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자신과 세상 사이에 펼쳐본 사람은 알 것이다. 시가 증언하는 진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고 모든 것은 사라진다는 그 진실이 슬프기만 하지 않다는 것을.
시로 인해 세상이 하나의 세상이 아니며, 무한히 펼쳐지는 부챗살처럼
우리가 알지 못하는 가능성으로 충만해진다는 사실을.”
_심보선 시인
진은영 시인이 고른 92편의 시와 다정한 위로의 에세이
오롯이 나를 위해 쓰다듬고 울어주고 사랑하는 시간
“밤바람을 깨워서라도 꼭 읽고 싶은 시가 있다”
『시시詩時하다』는 2011년에서 2016년에 걸쳐 진은영 시인이 한국일보에 연재한 ‘아침을 여는 시’ 가운데 92편을 골라 엮은 책이다. 저자 진은영은 한국 시에서 외국 시까지, 관록 있는 시인에서 젊은 시인까지 시인이자 철학자의 안목으로 고른 순도 높은 시들과 자신이 특별히 사랑하는 시의 목록을 담았다. 거기에 시를 읽고 풀어낸 에세이는 삶을 깊숙이 관통하는 동시에 편안하고 다정하게 일상을 위로한다. 그의 글을 읽다 보면 시를 어떻게 감상하고 해독하고 체득해 나아가는지를 정직하게 배울 수 있다.
스스로도 “이 미칠 것 같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시를 쓰지 않았을 것”이라고 고백하듯 시가 우리에게 찾아오는 순간들을 세심하게 살펴 담담히 이야기를 풀어낸다. 그래서인지 책을 읽는 동안 내 마음을 온전히 이해하는 누군가와 대화하는 장면을 상상하게 되고, 어느덧 마음이 치유되어 일상을 이어나갈 힘이 차오르는 듯하다. 파블로 네루다의 말을 빌자면 ‘시가 내게로 오는’ 순간이 있다. 어렵게 느껴지던 시가 속사정을 헤아리면서 단번에 이해되기도 하고, 같은 시라도 한 해 한 해 다르게 읽힌다. 그만큼 마음의 절실함과 닿을 때 시는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이 책은 마음이 허기지고 시가 고프고 위로가 필요할 때, 곁에 두고 언제든지 읽을 수 있는 “내 손안의 작고 깊은 위로의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에게 시가 필요한 시간, 마음에 꼭 맞는 시를 골라주는 좋은 친구가 되어줄 것이다.
‘시시’는 ‘보잘것없음’이라는 겸사에 더하여
‘여러 편의 시詩詩’라는 뜻이 숨어 있고 동시에
‘시가 필요한 시간詩時’이라 명할 수 있다
제목 ‘시시詩時’는 ‘시시한 시들’이라는 저자의 첫 시집에 수록된 시어(「대학 시절」 中)에서 비롯되었다. 시를 쓰게 하는 힘이자 시를 읽게 하는 힘이라고 읽을 수 있다. 시 읽기가 매력적인 또 하나의 이유는 되새김질할수록 삶이 더 맛있다는 걸 알려준다는 데 있다. 이 책에 추천의 글을 보내준 심보선 시인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세상엔 좋은 시가 참 많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좋은 시가 이토록 많은데 나는 그것을 왜 몰랐을까? 좋은 시는 비밀처럼 세상 곳곳에 숨어 있다. 누군가의 마음 안에, 누군가의 책장에, 심지어 이미 읽은 시집 안에도 숨어 있다. 어제는 그저 그런 시처럼 보였는데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좋은 시가 되는 시들은 또 얼마나 많은지.”
또한 “좋은 시는 좋은 독자를 만나야 비로소 그 좋음을 완성한다는 생각이 든다. 진은영 시인은 좋은 독자이다”라고 밝히며 이렇게 덧붙인다.
“좋은 독자란 누구인가? 시의 행간을 깨알처럼 작고 희미한 글씨로 채우며 시를 다시 읽고 다시 쓰는 이, 세상에 없는 거짓말 같은 삶을 동경하는 이, 마음이 간절하고 간절하여 거짓말을 진실로 뒤바꾸는 이.
좋은 독자는 또 다른 좋은 독자들을 부른다. 이것 봐, 이것 좀 보라고. 시라고 불리는 이 이상하고 놀라운 말들에 귀를 기울여봐. 그 말들을 조용히 노래하듯 읊어봐. 부르고 답하고 부르고 답하고…… 이 과정에서 가느다란 실들로 짠 시라는 이름의 성긴 옷감이 점점 촘촘해지고 넓어진다.”
진은영 시인은 “내내 생각하게 되고, 한 번 더 읽어보려고 귀퉁이를 접게 만드는 시를 같이 읽고 싶다”라고 전하며 당신의 감상을 궁금해한다. 책을 읽다 보면 세 단계의 감상을 경험하게 된다. 1단계, 시를 읽고 그대로 느껴본다. 2단계, 저자의 해설을 읽고 다시 시를 읽어본다. 3단계, 시가 더 분명하게 혹은 새롭게 각인된다.
어리둥절한 사랑 같은 시의 세계를 능숙하게 안내하는 시의 탐험가,
견뎌지지 않는 시간을 견딜 수 있게 해주는 ‘내 손안의 작고 깊은 위로의 책’!
“수수께끼란 그쪽으로 끌린다는 것 이외에는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우리가 아무것도 아니기를 요구한다.”(모리스 블랑쇼, 1907~2003) 처음 연재를 시작할 때 인터뷰에서 진은영 시인은 프랑스 작가 블랑쇼를 인용하며 단번에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는 시뿐만 아니라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뭔가 끌리고, 어리둥절한 사랑 같은 시를 많이 소개하고 싶다고 밝힌 바 있다. 그가 고른 시들은 기쁨과 슬픔이라는 감정의 파도를 때로는 잔잔하게 때로는 강렬하게 올라탄다. 그리고 그의 해설은 시가 말하고자 하는 진실에 파고들며 자신의 이야기와 결합해 좋은 에세이로 완성된다. 시를 쓴 작가의 일화를 소개하기도 하고, 시를 읽을 당시 본인의 심정을 써내려가기도 하고, 상황을 짐작하게 하면서 이야기가 풍성해진다. 또한 시의 행간과 에세이의 여백을 자연스럽게 독자 자신의 이야기로 채울 수 있도록 능숙하게 이끌어준다.
더불어 시와 에세이의 흐름을 연결해주는 손엔의 사진은 독자에게 눈과 마음이 쉬어가는 시간을 제공한다. 진은영의 『시시하다』는 견디기 힘든 날들 속에서 “우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삶을 계속해보는 게 어떻겠느냐”라고 도닥이는 위무의 손길로 다가올 것이다.
“모호하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자꾸 기억나는 시, 그런 시를 읽다 보면 삶에 대한 참을성을 기르게 되는 것 같아요. 그런 단번에 이해되지 않는 것들이 어쩌면 생의 가장 아름다운 부분일 수도 있음을 가르쳐줄 수 있지요.”(진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