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난, 질병, 구조적 폭력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
· 비용-효율성, 성장산업으로서의 의료를 파악하는 일이 가난한 사람에게 미치는 병리현상에 대한 비판!
· 국제기구와 선진국 대학 병원들의 실험장이 된 비서구 가난한 지역 사람들의 삶에 대한 생생한 보고서!
· 실용주의, 온정주의적 접근법이 아닌, 사회정의와 가난한 사람을 최우선에 둔 의료정책의 필요성에 대한 진지한 탐구!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평등이 지속되고 있다. 한국의 건강 불평등을 다룬 기사의 마지막 결론이다. 유아사망률에서, 암 발병률, 흡연율, 우울증 발병률, 자살률, 심지어 무작위적으로 발생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교통사고 사망률마저 사회경제적 약자들에게서 높게 나타난다. 전 세계적으로도 에이즈, 폐렴, 콜레라 등은 사회경제적으로 낙후한 나라에서 주로 발생한다. 게다가, 그 나라들에서조차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이와 같은 질병으로 가장 큰 고통을 받는다. 모든 사람은 죽기 위해서 태어나지만 요람에서 무덤까지 불평등은 지속된다. 이 놀랍도록 냉혹한 경험적 수치들은 무엇을 말하는가.
문제는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경험하고 있는 질병들이 대부분 현대 의료 기술을 통해 치료해 왔고, 또 치료할 수 있는 질병들이라는 점이다. 그렇다면 왜 누군가는 이런 질병과 고통으로부터 보호를 받고, 왜 누군가는 이런 질병과 고통 속에서 삶을 마감해야 하는가. 폴 파머의 '권력의 병리학 : 왜 질병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먼저 찾아오는가?'는 질병과 가난, 인권의 침해는 우연히 일어나지 않으며, 그 분포와 영향력 역시 무작위로 나타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즉, 질병과 가난, 인권의 침해는 근본적으로 권력에 의한 병리 증상으로, 누가 고통을 받고 누가 보호를 받는지를 결정하는 사회적 조건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택
저자인 폴 파머는 의사이자 인류학자라는 직업을 가진 전문가이자, 열악한 의료 현장에서 25년이 넘게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을 위해 활동해 온 활동가로, 그는 현대사회의 경제적 과학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그 발전의 산물을 같이 향유하지 못하는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 서서, 오늘날 주류를 이루고 있는 담론들의 문제점을 하나하나 분석하고 비판해 왔다.
우리는 과학과 기술이 발전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 폴 파머가 지적하듯이 우리는 역사상 처음으로 인간성을 유린하는 질병에 효율적으로 대처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과학과 세계화의 혜택은 아직까지도 이 풍요로운 세계로부터 소외되어 있는 대중들의 손에 의미 있는 생존의 기회로 주어지지 않고 있다. 바로 그 지점이 권력의 병리 현상이 나타나는 곳이다. 파머가 주장하는 바와 같이, “자신이 인도적이라고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세계화되고 과학이 발달한 이 시대에 아프고 가난하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해 성찰해 보아야만 한다.”
특히, 이 책에서 파머는 탈사회화된 의료윤리, 건강권과 사회권을 외면하는 인권 운동, 시장의 힘에 모든 결정권을 넘겨준 신자유주의, 인간의 건강권마저 성장과 이윤 추구의 도구로 사용하는 의료 민영화의 흐름들을 비판적으로 살펴보고 있다. 파머가 보기에 이런 흐름들은 의료나 복지, 인권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관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려 하기보다는, 주로 국제기구의 관료들이나 권력자들의 관점에서 비용-효율성이라는 냉혹한 논리에 기반을 둔 접근법이다. 문제는 이런 접근법은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질병을 치료하지도, 그들의 고통을 덜어 주지도, 그들의 기본적인 생존권을 보장하지도 못한다는 사실이다.
