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는 지도 위가 아니라 공항 입국 심사대에 있다
본국으로 귀국하려고 출국 심사를 받는 와중에 자신의 나라에 쿠데타가 터지며 내전이 터졌다. 모든 비자와 여건이 정지됐다. 순간 자신의 국적은 사라졌고 또한 돌아갈 자신의 고국도 남을 타국도 사라졌다. 터미널이라는 ‘무국적’의 공간에 남겨졌다. 그리고 그곳에서 그는 생존을 위한 또 다른 삶을 시작한다. 톰 행크스 주연의 미국 영화 <터미널>의 한 장면이다.
아프리카의 콩고민주공화국에서 전쟁을 피해 난민 신청을 한 가족이 있다. 그들은 당면한 문자 그대로의 ‘생존’을 위해 난민 신청을 했지만 통상 이것이 통과되는 데는 2년 정도의 시간이 걸린다. 그들은 2년이란 기간 동안 공식적으로는 자신의 고국도 아니고 목적국도 아닌 ‘어딘가’에 존재한다. 그들이 있는 곳은 난민신청자를 위한 수용소/대기소일 수도 있고, 아니면 불법체류자이자 불법노동자로서 사회 어딘가일 수도 있다.
이 책의 저자들이 볼 때 톰 행크스가 ‘갇힌’ 터미널이나 그 ‘어딘가’는 모두 경계에 해당한다. 저자들이 보기에는 이주민들이 본국에서의 위험을 피해서 더 나은 삶을 위해 이주를 위한 험난한 여정을 시작하는 곳에서부터 이들의 흐름을 통제하는 경계는 시작된다.
경계 없는 세상은 오지 않았다
1990년대 초 세계화를 수식하는 단어들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었다. 유동, 흐름, 부드러운 공간, 전지구적이고 지역적인 연결, 탈민족주의. 1990년에는 일본 경영학자 오마에 겐이치의 책 『경계 없는 세상』이 출간되었다. 인류가 머지않아 국가 간 경계와 장벽이 무너진 하나의 지구촌을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많은 사람이 확신했었다. 실제로 유튜브와 SNS가 실시간으로 지구 반대편의 소식들을 전해주지 않는가? 상품과 사람의 국경을 넘는 이동이 흔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은가?
이 책 『방법으로서의 경계』의 저자들은 ‘경계 없는 세상’이라는 이미지로는 더는 우리 세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본다. 이 책에 따르면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경계는 확산하고 증식하고 있다. 지난 20년의 전지구화는 경계의 감소보다는 오히려 확산을 낳았다.(106쪽) 2019년 멕시코의 ‘불법 이주민’을 겨냥한 트럼프의 장벽이 세워졌다. 코로나 팬데믹이 이후 전 세계 각국에서 ‘백신 민족주의’가 부상하고 있다. 오늘날 경계는 굳건하고 오히려 강화하는 양상을 보인다.
저자들은 ‘경계는 확산하고 있다’는 주장이 민족국가가 귀환하고 있다거나, 민족국가가 전지구화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는 주장과는 다르다고 분명히 말한다. 민족국가는 오늘날 과거와는 다른 방식으로 조직되고 있고, 과거와는 다른 형식을 띠게 되었다. 현재의 전지구화 과정들의 핵심적 특성 중 하나는 상이한 지리적 스케일이 지속적으로 재형성된다는 점이다. 이런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서 ‘경계 연구자’는 국경선뿐만 아니라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 경제적 구획들을 탐구해야 한다. 경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필요하다.
