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에 걸쳐 완성한 헤세의 마지막 걸작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작
욕망과 금욕, 혼돈과 질서,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선과 악 등 자신이 평생 고민해 온 문제들을 해결해 가는 과정이자 해답을이 담은 헤세 문학의 총체
유리알 유희는 특별한 위치에 있는 소설이다. 자기 치유를 위한 명상 수련이라는, 신비로운 지식의 질서에 관한 판타지이다. ―스웨덴 한림원,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
노벨 문학상을 수상(1946)한 독일의 문호 헤르만 헤세의 대표작 『유리알 유희(Das Glasperlenspiel)』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73·274번으로 출간되었다. 『유리알 유희』는 헤르만 헤세가 10여 년에 걸쳐 집필한 마지막 역작이다. 그는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류 최대의 비극을 몰고 온 정신적 문제가 무엇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욕망과 금욕, 혼돈과 질서, 삶과 죽음, 동양과 서양, 선과 악 등 양극의 문제를 풀기 위한 평생의 고민을 이 소설 속에 풀어 놓았다. 따라서 이 책은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요 방법론”으로 볼 수 있다. 1943년에 출간된 『유리알 유희』는 21세기에도 중요한 화두인 지식 정보 사회, 멀티미디어, 판타지, 가상현실, 정신 건강과 명상을 중요한 모티프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가장 현대적인 고전으로 평가받는다.
1, 2차 세계대전이라는 전대미문의 불행에 직면한 인류,
엄격한 자기수양을 통해 내면세계에서 그 답을 찾으려는 여정
『유리알 유희』는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알 유희의 역사를 일반인에게 알기 쉽게 설명하기 위하여”라는 부제가 붙은 「서문」은 논문 형식의 글로, 유리알 유희 명인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를 쓰게 된 배경과 그의 삶에 대해 개괄적으로 설명한다. 이어지는 「유희의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전기」는 요제프의 학생 시절, 수련 시절, 명인 시절을 주변 사람들의 증언이나 남아 있는 기록을 바탕으로 써 나간 전기 형식의 글이다. 마지막 「요제프 크네히트의 유고」는 「학생 시절과 연구생 시절의 시」, 「세 편의 이력서」로 구성되어 있으며, 「기우사」, 「고해사」, 「인도의 이력서」가 그 이력서들이다.
소설의 현재 시점은 25세기로 추정되는 미래의 어느 시기이다. 한 전기 작가가 200년 전에 살았던 전설적인 유리알 유희 명인 요제프 크네히트의 자료를 모아 그의 일대기를 쓰기 시작한다. 역사상 유래 없는 전 지구적 혼돈을 맞은 20세기 중반, 스위스 산간 지방에 ‘카스탈리엔’이라는 정신적 이상향이 세워진다. 어떤 정치적, 사회적 영향도 받지 않고 오로지 엄적한 절제와 자기 수양만으로 교육한 인재들을 교사로 파견해 사회가 바르게 돌아가도록 돕는 기관이다. 요제프는 이곳에서 영재로 교육받고 점차 유리알 유희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다가 마침내 명인으로 추대된다. 맡겨진 임무를 완벽하게 수행하며 살아가던 그는 과거 학생 시절에 논쟁을 벌이던 세속의 친구 데시뇨리와 재회하면서 자신이 진정 바라는 역할이 무언인지 고민하기 시작한다.