파머는 중립성, 비용 효율성에 기반을 둔 주류 의료 관행들과 정책 결정자들에 맞서 ‘가난한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접근법’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파머가 보기에 ‘가난한 사람들을 최우선으로 하는 접근법’은 질병의 역학적(疫學的)인 접근이라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본래 질병이 가난한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발생하며,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건강은 그렇지 않은 사람들보다 더 나쁜 것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들은 병원균(혹은 병을 일으키는 열악한 환경)에 더 많이 노출되거나,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아니면 이 두 가지 ‘요인’이 함께 작용해서 일찍 죽게 될 가능성이 더 크다고 할 수 있다. 이 점에서 파머는 이런 명백한 관계를 고려한다면 의학은 가난과 싸우는 사람을 위해 헌신해야 할 임무가 있다고 지적한다.
권력의 병리학
국민의 건강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할 의무는 소흘히 한 채, 기본적인 인권이라 할 건강권을 외면하고, 의료를 ‘성장 동력’으로만 생각하며, 의료 민영화를 추진하고 있는 한국 사회에 던지는 폴 파머의 목소리는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의료 관행과 의료 체계 개편 논의에 중요한 관점을 제공한다.
폴 파머는 사회에서, 그리고 세계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들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이 불편한 현실에 눈감지 말 것을 요구하며, 우리 사회가 앞으로 어느 방향으로 가야 할 것인지를 진지하게 성찰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나아가, 우리에게는 그렇게 해야만 할 의무가 있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이런 권력의 병리 현상이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풍요와 안락과 연관이 있으며, 우리가 이런 권력 병리 현상을 외면하고, 관심을 갖지 않는다면, 그것은 그 자체로 우리가 권력이 일으키는 병리 현상에 공모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건강 불평등을 조사한 한 의료인은 “만약 저소득층이 담배를 끊길 원한다면, 그들에게 삶의 희망을 주어라”라고 지적한다. 오늘날 가난과 질병, 스트레스, 인권의 침해는 모두 현실의 불평등을 만들어 내고, 권력이 만들어 내는 병리 현상이기 때문이다. 비용 효율성에 기반을 둔 의료 정책이 아닌, 가난한 사람을 최우선으로 고려하는 의료 관행, 가난과 질병, 인권침해를 야기하는 구조적 폭력에 대한 비판이야 말로 사회경제적 약자들이 처해 있는 오늘날의 고난을 해소할 수 있는 출발점일 것이다.
주요 내용 소개
권력의 병리학은 크게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부(1~4장)에서 저자는 아이티 시골, 관타나모의 난민 수용소, 멕시코의 치아파스 주, 러시아의 감옥 등의 장소에서 자신이 목격하고 경험한 사건들을 서술함으로써 사회의 구조적인 폭력이 개인의 건강과 삶에 미치는 영향을 소개한다. 저자는 피해자들과의 심도 깊은 면담을 바탕으로 각 사건을 소개할 뿐 아니라 그 사건에 영향을 미친 사회.경제적인 힘의 여러 축과, 정책 결정의 바탕이 되는 논리 체계의 문제점을 짚어 낸다.
2부(5~9장)에서는 건강과 삶에 영향을 미치는 여러 담론들에 대한 비판과 함께 대안을 제시한다. 기존의 인권 담론에서 건강권과 사회권이 홀대 받고 있는 사실, 의료 영역에 갈수록 깊이 침투하고 있는 시장 중심 풍조, ‘비용 효율성’ 중심의 의료 정책 수립 및 사회적 지위와 국가에 따라 차등을 두는 치료 지침, 가장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를 외면하고 있는 현재의 의료 윤리 담론 등이 그 대상이다.
1장 고통과 구조적 폭력에 대하여 : 세계화 시대의 사회적.경제적 권리
건강 상태에 대한 사회적인 결정 요인들은 동시에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사회적 결정 요인도 된다는 이 책의 기본 주제를 제시하면서, 대규모의 사회적 폭력이 어떤 과정을 통해 질병, 고통, 파멸로 나타나는지를 서술한다. 각종 질병의 발생은 겉으로는 무작위로 발생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회적 결정 요인에 따라 얼마든지 예견할 수 있는 현상이며, 인권침해 역시 같은 양상을 보인다.
2장 전염병과 억류 : 관타나모, 에이즈, 그리고 검역
잔혹한 군부 쿠데타를 피해 탈출한 아이티 난민 가운데 HIV 양성반응을 보인 사람들의 경험을 상세하게 기록한다. 또한 이를 같은 섬의 다른 편에 있는 쿠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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