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가 연암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
조선 후기의 문신이며 실학자이자 대문장가인 연암 박지원(1737~1805)은 노론 명문가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자는 중미仲美, 호는 연암燕巖이다. 박지원은 장인 이보천에게 《맹자孟子》를 배우고, 처숙인 이양천에게 《사기史記》를 배우며 본격적으로 학문을 시작했는데, 홍문관 교리를 지낸 이양천이 시문詩文에 뛰어나 주로 문학 면에서 연암을 지도했다고 한다.
박지원의 《연암집》은 단순히 글을 모아 놓기만 한 책이 아니라 ‘문학 창작집’이라는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편찬되었으며, 창작에 관한 이론 또한 필요한 곳마다 적절하게 삽입되어 있다. 이 책에서는 《방경각외전》에 실린 현전하는 일곱 작품과 더불어, 《연암집》 <연상각선본>에 실려 있는 <열녀함양박씨전>, 《열하일기》에 수록된 <호질>, <허생전>, , <통곡할 만한 자리>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다.
이 책에 수록된 모든 작품을 아우르는 주제는 ‘타락한 사대부들의 각성을 촉구하며 연암이 가하는 일침’이라 볼 수 있겠다.
<예덕선생전>은 천한 역부임에도 곧은 마음과 높은 덕을 지닌 엄 행수를 ‘예덕선생’이라 부르며, 사리사욕만 채우며 만족할 줄 모르는 사대부들의 위선을 비판하고 있다. <광문자전>은 비록 거지이지만 우직하고 믿음직스러운 성격 때문에 사람들에게 두터운 신임을 받는 존재인데, 이는 봉건적 위계질서가 중시되었던 조선사회에서는 결코 실현될 수 없었던 것이기에 연암은 소설의 힘을 빌려 이상을 실현하고자 했던 것이다. <일야구도하기>는 연암이 중국에 다녀와서 보고 듣고 느낀 감상을 적은 기행문인 《열하일기》에 수록된 작품으로, 보이는 것과 들리는 것에 현혹되지 말고 정신을 수양하고 마음을 깨끗이 하여 외물外物이 주는 두려움을 이겨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연암의 작품을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은 부조리에 대한 비판과 동시에 해학이 담겨 있는 그만의 독창적인 ‘풍자’이다. 연암이 살았던 당대의 지배 이념인 유교는 더 이상 사회를 통제할 능력이 없게 되었고, 유교는 한낱 지배를 위한 이데올로기로서만 존재할 뿐 객관적 현실은 이미 그 틀을 벗어나고 있는 실정이었다. 이와 같은 모든 상황이 연암에게는 풍자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연암은 <마장전>을 통해 사대부들이 명리만 좇아 친구를 사귀는 현실을 개탄하면서, 그들의 타락한 우도友道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다. <민옹전>은 기인으로 묘사되는 실존인물인 민유신의 전기로, 능력은 있으나 불우하게 인생을 마친 그의 삶을 조명했다. <김신선전>은 품은 뜻이 있어도 마음껏 펼 수 없었던 사람들의 처지를 안타까워하며, 조선사회에서 뜻을 펴지 못한 사람들의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 ‘양반이란 한 푼어치도 안 되는 존재’라고 묘사된 <양반전>은 탁상공론만 늘어놓는 양반의 허례허식을 비판하고 있다. <우상전>은 재능을 알아주지 않는 시대를 원망하며 시대의 희생양이 된 우상을 통해 제대로 된 인재를 등용하지 못하는 세태를 비판하고 있다. <열녀함양박씨전>은 남성 중심의 가부장제 사회인 조선이 여성에게 강요한 윤리의식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에 대한 내용이다. 연암의 풍자는 《열하일기》 <관내정사>에 실려 있는 <호질>에 이르러 정점에 이른다. 북곽선생과 동리자의 패륜을 폭로하면서 당시 지배층의 이념이 얼마나 가식적인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또한 연암의 사상에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이용후생의 실학사상이다. 상공업의 진흥과 상품의 유통에 관심을 가졌던 연암의 이용후생학은 《열하일기》의 곳곳에서 발견된다. 《열하일기》는 중국 청나라의 현실에 대한 연암의 견문과 이에 기초하여 전개된 그의 북학론(청의 선진 문물을 받아들이자는 이론)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러한 연암의 견문과 북학론은 그의 독특한 인식론과 탁월한 문예적 기량에 의해 뒷받침됨으로써 ‘존명배청주의尊明排淸主義’에 사로잡혀 있던 당시 사람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치며 계몽적 효과를 거두었다. <허생전>을 통해 나라가 부를 축적하되 국내 유통구조를 확립해야 하고, 외국과의 교역으로써 실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끝으로 <통곡할 만한 자리>는 《열하일기》 중 <도강록>의 7월 8일자 일기이다. 연암은 이 글을 통해 인간이 가진 감정에 대해 새로운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해주며 아울러 ‘한바탕 울기 좋은 곳’이라는 비유를 통해, 좁은 시야에서 벗어나 세상을 넓게 보는 관점을 가져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연암은 고문古文의 전통을 충실히 계승하면서도 격식이나 규범에 얽매이지 않았고, 소설식 문체와 조선 고유의 속어, 속담, 지명 등을 구사하여 개성이 뚜렷한 작품을 남겼다. 소설은 어떠한 현상이나 사실을 고백하는데 머물러서는 안 되며 자기반성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어느 작가의 말처럼, 타락한 양반층을 비판하고 조선사회를 풍자한 것은 부조리한 당대 현실에 대한 연암의 일침이었으며 동시에 조선의 사대부로서 살아갔던 연암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는 부끄러운 고백이자 스스로에 대한 반성이었을 것이다.
선구자적 근대의식과 개혁정신을 지닌 연암이 가야 했던 길은 오늘날 우리의 눈으로 보기엔 지극히 양심적인 유학자의 길이며, 찬사를 보내고 싶을 만큼의 가치 있는 일이었지만 그 이면엔 한 사람의 존재로서 감내해야만 했던 외로움이 있었다는 것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민옹전>에서도 언급된 연암의 우울증은 현실과 이상의 괴리에서 비롯된 것이며 동시에 남들이 ‘가지 않은 길’을 걸어야 했던 외로움에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부조리하고 비극적인 현실도 연암의 붓끝에선 씁쓸한 웃음이 된다. 조선사회의 유교라는 화석화된 이념 속에 가려진 가공되지 않은 현실을 날카롭게 포착해 내고, 육안이 아닌 심안으로 현실을 바라보며, 한낱 몽상가적 이상이 아닌 가능성 있는 미래를 설계한 연암이었기에 그의 문학과 사상은 세월의 경계를 넘어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의 감수성을 전율시키기에 모자람이 없다. 시대를 뛰어넘어 오늘날 우리가 연암을 마주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