직책이 높아진다는 것은 언제나 자유로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 아니라 속박으로 한 걸음 다가서는 것이다. 직책이 높을수록 속박은 점점 더 심해진다. 직권이 커질수록 직무는 점점 더 엄격해진다. 개성이 강할수록 자유 의지는 더욱 엄하게 금지된다.(본문 중에서)
그렇다면 유리알 유희란 무엇인가. 헤세는 작품 속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유리알 유희는 우리 문화의 내용과 가치 전체를 가지고 하는 유희이다. 예술 전성시대의 화가가 자기 팔레트의 물감들을 가지고 유희하듯 모든 것을 가지고 유희를 하는 것이다. 인류가 창조적 시대에 인식과 드높은 사상과 예술 작품에서 이룩해 내었던 것, 그 뒤를 이은 학구적 관찰의 시대가 개념화하여 지적 재산으로 만들었던 것, 정신적 가치의 이 엄청난 자료 전체를 가지고 유리알 유희를 하는 사람은 마치 오르간 연주자가 파이프오르간을 치는 것처럼 연주한다.” 헤르만 헤세 스스로가 내면세계에 심취하여 일상적으로 명상하고 사색했던, 즉 “생각의 유희”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유희를 통해 예술과 학문의 극단성을 멀리하고, 삶의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유희 자체가 과정이자 답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헤세는 인도와 중국을 비롯한 동양의 학문에 친숙했고, 나이가 들수록 그 정신문화에 심취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유리알 유희’의 방법론에서도 그 영향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극단을 지양하고 균형과 조화를 추구하는 주인공 요제프 크네히트와
내용과 형식 면에서 완벽하게 균형을 이룬 걸작 『유리알 유희』
헤세의 작품 세계는 초기, 중기, 후기로 나뉜다. 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다음 해인 1915년까지인 초기에는 『수레바퀴 아래서』와 같은 신낭만주의 경향의 작품이 주를 이루었다. 1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의 집권까지인 중기에는 헤세 작품에 결정적 변화가 일어나는데, 이때 헤세는 반전 메시지가 담긴 글을 발표하여 당시 독일인들로부터 배척당하고, 가족사의 비극으로 인해 정신분석학적 치료를 받는다. 이 시기의 대표작이 『데미안』, 『황야의 이리』, 『나르치스와 골드문트』 등이다. 후기 대표작은 『동방순례』와 『유리알 유희』인데, 특히 『유리알 유희』에서 지식 정보, 멀티미디어, 판타지, 가상현실, 명상 등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헤세의 상상력과 가치를 재발견할 수 있다.
『유리알 유희』는 헤세의 마지막 소설이다. 독일에서 나치가 세력을 키워 가던 1932년, 헤세는 이 작품을 쓰기 시작했고, 그 후 10여 년에 걸쳐 완성한다. 그러나 나치 독일은 이 책의 출판을 금지하여, 결국 초판은 1943년 스위스 취리히에서 출간된다. 독일에서는 2차 대전이 끝나고 1946년 12월에야 출간될 수 있었다. 그해에 헤세는 노벨 문학상의 영예를 안는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 대한 헤세의 고민과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유리알 유희』에 고스란히 그려져 있다. 균형과 조화를 찾아가는 요제프 크네히트의 삶 자체가 그 바로 그 과정이자 답이라고 할 수 있다. 요제프는 그 무엇에 대한 고민도 없이 학업에만 열중하다가, 점점 세상에 대해 눈뜨고, 자신과 우주를 둘러싼 고뇌를 해결하기 위해 애쓴다. 결국 유희 명인이 되어 모든 양극적 요소를 통합하지만 여기서 그치치 않고, 아직 남아 있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좀 더 나은 방향을 찾아 길을 떠난다. 이렇듯 한 단계씩 도약하여 마침내 가장 높은 수준으로 통합되는 소설의 내용은, 3중 구조로 조직된 소설의 형식과도 완벽한 일치를 보인다.
