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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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 작가 곽재식이 '곽재식 속도'와 무관하게 11년간 채집한 한국의 괴물 282종 곽재식은 2007년부터 '게렉터(gerecter)'라는 필명으로 한국의 괴물을 채집해 자신의 블로그(https://oldstory.postype.com)를 통해 공개해왔다. 여기에 어떤 사명감 같은 것은 없었다. 그저 옛날을 배경으로 한 역사 소설을 써보기 위해 자료 조사차 시작한 일이었다. 사극이나 영화를 통해 알려진 모습이 아니라 진짜 옛날 사람들이 남긴 진짜 옛날이야기가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바람이 있다면 자신 같은 창작자에게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것 정도였다. 그 사이에 그의 블로그는 그동안 민속학 연구자, 소설가, 게임 및 웹툰 시나리오 작가, 졸업 작품을 준비하는 학생 등의 참고 자료로 활용되면서 암암리에 '온라인 괴물 소굴'로 알려져왔다. 이 책 『한국 괴물 백과』는 곽재식이 채집한 한국 괴물 가운데 282종을 이강훈의 일러스트레이션과 함께 엮은 것이다. 그 전에 염두에 두어야 할 점이 있다. 곽재식은 오늘날 널리 알려진 괴물들에 관한 묘사의 출처가 불분명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우리에게 도깨비는 모름지기 정수리에 뿔이 돋아나 있고 거적 비슷한 천을 몸에 두른 채 울퉁불퉁한 방망이를 손에 들고 있어야 한다. 구미호는 풀어헤친 머리에 소복을 입고 둔부 근처에 여우 꼬리 아홉 개가 달려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런 모습은 정확한 근거 없이 평소에 대중매체를 통해 접한 경우가 제법 흔하다는 것이다. 이것이 진짜 한국 괴물, 괴물을 둘러싼 상상력의 기원을 찾아 이에 따라 곽재식은 괴물을 채집하기 전에 몇 가지 원칙을 세웠다. 『용재총화』, 『어우야담』, 『삼국사기』, 『삼국유사』, 『동문선』, 『대동야승』 등 18세기 이전의 기록으로 남아 있는 괴물로 한정하고, 괴물을 소개할 때 되도록 자의적 해석을 배제했다. 괴물의 이름이 불분명한 경우, 임의로 이름을 붙이는 대신 괴물이 기록된 문헌의 특징적 구절을 이름으로 삼고, 괴물을 설명할 때는 괴물이 기록된 문헌이나 괴물을 묘사한 공예품 등을 참고했다. 그 이후에 기록된 괴물, 작자가 불분명한 문헌에 기록된 괴물, 소설 속에만 등장하는 괴물, 기록 없이 구전된 괴물은 배제했다. 성격이 비슷한 괴물은 한데 합치고, 이름이 같더라도 모습과 성격이 다르면 다른 괴물로 분리했다. 괴물을 묘사한 일러스트레이션 또한 곽재식이 정리한 자료에 기반을 두었다. 어떤 면에서 '괴물'보다는 '한국'에 방점이 찍힌 이 책은 괴물을 둘러싼 상상력의 기원을 찾아보려 한 결과물 또는 궤적이다. 그 자체로 괴물 한국 SF계에만 적용되는 속도가 있다. 6개월 동안 단편소설 네 편을 써내는 '곽재식 속도'가 그것이다. 따라서 누군가 6개월 동안 단편소설 두 편을 써냈다면, 그는 '0.5 곽재식 속도'로 집필한 셈이 된다. 떠도는 소문에 따르면 곽재식은 평소 '2 곽재식 속도'로 집필한다고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런 곽재식 속도와 무관하게 그저 취미처럼 시작한 일이 올해로 11년째가 되었다. 이 책 『한국 괴물 백과』는 말 그대로 일단락에 불과하다. 곽재식의 한국 괴물 채집은 앞으로도 계속되고, 우리는 평소와 다름없이 그의 블로그를 통해 때로는 질문도 던지고 응원도 하면서 이 과정을 지켜보게 될 것이다. 이 책 또한 한 권의 사전으로서 계속 업데이트될 것이다. 어쨌든 괴물 같은 책, 아니 책 형태를 띤 괴물은 이렇게 탄생했다. 모습이 조금 곱더라도 겉모습만 보고 판단해서는 안 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