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네치아의 겨울빛

조지프 브로드스키 · 에세이
15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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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는 "우리가 사랑에 이끌려 나오는 순간 눈은 얼마나 천천히 내리는지 기억해두는 것, 우리가 가까운 이에게 사랑을 상기시키는 순간 축축한 아스팔트 위로 깔린 하늘을 기억해두는 것…"이라고 정의한 러시아의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 이 책은 그가 여름의 화려함에서 저만치 물러나 있는, 겨울 안개 가득한 베네치아를 재치있고 지적이며 우아하게 그려낸 에세이다. 서른두 살에 러시아에서 추방당해 미국에 정착한 브로드스키는 그때부터 매년 겨울이면 한 달가량을 베네치아에 머물렀다. 그렇게 열일곱 번의 겨울을 베네치아에서 보내는 동안 그는 그곳의 물길과 골목길, 건축물에서 음식, 정치, 사람들에 이르기까지 도시의 면면을 살펴보고 그곳의 장려함과 아름다움을 시인의 눈으로 포착한다. 자신의 집이라고까지 불렀던 베네치아와의 인연을 담담하면서도 치밀한 문체로 풀어낸 이 에세이에서 그는 무엇보다 시간이라는 밀물이 이 도시와 주민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놀라운 시심詩心으로 반추한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브로드스키가 그 자체로 예술품이라고 한 베네치아에 관한 뛰어난 재현再現이자 결코 모방할 수 없는 초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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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저온에서 드러나는 아름다움이 ‘진짜’ 아름다움이다.” 러시아의 시인 조지프 브로드스키가 차가운 밤공기로 그린 베네치아의 초상화 조지프 브로드스키. 러시아에서 태어난 시인. 서른두 살에 조국에 의해 추방된 후 24년을 타국에서 보내며, 자신의 문학의 뿌리인 시詩는 태어나 자란 러시아어로, 산문은 새로 정착한 곳의 언어인 영어로 쓴 작가. 자의와 무관하게 두 세계에 몸담을 수밖에 없었던 사람. 미국으로 건너간 후 매년 겨울이면 베네치아에 와 머문 그는 이제 영원히 베네치아에 잠들어 있다. 32년간 살았던 러시아, 20년 넘게 살았던 미국이 아닌, 17년 동안 겨울마다 5주를 머물렀던 베네치아에, 그곳을 사랑했던 수많은 이방인과 함께. 그가 또 다른 집으로 여길 만큼 편안해했던 베네치아. 베네치아의 무엇이 그를 그토록 끌어당겼을까. 발트해에 면한 도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낸 브로드스키는 이 책에서 몇 가지 에피소드로 베네치아와의 인연을 소개한다. 그의 문학적 멘토였던 러시아의 시인 안나 아흐마토바가 일찍이 그에게 “이탈리아는 당신이 남은 평생 계속 되돌아갈 꿈이에요.”라고 한 말, 친구가 가져온 낡은 잡지에서 본 눈 덮인 산 마르코 광장의 컬러 사진, 한창 따라다녔던 아가씨가 자신의 할머니가 혁명 전 베네치아로 신혼여행을 갔다가 사 온 엽서 세트를 그에게 생일선물로 줬던 것, 어머니가 어디선가 사 온 싸구려 태피스트리에 두칼레 궁전이 그려져 있었다는 이야기, 친구와 함께 본 흑백 영화 <베니스에서의 죽음>이 특별히 맘에 들진 않았으나 주인공이 증기선의 갑판 의자에 멋지게 앉아있던 기나긴 오프닝 시퀀스는 오래도록 기억에 남았다는 등, 그리고 마침내 베네치아 여성이 등장하자 “이 도시가 어떤 식으로든 삼차원의 가장자리로 비틀거리며 들어와 서서히 초점이 잡히는 것 같았다”는 이야기까지. 베네치아를 좋아했던 예술가들 가운데 괴테, 바이런, 헨리 제임스, 헤밍웨이 등 유독 문학 작가들이 많았던 것을 보면 시인 브로드스키가 베네치아를 좋아한 것 또한 그리 특별한 일은 아니겠으나, 17년 동안 꼬박 그것도 겨울에만 이 도시를 찾은 작가는 브로드스키가 유일한 듯하고, 삶이 다른 계절에 비해 더 생생해 보이는 겨울 베네치아를 50가지의 개인적인 주제들을 통해 기록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독보적이다. 브로드스키에 관한 여러 자료를 참고해보면, 시인은 추방 또는 유형을 정치적인 박해라는 인식을 넘어 또 하나의 공간의 이동으로 받아들인 듯도 하다. 