많은 독자들이 어렵고 딱딱한 유리알 유희의 서문에 질려 소설 읽기를 포기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때는 맨 뒤의 크네히트 유고를 먼저 읽고, 가운데 크네히트의 전기를 읽은 다음, 맨 나중에 유리알 유희 서문을 읽는 것도 이 소설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듯하다. 또한 크네히트가 학생 시절에 쓴 세 편의 창작 이력서는 원래 이야기인 크네히트의 생애와 한편으론 대비를 이루고, 다른 한편으론 보완의 역할을 하며 그 자체로 훌륭한 유리알 유희의 모범을 보인다. 왜냐하면 크네히트가 주인공인 전체 네 개의 이야기 속에 개인과 사회, 자유와 구속, 스승과 제자, 늙음과 젊음, 전통과 혁신의 대비와 조화가 완벽한 대칭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작품 해설」 중에서)
martie
4.0
- <유리알 유희 > 중에서 모든 꽃이 시들듯이 청춘이 나이에 굴복하듯이 생의 모든 과정과 지혜와 깨달음도 영원하진 않으리. 삶이 부르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마음은 슬퍼하지 않고 새로운 문으로 걸어갈 수 있도록 이별과 새 출발을 각오해야만 한다. 무릇 모든 시작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어 그것이 우리를 지키고 살아가는 데 도움을 준다. 우리는 공간을 하나씩 지나가야 한다. 어디에서도 고향에서와 같은 집착을 가져선 안 된다. 우주의 정신은 우리를 붙잡아 두거나 구속하지 않고 우리를 한 단계씩 높이며 넓히려 한다. 생의 어느 한 영역에 뿌리내리고 친밀하게 길드는 바로 그 순간, 나태의 위협이 밀려오므로 여행을 떠날 각오가 되어 있는 자만이 자기를 묶고 있는 속박에서 벗어나리라. 죽음의 순간에도 어쩌면 새로운 공간을 향해 즐겁게 출발할 수 있으리니. 우리를 부르는 생의 외침은 결코 그치는 일이 없으리라. 그러면 좋아, 마음이여 작별을 고하고 건강하여라.
진태
4.5
대위법을 통해 설명하는 삶 그리고 반성문
재히
5.0
나의 개인적이고 미묘한 경험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을 정확히 언어로 그대로 재현했다는 점에서 소름이 돋는.
oasisdy
4.5
교양 유희는 즐겁기만 하고 의미 없는 어린애 장난이 아니라, 풀 길 없는 문제들과 두렵기 그지없는 몰락의 예감으로부터 두 눈을 감고 가능한 한 천진난만한 환상의 세계로 도피하고 싶은 심각한 욕구에 따른 것이었다. 그들은 끈질기게 자동차 운전이나 어려운 카드놀이를 배우며 꿈꾸듯이 크로스워드 퍼즐에 빠져있었다. 이미 교회에서는 더 이상 위안을 얻지 못하고, 정신으로부터는 조언을 듣지 못한 채 거의 무방비 상태로 죽음과 공포, 고통과 굶주림에 직면해 있었기 때문이다. 그토록 많은 글을 읽고 강연을 들으면서도 그들은 무서움에 대하여 스스로를 강하게 만들고, 자신의 내면에서 죽음의 공포와 맞서 싸우는 데는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았다.
정진우
5.0
이 책을 읽기 전 헤르만 헤세의 책을 많이 읽어왔는데, 그저 헤세의 작품들이 나에게 하나같이 매력적으로 다가와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헤르만 헤세 문학의 총체라고 불리는 이 『유리알 유희』를 읽기 위해 준비 운동 느낌로 읽은 것도 맞다. 유리알 유희의 첫 50페이지 정도는 유리알 유희가 과연 무엇인지 설명하는 하나의 서문인데, 이 50페이지 읽는 데 걸린 시간이 뒤의 요제프 크네히트의 이야기 700페이지 중 200페이지 읽는 시간보다 더 많이 걸린 것 같다. 이 서문만 읽었을 때는 뭐랄까, 숨이 턱 막혔다. 압도적인 필력 등으로 숨이 막혔다기보단 대체 이게 뭘 얘기하고자 하는 건지 전혀 모르겠다는 이유였다. 유리알 유희를 일반인에게 쉽게 이해하게 만들고자 쓴 글이라기엔 책의 첫 페이지를 넘기는 그 때의 나보다 서문을 다 읽은 후의 내가 유리알 유희를 더 모르는 느낌. 그러나 이 서문으로 인해 더 궁금해졌다. 