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모든 페이지가 끔찍한 스토리인 이 세계를 끝내 마저 사랑하고야 말겠다는 시인의 고백 오독과 오기를 감수하며 불손한 감각과 아름다운 언어로 매 시집마다 새롭고 유려한 세계를 보여 준 김이듬 시인의 새 시집 『표류하는 흑발』이 ‘민음의 시’ 239번째 책으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표류하는 흑발』을 통해서 도발적인 탄식으로 공동체의 폐부를 찌르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끔찍한 이 세상을 마저 사랑하려 함을 고백한다. 우리는 사랑하고 악하고 춤춘다 김이듬의 시는 다양한 인물들의 다층적인 목소리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대부분 불가피하게 사람이지만, 조금 모자라게 살아 있는 인간이다. 시인은 세계의 표면에 겨우 서 있는 존재들을 거침없고 솔직하게 호명한다. 연민이자 자애의 태도가 아닌,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환대의 제스처가 아닌 의도된 오해와 위악적인 해석으로 김이듬의 시는 인물들을 보듬고, 독자들을 사로잡는다. 김이듬은 세계의 표면에 방류된 모든 존재를 자신의 방식대로 사랑하고 있는 것이다. 자책하고 자학하면서도, 자책과 자학의 원인을 제공한 세계를 놓지 못하고, 남아 있는 사랑마저 나 쏟아 버릴 태세로 시편들은 되레 침착해진다. 보편적인 사랑이 아닌 부작용의 사랑으로, 일관되어 미끄러지는 세계의 내면 아닌, 울퉁불퉁하고 까끌까끌한 세계의 표면을 걷는데 『표류하는 흑발』은 주저함이 없다. 비틀거리는 발걸음은 경쾌한 스텝이 되고, 균형을 잡으려는 몸짓은 유연한 웨이브가 된다. 시인은, 춤을 추고 있는 것이다. 마저 이 세상을 다 사랑할 것처럼 더욱 깊어지고 넓어졌으며 그리하여 입체적이게 된 김이듬의 세계는 기어이, 공동체의 폐부로 육박해 들어온다. 우리는 1세계에서 은근한 인종차별에 시달리는 소수자였다가, 서울 한복판에서 어두운 피부의 유학생과 노동자를 대놓고 차별하는 다수자가 된다. 세월호 사건에 슬퍼하고 감응하는 인간이며 동시에 이 세상에 그럭저럭 잘 맞춰 돌아가길 원하는 인간이기도 하다.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사람이고, 악한 사람임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그것들을 모두 포용하고 포옹할 수 있을까? 김이듬이 선택한 방법은 표류하는 것들을 향한 춤이다. 세계와 삶의 배치를 바꾸는 몸짓이다. 이 춤(시)에는 다소 부작용이 있다. 사람들에게 뒤로 가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다. 기괴해 보일 수도 있고, 복잡해 보일 수도 있다. 어떤 반응이든, 김이듬이 부작용은 사랑하고 악한 독자 모두에게 모종의 작용을 불러일으킨다. 이렇게 작용/부작용이 시작된 독자의 삶은 그 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표류하는 흑발』은 독자의 감각을 바꾸는 시집이 될 것이다. 마저 이 세상을 다 사랑할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