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임산부(임신부의 오기) 먼저.’ 수도권 지하철 칸마다 눈에 띄는 두 자리가 있다. 임신부 배려석, 일명‘ 핑크 좌석’이다. 그러나 자리의 주인은 임신부가 아니다. 발밑 문구가 이를 증명한다. ‘핑크카펫, 내일의 주인공을 위한 자리입니다.’ 임신부는 자신의 육체적 고통 때문이 아니라, 배 속에 품은 진짜 주인 덕분에 그 자리에 앉을 권리를 얻은 셈이다. 2016년 말 행정자치부는 세계 최저 수준인 출산율을 높이겠다며 ‘대한민국 출산 지도’를 제작, 공개했다. 전국243개 지자체의 모든 가임 여성을 수치화한 ‘출산 지도’는 여성들의 거센 반발을 샀다. “여자는 애 낳는 기계가 아니다”, “내 자궁이 공공재인가.” 결국 행정자치부는 하루 만에 지도를 삭제했다. 핑크 좌석과 출산 지도는 우리 사회가 출산과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임신한 여성은 산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아이를 낳는 존재(産)이자 아이를 기르는 존재(母)일 뿐이다. 출산 과정과 고통, 산모의 인격과 권리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 출산은 여성의 삶에서 중요한 변곡점이다. 상상하지 못했던 고통, 그에 대한 두려움과 아이에 대한 책임감을 한꺼번에 마주해야 한다. 그러나 산모의 선택권은 없다. 의료진의 관리와 통제하에서 대부분의 산모가 수동적으로 출산을 겪는다. 진통이 아무리 심해도 의사가 올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의사가 원하는 자세로 아이를 낳는다. 생명이 달린 중대한 상황이라는 명목하에 산모의 권리는 순위 밖으로 밀려난다. 저자는 출산 과정에서 산모의 존재가 소외되는 현상에 의료 지식의 권력화가 깔려 있다고 봤다. 산모의 정서보다 의학 지식을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산모의 질문은 무시당하기 쉽다. 출산 의료의 지향점은 명확하다. 출산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차단하면서 아이를 꺼내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무엇인가? 아이의 안전이 최우선인 산모는 의료진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다. 출산 과정에서 의료진은 그렇게 우위를 차지하며, 결국 산모는 소외된다. 2016년 대한민국 출산율은 세계 최저 수준(1.17명)이다. 출산 장려 정책이 유의미한 성과를 내지 못하는 까닭은 어쩌면 단순하다. 정책 목표에만 관심을 두고, 정책의 대상 즉, 출산의 주체인 여성은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산 과정에서 절차를 안내받고 방법을 선택하는 것은 산모의 당연한 권리다. 사회가 여성을 인격체로 인식하지 않는다면, 산모에게 출산의 경험은 축복이 아니라 상처가 될 수밖에 없다. 여성은 출산 지도의 점이 아니다. 미래의 생명을 품은 도구도 아니다. 산모가 소외되지 않는 출산 정책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