경계는 생산한다
이 책에 따르면 경계에 대한 일상적인 이해에서나, 경계연구라고 불리는 학문 분과에서나, 경계를 사고하는 익숙한 방식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경계는 가로막고 배제하는 장치라는 것이다. 이는 경계를 철조망, 장벽, 장애물의 이미지로 이해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경계의 목적은 통제하는 것이다’라는 통상의 이해에 도전하면서 ‘경계는 생산한다’고 말한다. 저자들에 따르면 경계는 현대의 전지구적이고 탈식민적인 자본주의의 다양한 시공간들을 생산하는 데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경계들은 단순히 사람, 화폐, 물건들의 전지구적 이동 경로를 가로막거나 방해하는 것과는 정반대로 그것들의 접합(articulation)을 위한 핵심적인 장치가 되어가고 있다.”(18쪽)
2020년 2월 인천공항에 도착했지만 난민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는 한국 정부 탓에 1년 가까이 공항에 갇혀 있는 난민신청자 A씨가 머물고 있는 공간은 어디의 안이고, 어디의 밖인가?(https://bit.ly/3iVvB3S) 이런 모호함과 이종성이 현대 세계에서 경계가 작동하는 방식이다. 경계는 ‘외부’와 ‘내부’를 가르는 기능을 할 때조차도 그 목적은 항상 ‘포섭의 차별적인 관리’라는 점을 저자들은 강조한다. 이런 해석의 연장선상에서 저자들은 경계 장벽의 폭력성을 강조하는 비평가들이나 ‘예외’ 혹은 ‘벌거벗은 삶’ 같은 개념을 활용하는 경계 비판 방식보다는 경계의 유연하고 이동적인 움직임을 강조하는 것이 우리 시대를 이해하는 더 효과적인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경계를 철조망으로 여기는 것은 경계의 한 가지 기능만을 강조하는 방식으로, 이러한 이미지에 갇히는 순간 우리는 경계라는 기제의 유연성을 이해할 수 없게 된다고 본다. “경계는 사람들을 선별하고 거르는 포섭의 장치이며 상이한 순환의 형식이기도 하다.”(30쪽)
경계는 선이 아니다
저자들이 문제 삼는 경계에 대한 또 하나의 통념은 경계가 선이라는 것이다. ‘경계’라는 말은 지도 위에 각기 다른 색깔로 표시된 영토를 나누는 선명한 선을 가장 먼저 떠올리게 한다. 선형적인 경계라는 이미지, 경계를 지리적이고 영토적인 것으로 생각하는 방식이 경계에 대한 이해를 지배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2장 「제작된 세계」에서 저자들은 지도제작의 역사와 자본의 역사를 오가는 서술을 통해서 영토 구획선이라는 경계의 이미지는 근대의 산물이며 제국주의와도 깊이 연관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우리가 저자들을 따라 ‘경계는 선이다’라는 명제를 의문에 붙이는 순간 오늘날 경계가 작동하는 더 복잡한 방식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현대 사회에서 경계는 복합적인 사회 제도이다. 경계는 사람, 화폐, 물건의 전지구적 통로들을 관리하고, 통치하는 장치이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경계지’(borderland), ‘변방’(frontier) 등 다양한 용어를 사용해서 경계를 다양한 행위자들과 움직임, 사건들이 일어날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인식한다.
경계와 ‘노동의 증식’
경계를 이종적 시공간을 생산하는 기제로 이해하고, 지리적 경계라는 통념을 역사화한 후, 저자들은 노동의 전지구적 스펙트럼을 범주화해 온 몇 가지 관점을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현대의 전지구적 노동분업을 이해하는 데 널리 이용되어온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지구를 북과 남으로 구분하거나, 동과 서의 분할을 강조하는 방식들이 있다. 또는 세계를 1세계, 2세계, 3세계로 나누어 ‘세 개의 세계 모형’을 지지하는 이론도 있다.
경계의 증식이 지구를 이종적인 시공간으로 끊임없이 분할하고 접합하는 시대에, 이런 설명 방식이 여전히 타당할까? 1세계, 2세계, 3세계는 명확하게 구분되는가? 중국이 세계의 공장이라는 말로 현대 세계의 모습을 충분히 포착했다고 할 수 있을까? 저자들은 그렇지 못하다고 보면서 ‘분명한 선으로 분할된 지도’의 이미지에서 출발해서는 현대 세계를 이해할 수 없다고 본다. 세계의 가장 부유한 국가들의 대도시 지역들 일부가 “제3세계”적인 조건에 처해 있는 것은 드문 일이 아니다.
북남 분할이나 동서 분할, 혹은 세 개의 세계 모델이 상정하는 ‘국제노동분업’ 개념을 보완하는 것으로서 저자들은 ‘노동의 증식’이라는 개념을 제출한다. 이는 3장 「자본의 변방」에서 주로 설명되는데, 3장에서 저자들은 세계 시장에 대한 맑스주의적 분석, 국제노동분업에 대한 기존의 이론들과 새로운 이론들을 차례로 검토한 후 이제 지리적 분열보다 중요한 것은 전지구적 공간의 안정성을 훼손하는 스케일, 지대, 경로들의 증식이라고 주장한다.
가사돌봄노동자와 금융거래노동자
4장 「노동의 인물형」은 돌봄노동자와 금융거래노동자라는 현대 노동의 주체적 인물형들을 분석하면서 이들을 연계하고 분할하는 경계를 탐구한다. 노동은 지난 몇 세기 동안 ‘여성화’되었다. 또 많은 학자가 ‘이주의 여성화’라고 부른 현상은 이주의 성별 구성에서 50% 이상의 이주민이 여성이라는 점 이외에 전지구적인 이주