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가장 영향력 있는 글로벌 정치학자 100인
앨리스 앰스던 상 · 배링턴 무어 상 수상작
《뉴욕타임스》 《이코노미스트》 추천 도서
중국은 광범위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초고속 성장을 할 수 있었을까?
미국의 도금 시대로 살펴본 부패와 성장의 역설
2023년 3월, 중국 최대 정치 행사인 ‘양회’에서 2023년 경제 성장률 목표치가 5퍼센트 내외로 발표되었다. 이는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제외하면 1991년 이후 최저치다. 중국의 성장률 목표치가 이처럼 보수적인 이유로 팬데믹,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미중 무역 갈등의 영향이 꼽히고 있다. 그리고 또 다른 결정적 요인으로 2012년 시진핑 집권 이후 줄곧 시행되어 온 강력한 반부패 운동의 영향을 들 수 있다.
일반적으로 부패는 경제 성장을 저해한다고 여겨진다. 그래서 부패 근절은 경제 발전을 위한 조건이라고 강조된다. 시진핑 또한 수차례 공식 연설을 통해 부패가 “공산당과 국가를 멸망으로 이끌 것”이라고 경고했다.(13쪽) 게다가 많은 연구자가 중국은 1990년 이후 광범위한 부정부패 때문에 붕괴에 가까운 실패를 경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하지만 현실은? 중국은 1978년 개혁 개방 이후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역사상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초고속 성장을 이룩했고 이제 미국과 어깨를 견주는 초강대국으로 우뚝 섰다. 또한 시진핑의 부패 척결 노력은 오히려 성장률 둔화의 원인으로 지목되었다. 이러한 부패와 성장의 역설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존스홉킨스대학교 정치학 교수이자 중국의 정치 경제와 글로벌 영향력 연구 분야에서 최고 권위자 중 한 명인 위엔위엔 앙은 이 화두에 대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말 부패는 성장을 저해하는가? 중국의 부패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그는 부패와 성장의 관계를 보여 줄 새로운 부패 지수를 개발했고 방대한 공식 통계, 언론 보도, 2차 문헌들을 데이터베이스화했다. 여기에 15개국의 전문가 집단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중국 공무원과 글로벌 기업인을 대상으로 한 400건 이상의 인터뷰, 부패 조사를 받은 중국 관리들에 대한 심층 분석을 더했다. 그 결과 부패에는 여러 유형이 있으며 어떤 부패는 사회와 경제에 독이 되지만 어떤 부패는 단기적인 성장 동력으로 작용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부패한 중국은 왜 성장하는가》는 이러한 저자의 연구 성과를 집대성한 책이다. “다양한 형태의 부패와 중국의 도금 시대를 비교 역사학 관점에서 설명”(앤드루 월더, 스탠퍼드대학교 교수)하고 있으며 “중국의 초고속 성장 과정과 앞으로 닥칠 치명적인 문제에 대한 경고”(훙호펑, 존스홉킨스대학교 교수)도 놓치지 않았다. 동료 연구자들은 “부패와 발전의 연관성에 대한 획기적이고 독창적인 연구”(브루스 딕슨,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 “중국이 작동하는 방식에 대한 깊은 통찰력과 혁신적인 연구를 결합”(앤드루 네이선, 컬럼비아대학교 교수)했다고 평한다. 더불어 저자는 “중국의 발전 과정 및 전략 연구에서 동 세대 학자들 중 가장 뛰어나다”(마이클 울콕, 하버드대학교 교수)고 인정받았다. “중국의 경제 성장과 부패 문제에 대해 서구 중심적 관점에서 벗어나 더 냉정하게 이해하고 싶은 독자”(브랑코 밀라노비치, 뉴욕시립대학교 대학원 교수)는 물론이고 “중국의 미래가 궁금한 독자”(하남석, 서울시립대학교 교수)라면 반드시 이 책을 읽어야 한다.
독이 되는 부패와 약이 되는 부패
중국의 부패와 성장의 관계에 대해 일부 학자들은 중국의 성장이 너무 빨라서 부패가 발 디딜 틈이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학자들은 중국의 부패가 다른 나라의 부패에 비해 덜 파괴적이어서 성장을 방해하지 않았다고도 한다.(18쪽) 하지만 이런 견해들의 공통점은 모든 부패를 동일하게 나쁜 것으로 본다는 것이다. 중국이 만연한 부패에도 불구하고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부패는 무조건 나쁘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자는 그 방법으로 ‘부패 세분화’를 제시하고 있다.
