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데어라 혼님 외 1명 · 사회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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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지금껏 알지 못했던 유대인들에 관한 이야기로, 죽은 유대인들을 즐겨 소비하는 세상의 뒤틀린 애착을 흥미롭고도 논쟁적으로 탐구한다. 홀로코스트에 대해 알수록 반유대주의가 줄어든다는 근거 없는 믿음에 구멍을 내고, 홀로코스트를 인류의 ‘보편적’ 경험으로 마케팅하는 일이 홀로코스트의 공포를 폄하하는 방식들을 밝혀낸다. 『안네의 일기』가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진짜 이유를 비평적으로 제시하며, 하얼빈, 마르크 샤갈, 한나 아렌트에 관한 전혀 새로운 관점의 이야기들을 풀어놓는다. 낡고 오래된 편견을 깨부수는 통렬한 문제 제기, 은밀하고 교묘한 차별에 저항하는 신랄한 통찰력, 누구도 얘기한 적 없는 희극적이면서 비극적인 소재를 유려하게 풀어내는 스토리텔링에 힘입어, 〈뉴욕 타임스〉 주목할 만한 책, 〈퍼블리셔스 위클리〉 올해의 책, 〈시카고 공립도서관〉 최고의 책에 선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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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 유령이 출몰하는 현재로부터 1장 모두가 (두 번째로) 좋아하는 죽은 유대인 2장 얼어붙은 유대인들 3장 죽은 미국계 유대인들 1 4장 처형된 유대인들 5장 픽션 속의 죽은 유대인들 6장 죽은 유대인들의 전설 7장 죽은 미국계 유대인들 2 8장 사람들을 구하는 일에 대하여 9장 사막의 죽은 유대인들 10장 블록버스터급 죽은 유대인들 11장 샤일록과 함께하는 통학길 12장 죽은 미국계 유대인들 3 - 페이지를 넘기며 감사의 말 해설 타자(他者)와 사자(死者), 문명에 대한 급진적 질문 정희진 참고문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 “지금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책! 사회적 약자의 죽음을 지배 문화가 어떻게 활용하는지에 대한 고전이 될 만한 작품이다.” _정희진(이화여대 초빙교수, 서평가) ★★★★★ 〈뉴욕 타임스〉〈워싱턴 포스트〉〈커커스〉〈월스트리트 저널〉찬사! 정희진 해설 수록!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면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죽었는지에 그토록 신경 쓰는 게 무슨 소용인가.” 죽은 약자들은 ‘영웅’으로 숭배하고 소비하고 이용하면서, 살아 있는 이웃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는 태도에 경종을 울린다! 『안네의 일기』는 홀로코스트 희생자를 기억하는 대표적인 상징이자 고전이다. 주인공인 안네가 살았던 ‘안네 프랑크의 집’은 해마다 100만 명이 넘는 예약 관람객이 줄을 서는 전 세계적 ‘인기 상품’이다. 저자는 이 박물관에서 일하던 한 젊은 직원이 겪은 해프닝으로 인해 충격적인 생각을 떠올린다. ‘사람들은 죽은 유대인을 사랑한다.’ 바로 이 책의 제목이다. 젊은 직원은 유대인 남자들이 쓰는 작고 동글납작한 모자인 야물커를 쓰려고 했다. 고용주는 그것을 야구모자 속에 보이지 않게 쓰라고 종용했다. 박물관은 ‘중립성’을 지켜야 하는데 야물커를 쓴 살아 있는 유대인은 박물관의 ‘독립적 위치’를 ‘방해’할 수 있다면서. 박물관 측은 “넉 달 동안의 심사숙고” 끝에 마침내 견해를 굽혔다. ‘안네 프랑크의 집’에서 일하는 유대인에게 유대인의 정체성을 내비쳐선 안 된다고 종용하는 것, 이것은 전 세계적으로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수많은 편견과 차별의 생생한 증거이다. 죽은 유대인은 기리고 보전하고 사랑하면서 살아 있는 유대인의 삶은 존중하지 않는 것, 죽은 약자들은 ‘영웅’으로 숭배하고 소비하고 이용하면서 살아 있는 이웃의 고통에는 관심이 없는 태도, 이것이 우리가 눈 감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 사회는 예외일까? 차별당하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성소수자에 대한 영웅시, 성폭력 피해자에게 요구하는 피해자다움, 살아 있을 때는 계속 사이버불링을 당하다가 자살한 뒤 운동의 진영 싸움에 ‘피해자’로 이용되는 성매매 여성의 사례 등과 모두 연결되는 이야기는 아닐지. 『안네의 일기』에서 『베니스의 상인』까지, 중국 하얼빈의 유대인 공동체에서 피츠버그 유대인 회당 참사까지. 낡고 오래된 편견을 깨부수는 통렬한 문제 제기, 은밀하고 교묘한 차별에 저항하는 신랄한 열두 편의 논픽션 이 책은 총 열두 장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대인이라는 타자를 영원히 죽음/고통 속에 박제해놓고 싶어하는 세상의 편견에 경종을 울리는 날카로운 비평적 장들이 한 축을 이루고, 유대인이나 유대문화에 관해 우리가 모르거나 잘못 알고 있는 것들을 깨우쳐주는 해설적 장들이 나머지 한 축을 이룬다. 