인간이 고안해낸 가장 이성적이고 순수하며 모든 것이 결합된 그 유희가 과연 무엇인지. 기대하며 페이지를 넘겼다. 결론만 말하자면, 『유리알 유희』는 내 인생 최고의 책까지는 아닐 수 있어도 묘한 깨달음을 주고 깊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은 맞다고 확신한다.『데미안』, 『싯다르타』, 『황야의 이리』, 『수레바퀴 아래서』 등에서 계속 나오던 주제인 이분법적 가치관으로부터의 해방, 선악의 통합, 자아 실현, 자신이 옳다고 믿던 것과 현실의 괴리 등 헤세가 말하고 싶은, 그리고 말해왔던 모든 주제가 이 작품에 모두 담겨 있다. 차이점을 꼽자면 『데미안』의 싱클레어, 『수레바퀴 아래서』의 한스 기벤라트 등은 정신적으로 성숙하지 않고 미완성형의 인간인 반면 『유리알 유희』의 요제프 크네히트는 전설적으로 남은, 모두에게 존경받는 완성형의 인간이라는 것. 그런 완벽한 인간의 생애와 사고를 보여주는 것이 전작들과 확연한 차이였다. 『유리알 유희』가 다른 작품들에 비해 특히 현대적이라는 느낌을 받았는데, 그 이유는 헤세가 이루고자 했던 것을 우리는 전혀 이루지 못했다는 점에 있다. 앞의 서문에서부터 언급되는 과거 "전쟁의 시대"와 "잡문 시대"는 21세기 현재에도 다른 형태로, 어쩌면 같은 형태로 보존되어 온 것 같다. 물론 헤세가 이루고자 한 전작의 것들 또한 우리 인류 대부분은 이뤄 내지 못하고 있지만 말이다. 내가 이 책을 읽으며 모든 것을 이해했다고 자만하지 않는다. 헤르만 헤세의 생각 및 사상을 10퍼센트조차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아는 척만 하는 것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책을 읽으며, 그리고 읽은 후에 스스로 깊이 생각하고 고민하며 떠올린 그러한 것들은 결코 거짓되지 않았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읽기 전에 이 책을 기대할 때도, 글의 내용을 이해하려 하며 이 책을 읽는 동안에도, 책을 다 읽고 나서 스스로 고민하고 생각할 때도 썩 즐거운 시간이었다. 이만한 즐거움을 주는 책을 다시 찾기까지 제법 시간이 걸릴 거라고 확신할 정도로. 그래서 대체 유리알 유희가 뭔데? 책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까지도 알려주지 않는다.
은채
4.0
[물질주의자 오천만 시대에서 살아남기] 헤세는 유리알 유희 구성과 집필에 10년이 넘는 시간을 투자했다고 한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헤세는 평생 집필했던 작품들인 수레바퀴 아래서 - 크눌프 - 데미안 - 싯다르타 - 황야의 이리를 기반으로 유리알 유희를 완성했다고 생각한다. 헤세는 유리알 유희의 집필로 정신적 고양과 성장을 마무리 짓고, 자신의 작품관을 완성했다. 확고한 이데올로기를 가진 작가이기 때문에 유리알 유희를 이해하는 데에 있어서 헤세의 전작들을 읽어내는 것들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도 읽었다면 이해하는 데 더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유리알 유희 명인 크네히트는 한스이면서 크눌프이면서 싱클레어이면서 싯타르다이면서 하리이면서 헤세이다. 수레바퀴 아래서와 크눌프에서 신학교에서 뛰어나온 한스와 크눌프에 헤세는 자신을 가장 노골적으로 투영했다. 한스와 크눌프가 죽음을 통해 완성되는 인간상이라면 데미안을 통해 헤세는 반전주의를 내비침과 동시에 정신적 구루에 대한 필요성, 정신적 구루의 도움으로 완성되는 자아를 내보인다. 싯다르타를 통해 헤세는 깨달음과 고양은 외부에서 찾아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내부에 있음을 말한다. 싯다르타에서 석가모니의 열반과 정신 합일에 대해 말했다면 황야의 이리에서는 하리를 통해 분열적이고 파편적인 군상을 보여준다. (대부분의 헤세 소설이 그렇지만) 황야의 이리는 마지막 대목이 핵심적이다. ‘나는 충격을 받고 어렴풋이나마 게임의 의미를 깨닫게 되었고, 다시 한번 게임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그 고통을 다시 한번 맛보고, 그 무의미함에 다시 한번 전율하며, 내면의 지옥을 한 번 더, 아니 몇 번이고 자주 통과하는 여행을 할 준비가 되어있었다. 