전통적으로 부패란 공무원이 사적 이익을 취하기 위해 권력을 남용하는 행위로 정의한다. 하지만 이런 정의는 너무 광범위하다. 그래서 저자는 부패를 다음과 같이 세분화했다. 정부의 혜택과 서비스를 받기 위한 대가성 뇌물과 어떤 교환도 없는 횡령 및 갈취(도둑질), 고위 공무원이 벌이는 거대한 부패와 하위 공무원이 벌이는 사소한 부패. 이를 기준으로 부패를 분류하면 4가지 유형으로 정의할 수 있는데 저자는 각각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 인허가료’라고 부른다.
바늘도둑은 시민을 대상으로 횡령, 갈취하는 일선 하위 공무원의 부패를 말한다. 신호 위반을 눈감아 주는 대신 뇌물을 받는 경찰의 행위가 바로 이것이다. 반면 소도둑은 공공 재원을 횡령하거나 유용하는 고위 공무원의 행위다. 국고 중 일부를 비밀 계좌에 이체하는 것처럼 부패 규모가 큰 게 특징이다. 급행료는 소상공인이 영업 허가를 빨리 받기 위해 해당 공무원에게 바치는 뇌물 같은 부패를 뜻한다. 인허가료는 대규모 건설 사업이나 재건축 프로젝트 계약을 따내기 위해 막강한 권한을 가진 고위 관료에게 뇌물을 바치는 행위다.(23쪽)
모든 유형의 부패가 부정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경제에 동일하게 악영향을 미치는 건 아니다. 저자는 이를 약물에 비유한다. 공공 재산과 사유 재산을 소진하는 특징을 가진 바늘도둑과 소도둑은 건강을 갉아먹고 성장을 방해하는 유해 약물이나 마찬가지다. 급행료는 일종의 진통제라고 할 수 있다. 적은 뇌물을 이용하면 행정상 문제를 극복할 수 있기 때문에 당장의 비즈니스에는 도움이 된다. 하지만 이 또한 시민과 업계에 부담이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성장에 해를 끼친다. 인허가료는 자본주의의 성장 촉진제, 스테로이드다.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는 기업 활동을 위축시키지만 인허가료는 활발한 사업과 투자를 불러오기 때문에 경제 성장에도 일조한다. 하지만 스테로이드가 우리 몸에 심각한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는 것처럼 인허가료는 불만과 불평등을 고조시키는 폐해가 있다.
잘사는 나라든 못사는 나라든 개발도상국이든 모든 나라가 이 4가지 유형의 부패를 모두 가지고 있다. 다만 각 유형의 비중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를 통해 그 나라에서 어느 부패 유형이 지배적인지 알 수 있다. 이것은 한 나라의 부패 구조를 이해하고 성장 과정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파악하는 데 필수적이다.
중국의 부패는 무엇이 어떻게 다른가
부패를 세분화해서 살펴봐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그 나라의 부패 구조가 부패 수준(정도)보다 정치, 경제, 사회에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46쪽) 국제투명성기구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인식지수는 각국의 부패 정도를 파악할 수 있는 지표다. 부패인식지수는 마치 온도계의 눈금처럼 한 나라의 부패 수준을 하나의 점수로만 나타낸다. 하지만 한 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구조는 매우 복잡하다. 또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 인허가료 유형은 모두 부패지만 그 영향은 제각각 다르다. 그러므로 부패가 성장에 미치는 영향을 보다 분명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리고 중국의 부패 구조가 다른 나라와 어떻게 다른지 알기 위해서는 어떤 유형의 부패가 지배적인지 알아야 한다. 저자는 바늘도둑, 소도둑, 급행료, 인허가료 유형에 각각 점수를 매기는 ‘세분화한 부패 지수’를 통해 중국을 포함한 15개 국가에서 어떤 유형의 부패가 가장 지배적인지 조사하였다.(46쪽)
그 결과 중국에서 가장 두드러진 부패 유형은 인허가료였다. 중국처럼 인허가료가 지배적인 나라로 한국, 미국, 일본, 싱가포르, 대만이 있다. 이들의 공통점은 고소득 국가라는 점이다. 반면 방글라데시와 가나에서는 급행료가, 나이지리아에서는 소도둑이, 태국에서는 바늘도둑이 지배적이었다. 중국이 광범위한 부패 속에서도 다른 저소득 국가보다 빠르고 거대하게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바로 부패 구조의 차이가 있다.(58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