유대인에 대한 테러가 일어날 때마다 언론에서 자신에게 ‘죽은 유대인’에 대한 이야기를 써달라는 요청을 받는 데 화가 나서 더이상 그 일을 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로 서문을 열고 있는 저자는 1장에서 『안네의 일기』가 전 세계적으로 그토록 인기를 끌었던 것은 역설적으로 안네에게 미래가 없었고(즉, 죽었고) 그 일기에 안네가 수용소에서 본, 독자들에게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학살의 참상이 들어 있지 않아 마음 편히 소비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반면 『안네의 일기』처럼 감금된 상태에서 쓰였고 죽은 뒤에야 발견되었으며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의 지옥 같은 삶을 ‘고스란히’ 기록한 잘만 그라도프스키는 우리에게 생소한 이름이라고. 그의 작품은 인기도 얻지 못했고 알려지지도 않았다고. “특별히 건조된 시체 소각실에서 제일 먼저 불이 붙는 부분은 머리카락이지만 타는 데 가장 오래 걸리는 부분은 머리다. 두 개의 작고 푸른 불꽃이 양 눈구멍에서 깜빡거린다. 이것들은 뇌와 함께 타는 두 눈이다. […] 전체 과정은 이십 분쯤 지속된다. 그리고 한 명의 인간이, 하나의 세계가, 재로 변했다. […] 5000명의 사람들이, 5000개의 세계가 불꽃에 먹혀버리는 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것이다.” (42쪽) 2장은 ‘유대교의 유산이 담긴 하얼빈의 명소들’을 방문하고 온 이야기로, 저자는 하얼빈 얼음축제에 매혹되어 그곳에 여행할 계획을 세우면서 이 명소들에도 가보게 되었다. 1896년 만주에 시베리아 횡단 철도를 건설할 때 수많은 러시아계 유대인들이 하얼빈에 이주해 도시의 기초를 건설했는데, 30년 후 러시아에서 혁명이 일어나 반유대주의 러시아인들이 들어오면서 이 유대인들은 거의 모든 재산을 몰수당한 후 살해당하거나 국외로 추방당했다. 하나의 도시를 거의 세우다시피 해놓고 빈손으로 내쫓긴 그들의 과거는 전 세계에 알려져 있지 않지만, 현재 하얼빈에는 옛 유대교 회당을 개조해 만든, 추방된 유대인들로부터 몰수한 물건들과 유대인 밀랍 인형들을 채워 넣은 박물관, 껍데기만 만들어놓고 내용은 없다시피 한 유적들이 가득하다. 자본주의 관광사업의 일환이 되어 있는 이 유적들의 공허함과, 하얼빈에서 살았던 짧은 황금시대를 그럼에도 가장 행복한 시기로 회고하는 유대인들을 대조하면서 아이러니한 어조로 역사를 서술한다. 한편, 4장 「처형된 유대인들」과 5장 「소설 속의 죽은 유대인들」, 11장 「샤일록과 함께하는 통근길」은 이디시어/히브리 문학자이자 소설가인 저자의 이력이 응축된 장이라고 할 수 있다. 4장에서는 소비에트 러시아에서 이디시어로 연극을 했던 베냐민 주스킨이라는 한 배우의 삶을 따라가며, 소비에트 연방이 그와 같은 예술가들을 처음에는 높게 대우해주다가 유대인들을 비롯한 소수민족의 정체성을 지우기 위한 목적으로 이용했고, 목적이 다한 뒤에는 처형해버렸다는 기막힌 이야기를 들려준다. 교묘한 방식으로 이루어지는 자기 민족에 대한 ‘문화 말살’에 알게 모르게 가담해버린 한 인간의 이야기가 인간의 삶에 대해, 예술에 대해 많은 여운을 남긴다. 5장은 일종의 문학 비평 챕터라고 볼 수 있는데, 한국 독자로서는 처음 알게 되는 놀라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저자는 독자로부터 받은 “조금 더 사람들의 기분을 고양시키고 즐겁게 웃을 수 있는, 인류에 봉사하는 책을 써달라”라는 항의 편지(에 대한 항의)에서부터 시작해 미국/서양/기독교 문학의 전통과 이디시어/히브리 문학을 비교, 대조한다. 전자의 독자들은 이야기를 읽을 때 자동적으로 ‘좋은 인물들이 구원을 받거나 에피파니의 순간이 있거나 인물들에게 은총의 순간이 주어질 것’을 기대하지만, 그것은 모든 문학에 보편적으로 적용되는 룰이 아니다. 이디시어/히브리 문학에는 완결감 있는 해피엔딩이 존재하는 대신 결말 자체가 없는 경우가 많은데, 놀랍게도 저자는 이것을 “부서지고 회복되지 않는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의 한계를 표현하기 위한 종교적이고 의도적인 장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흥미를 보이는 작가의 열 살짜리 아이에게 작품의 팟캐스트 버전을 들려주지만 그 이면에 숨겨진 반유대주의에 많은 곤란함을 느꼈다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11장은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이야기로 보이지만 ‘정전들에 내포된 여성혐오’를 지적하는 관점들과 마찬가지로 새로우면서도 분노를 자아내는, 그러면서도 통쾌한 문화 비평이다. 저자는 『베니스의 상인』이 유대인 샤일록을 돈밖에 모르는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묘사하고 있고, 이 작품을 쓰기 얼마 전 셰익스피어가 살던 시기에 유럽 전반에 퍼져 있던 소문들―유대인들이 돈에 대한 탐욕 때문에 살인을 하고 사람의 살을 매매했다는 혐오에 찬 소문 같은―의 존재를 알려준다. 이 작품이 이와 같은 반유대주의적 분위기에서 창작되었을 가능성이 높지만 셰익스피어라는 대문호의 이름에 걸리는 추앙 때문에 그 사실을 세상 사람들도, 자신도 애써 알아보지 않으려 했고, 그럼에도 이제 알게 되어 참담하다는, 자녀 세대 유대인들에 대한 근심을 담아내고 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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