언젠가 나는 체스 게임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젠가는 웃는 법을 배우게 될 것이다. 파블로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차르트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히피들의 성서, 반전주의자들의 주춧돌임도 황야의 이리를 해석하는 데 중요한 포인트들이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했던 점은 하리 할러는 (싱클레어나 싯다르타와 달리) 정신적으로 완성되지 못한 상태로 소설이 마무리된다는 점이다. 하리의 현실은 더 나아지지 않았으며, 삶의 게임을 더 잘하는 방법을 무의미함과 내면의 지옥을 몇 번이고 통과해 배워야만 한다. 크네히트는 반대로 삶의 게임을 향해 주체적으로 나아가는 인물이다. 크네히트는 명인의 자리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상의 세계(카스탈리엔)에서 현실의 세계로 떠난다. 내면의 각성으로 깨달음을 얻어 속세의 학교에 봉사하기 위해 떠나는데, 내부의 깨달음-속세의 문화유산을 위해 봉사이며 복종의 길을 떠나는 점으로 미루어봤을 때 크네히트는 헤세 소설 주인공들이 가장 정신적으로 고양된 버전이라고 볼 수 있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해야한다. 새는 신에게로 날기 시작한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데미안 中) 크네히트는 완전하며 순수한 카스탈리엔을 자신의 의지로 벗어남으로 자신의 세계를 파괴하며 날아가는 새이자 아브락사스이다. 정신적 고양의 이상향인 카스탈리엔은 잡문 시대/전쟁 시대와 대비되며 완전히 분열되어진 세계이다. 헤세는 잡문 시대를 ‘빠르고 쉽게 돈 버는 일, 대중적인 명성을 얻는 일, 신문에서 칭송을 받는 일, 은행가나 기업가의 딸과 결혼하는 일, 물질적으로 사치스러운 생활을 누리는 일’ ‘멋진 별장을 가진 작가, 멋진 제복을 입은 하인을 거느린 유명한 의사, 부유한 아내와 번쩍이는 살롱을 가진 대학교수, 회사 감사 위원 자리를 차지한 화학자, 잡문 공장을 운영하며 청중 가득한 홀에서 매혹적인 강연으로 박수갈채와 꽃다발에 묻히는 철학자들.’ 로 묘사한다. 짧게 말하자면 인문학이 멸시받는 시대, 물질만능주의가 도래한 시대, 현대 사회. 책 해석 파트에서도 언급되는데 ‘역설적이게도 헤세가 그토록 열망한 그런 세상이 오지 않았기에, 정신적 가치가 중시되는 세상이 오지 않았기에, 그의 [유리알 유희]는 바로 지금 우리 곁에 소중하게 간직해야 하는 작품이 된다.’ 크네히트는 이상의 세계에서 목적을 가지고 잡문의 세계로 날아간다. 물질의 세계에서 크네히트는 티토를 고양시키는 죽음으로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그-티토-는 그 어떤 그럴듯한 이유를 내세우더라도 자신이 명인의 죽음에 책임이 있음을 느꼈다. 그는 일종의 경이로운 예감에 몸을 떨며 이 죄의식이 자신과 자신의 삶을 완전히 바꾸리라는 것, 이제껏 스스로 자신에게 요구했던 것보다 더 위대한 것을 자신에게 요구하게 되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헤세는 1947년 편지에서 ‘크네히트는 자신보다 너무나 우월한 사람의 희생적 죽음이 티토에게 영원한 충고와 모범이 될 수 있도록 그를 남겨놓고 떠났다.’ 고 말했다. 크네히트-티토-물질 세계 이 셋의 연결성으로 인해 티토가 물질 세계에 문화를 꽃피울 것임을 암시했다고 생각한다. 크네히트는 티토를 통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다. 유리알 유희를 읽으면서 나의 잡문 세계를 떠도는 자아를 다잡고 싶었다. 물질주의자 오천만 시대에서 더 많이 더 멀리를 외치지 않고 문화 향유와 정신적 고양을 위해 살아가고 싶다.