위키피디아에 의하면 그는 5년의 유형을 선고받고 옮겨간 아르헹겔스크에서는 오히려 시작詩作에 전념할 수 있었고, 겨울 베네치아에서는 돌이 깔린 좁은 골목길을 걷고 혼자서 동네의 작은 트라토리아에서 식사를 하고 쓰던 책을 마무리하고 그의 말대로 ‘운이 허락한다면’ 시를 쓰며 지냈으니, 그곳이 어디든 그에게는 일하는 곳이자 제2의 집이었을 법하다. 그의 글에서는 때때로 고독한 개인의 사색이 짙게 드러나지만 그렇다고 우울해 보이지는 않는, 오히려 자발적 고독을 선택한 듯한 시인의 자의식이 느껴진다. 그 어느 곳에서건 굳이 이방인이라기보다는 마치 ‘떠났다가 다시 돌아올 사람’처럼, 오히려 고독을 두고 떠나는 것이 아쉽다는 듯이. “표면은 종종 속에 든 내용물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베네치아는 물의 도시다. 베네치아만灣 안쪽의 석호潟湖 위에 흩어져 있는 118개의 섬이 약 400개의 다리로 이어져 있는 곳. 여행자가 무심코 골목 끝까지 가면 막다른 길 대신 바다를 만나게 되는 곳. 그곳에서 그는 물이 만들어내는 수천 가지의 이미지를 지켜보고, 물이 이 도시의 건물에 그리는 무늬를 응시한다. 거리를 걷다가 본 사람들, 관광객들의 충동 구매 행태를 유심히 관찰하고, 그것을 부추기는 것이 사람을 실루엣으로 만들어버리는 이 도시의 경치와 멀리 보이는 풍경들임을 간파하고, 도시의 움직임을 이리저리 유추하다가 이 도시의 영광과 부의 역사를 떠올리고, 온 도시에 울려 퍼지는 종소리에 잠이 깬 일요일 아침이면 창문을 통해 밀려오는 기도소리와 실안개에서 약간의 희망을 느끼고, 해질녘이면 베네치아는 밀월여행지보다 이혼을 위해 와야 하는 도시임을 다시 한번 깨닫는다. 점점 희미해지는 황홀감을 느낄 배경으로 이만한 데가 없기에. 시종일관 조용조용한 목소리로 마치 꿈속에 있는 듯 이 도시를 환상적으로 묘사하다가도, 도시 자체가 예술품인 이 도시에 인간들이 가하려는 여러 가지 시도들에 대해서는 우려의 목소리를 높이고, 점점 가라앉는 이 도시를 위해서는 그 어떤 재생보다 온전하게 보존하는 것이 최선임을 주장한다. “구겐하임 같은 곳의 수집품과 이번 세기 들어 이곳에 일상적으로 쌓이는 그와 비슷한 물건들의 유일한 기능은 우리가 얼마나 싸구려에 자기주장만 하고 인색하고 일차원적인 물건들로 변해 가는지 보여주는 것, 우리에게 겸손함을 서서히 스며들게 하는 것이다. 율리우스가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도 않고, 보이는 것이라고는 바다뿐이어도 낮에는 천을 짜고 밤에 다 풀어버리는 페넬로페 같은 이 도시의 배경으로 다른 결과는 생각할 수가 없다.” _ 132p 영화제에 참석차 베네치아에 온 미국의 작가 수전 손택과 함께 에즈라 파운드의 연인이었던 올가 럿지를 방문하고 나오면서 “폰다멘타 데글리 인큐라빌리Fondamenta degli Incurabili(‘불치환자의 터’라는 뜻)”라는 단어를 떠올린 일화도 흥미롭다. “인간이 이루는 것들과 시간은 항상 기록되어야 할 가치가 있다.” 아름다운 베네치아에서 병의 고통과 함께 삶을 연명하느니 차라리 한 방의 죽음을 선택하겠다던 시인, 겨울 안개 자욱한 골목길을 거닐며 겨울빛 속에서 시를 쓰고 밤의 그림자 속에서 물과 시간의 아름다움을 관조한 시인. 56세에 뉴욕에서 심장마비로 타계한 후 영원히 베네치아로 돌아온 그는 열일곱 번의 겨울 베네치아에서 과연 자신의 꿈대로 살았던 것일까. “이 도시에서 장기 체류를 하거나 짧게 머물렀던 그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거의 같은 척도로 행복하기도 하고 불행하기도 했던 것 같다. 어느 쪽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이 도시에 낭만적인 목적이 있어서가 아니라 일하기 위해, 작품을 마무리 짓고, 번역하고, 운이 허락한다면 시 두 편을 쓰기 위해, 그도 아니면 그저 머무르기 위해 왔기 때문이었다면 말이다.” _ 118p 화려한 미사여구 없이, 간결한 표현으로 베네치아의 다채로운 겨울빛을, 하루에 네 번 바뀐다는 그곳의 얼굴을 짧고 강렬하게 묘사한 에세이. 존재의 의미라는 보편적인 관심사를 강력하고 사색적인 필치로 다룬 시 같기도 산문 같기도 한 책. 그런 관점에서 이 책은 매혹적이고 수수께끼 같은 베네치아를 오래 바라봐온 사람만이 그려낼 수 있는, 결코 모방할 수 없는 베네치아의 초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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