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일기가 창작의 근간이 된다는 말은 흔하지만 사실 일기가 시나 소설이 되지 않아도 좋다. 무언가가 되기 위한 일기가 아니라 일기일 뿐인 일기, 다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은 일기를 사랑한다.” 매일 쓰고 가꾼 일기로부터 열매처럼 맺히는 시와 소설 어느 일기주의자가 건네는 묵묵하고 건강한 창작의 기쁨 ●영원을 담은 매일의 쓰기, 문학론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 하루하루 지나가는 일상과, 시간을 넘어 오래 기록될 문학을 나란히 놓아 봅니다. 매일 묵묵히 쓰는 어떤 것, 그것은 시이고 소설이고 일기입니다. 우리의 하루하루는 무심히 지나가지만 그 속에서 집요하게 문학을 발견해 내는 작가들에 의해 우리 시대의 문학은 쓰이고 있으며, 그것들은 시간을 이기고 영원에 가깝게 살 것입니다. ‘매일과 영원’에 담기는 글들은 하루를 붙잡아 두는 일기이자 작가가 쓰는 그들 자신의 문학론입니다. 내밀하고 친밀한 방식으로 쓰인 이 에세이가, 일기장을 닮은 책이, 독자의 일상에 스미기를 바랍니다. 문보영 시인과 가장 닮은 책이 될 『일기시대』와 강지혜 시인의 모든 처음들을 담은 책 『오늘의 섬을 시작합니다』가 시리즈의 시작을 알립니다. ■사실은 문학을 사랑해: 어느 일기주의자의 고백 2016년 중앙신인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하였고, 2017년 시집 『책기둥』으로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한 시인 문보영의 에세이 『일기시대』가 민음사의 에세이 시리즈 ‘매일과 영원’으로 출간되었다. 문보영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는 단연 ‘일기 딜리버리’다. 손으로 직접 쓴 일기를 구독자들에게 우편으로 부치는 신개념 문학 구독 서비스. 이것은 문보영이 스스로 창조해 낸 조어이며 시스템이다. 그는 「잭과 콩나무」 속 콩나무가 쑥쑥 자라나는 듯한 기세로, 없던 구조를 만들며 스스로의 위치를 그려 넣는다.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매일 글을 써내는 일, 그 마법 같고 대단한 일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바로 그가 책을 읽은, 문학을 사랑해 온 시간이다. 시인은 머릿속에 온갖 책들을 담아 두고 필요할 때 꺼내 자유자재로 일상에 첨가한다. 밋밋한 날들에는 상상을, 상처 입은 날들에는 웃음을 발라 일기를 쓴다. 그렇게 탄생한 일기에서는 시가 발생하거나, 소설이 파생한다. 시인이 사랑하는 것은 시가 되는 일기, 소설이 되는 일기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일기 그 자체인 일기다. 『일기시대』는 일기주의자 문보영이 남기는 ‘일기론’이자 사랑하는 한 시절에 대한 기록이다. ●현실을 오리고 붙이는 재단사 나는 주로 새벽 5시가 넘어서 잠든다. 따라서 새벽 5시까지 방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밖은 위험하고 5시까지 갈 곳이 없기 때문에. -「내 방에서 살아남기」, 18쪽 모두가 잠든 시간에 잠들기가 힘들었던 시인은 자정부터 동 틀 녘까지 일기를 쓴다. 일기는 그가 직접 그린 방 그림으로 시작한다. 방 그림은 대체로 그 구조가 동일하지만 시인의 기분이나 그날의 상태에 따라 아주 미세하게 달라지며, 그림에는 보이지 않지만 책상 밑과 옷장 속 혹은 창문 바깥에서 작가가 숨겨 둔 비상식량이나 용도가 무엇인지 모를 천사 조각, 그리고 상상의 친구가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책장에서는 카프카와 브르통과 제발트가 뒤섞인다. 그의 일기 속에서 방은 『해리 포터』 속 필요의 방처럼 늘어나고 줄어들며 변한다. 시간 역시 마찬가지다. 일기를 쓰는 시간은 자정부터 새벽 다섯 시까지일지라도, 일기에는 며칠 전 다녀 온 산책과 어린 시절 동경했던 친구 이야기, 그날 읽은 책과 오래 전 읽은 책이 뒤섞여 새로운 ‘일기의 시간’이 탄생한다. 작은 방의 작은 책상에 놓인 더 작은 일기장을 마주하고 앉아 시간과 공간을 자르고 꿰매는 분주한 한 일기 장인의 모습을 상상해 보자. 그리고 그의 완성품, 『일기시대』를 확인해 보자. 그것의 봉제선은 깔끔하고 장식은 개성 넘치며, 누구에게나 신기할 정도로 맞춤일 것이다. ■사랑했던 한 시절을 기록하는 역사가 지금 돌이켜보면 가끔 쑥스럽다. 시가 세상의 전부라고 믿던 시절이. -「시인기記 3-동아리를 사랑해」, 96쪽 시인은 자신이 삶에 처음 시를 심었던 때, 친구들로 인해 시가 자라고 오로지 시를 기르는 일에만 몰두했던 때를 천천히 돌이켜 살핀다. 과거의 한 시절을 기록하는 문보영의 키워드는 ‘친구’, 그리고 ‘시’다. 시를 처음 접하고 열렬히 빠져들어 시를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숨이 쉬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던 때. 종각에서 언주 이모, 희숙 할머니, 봉익 삼촌과 함께 시를 썼던 날들. 쓰고 싶지 않은 것은 안 써도 된다는 새로운 원칙과 ‘재미있다’는 말은 ‘슬프다’는 말과 같다는 새로운 언어를 배우며 시 수업 노트를 적던 날들. 이렇듯 시인은 ‘문보영 문학’을 담는 책 『일기시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시기를 ‘시인기記’라는 제목 아래 남기며 말한다. 사랑하는 것이 시밖에 없던 시절이 아직도 마음 깊은 곳에 보물처럼 자리하고 있다고. 그리고 과거보다 조금 더 단단하고 건강한 얼굴로 스스로의 역사에 대한 역사가로서 의견을 덧붙인다. 어느 시인에게 슬픈 날들만이 시로 기록되던 시기는 이제 지나갔으며 이제는 무탈한 날에도 쓰는 사람이 되었다고. 과거의 자신을 가득 채웠던 사랑과 슬픔의 역사를 남김없이 기록하며 문보영은 더없이 생생한 지금의 시인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