임또기
4.0
2023.03.06 # 세속과정신 # 명랑성 # 자유와책임 #단계와각성 * 정신을 추구하는 삶은 도망가지 않는다. 속세로 도망가는 것은 언제나 나 자신이다. (1권 411p, 2권 207p) * 삶을 명랑하게 나아갈 수 있는 방법, 그것은 유희이다. 그러기 위해선 단 두 가지 목적을 지녀야 한다. 자기 전문 분야에서 가능한 완벽을 이룰 것. 그리고 그 모든것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단일성을 늘 인식할 것. (1권 419, 306p) * 지나친 자유에서 존재는 너무나도 쉽게 흔들린다. 책임은 구속이지만 또한 나를 잡아주는 버팀목이다. 자유는 어쩌면 젊음에 한해 빌린것일지도 모르겠다. 그 자유는 나의 후대에게 물려주어야 마땅하다. 그로부터 우리는 죽음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고 새로운 꽃봉오리로서 생명을 이어갈 수 있는것이다. 그렇게 생은 순환하며 역사는 흘러간다.(1권 235p, 2권 214p) + 자연세계의 본질이 중력이라면, 인간세계의 본질은 자유이다.(헤겔_역사철학강의) * 마침표는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 죽음의 욕구는 현재의 알에서 깨어나와 새롭게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이다.(2권 114, 176p) -------------------------------------------------------------------------------------------------------- 207p. 그는 정신적인 인간은 다른 사람들에게 이상한 불쾌감과 반발을 자아내며, 사람들은 이러한 인간을 먼발치에서는 존경하기도 하고 곤경에 처하면 그를 찾기도 하지만, 결코 사랑하거나 자신의 동료로 느끼지 않으며 오히려 피하려든다는 사실도 경험을 통해 알게 되었다...크네히트는 탐구하는 정신적인 인간은 사랑을 잃어서는 안 되며(모든 것이 하나라는 단일 사상), 사람들의 소원과 어리석음을 오만한 마음 없이 맞이해야 하지만 그것에 휘둘려서는 안 된다는 것, 현자와 사기꾼, 도움을 주는 형제와 기생충 같은 이용자 사이는 불과 한 걸음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크네히트는 인간을 약하고 이기적이고 비겁한 존재로 보는 법을 배워야 했다. 또한 자신도 이런 모든 사악한 속성과 본능을 얼마나 많이 공유하고 있는지 깨달아야 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또한 정신이자 사랑이며, 인간의 내면에는 본능을 거역하고 본능이 순화되기를 갈망하는 무엇인가가 살고 있다는 것을 믿고 또 그것으로써 영혼을 살찌울 필요가 있었다. 214p. 가르치고 제자를 둔다는 이 새로우면서도 종종 번거롭기만 한 의무 가운데에서, 그것이 피할 수 없고 운명적인 일임을 깨닫게 되었다. 크네히트는 시간이 흐를수록 꿈과, 무한한 가능성 및 수천 가지 미래에 대한 감정의 향유와는 작별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무한한 진보와 온갖 지혜를 축적한다는 꿈 대신 이제 한 사람의 제자가 나타났다. 그는 현실이자 침입자이고 방해자였지만, 거절하거나 회피할 수 없는 존재이기도 했다. 그는 현실적인 미래에 가로놓인 유일한 길이었고, 유일하면서도 가장 중요한 의무였으며, 비좁긴 하지만 하나밖에 없는 길이었다. 기우사의 삶과 활동과 신조와 사상과 예감은 이러한 길을 걸어감으로써 죽음으로부터 보호될 수 있었으며 작지만 새로운 꽃봉오리로서 생명을 이어 갈 수 있는 것이었다.
김서빈
5.0
문학이 줄 수 있는 메세지와 무거움의 정점. 주제만으로 성스로운 책은 처음본다. 인간을 초월한 그의 마지막 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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