그로 인해 축적된 내부모순이 저주다. 체제의 안정성은 국가 중심이 아니라 가문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개인의 능력보다 소속 가문이 더 중요했다. “양반사회의 출현으로 한때 국가체제의 건전한 발전을 이룩하였으며 보편적 유교문화와 전통문화의 꽃을 함께 피울 수 있었지만 이제는 정반대로 양반사회의 존재 그 자체가 국가권력을 쇠퇴시키고 개인의 창의력을 말살하며 다가올 새로운 시대를 외면하게 만들어버리고 말았던 것이다.”
개화기는 외세의 침투?침략이 이루어진 가운데 그 모순이 폭발한 시기였다. 그래서 내부개혁과 외세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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